교회 공동 주체로서 평신도와 여성의 역할 확대에 주목
가톨릭신문은 새 교황 레오 14세의 선출을 맞아 ‘새 교황의 사목적 과제 – 신학자 70인에게 묻다’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교회의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 이끄는 교황의 가장 중요한 사목적 과제들을 파악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는 곧 가톨릭교회 전체의 소명을 드러내며 하느님 백성 전체가 그 소명의 실천에 어떻게 협력하고 투신할 것인지를 가르쳐준다. 총 4회에 걸쳐 새 교황의 사목적 과제와 하느님 백성의 나아갈 길을 살펴본다.
1. 시작하며 - 설문조사 결과 종합
2. 시노드 교회를 향해 - 시노달리타스의 실현
3. 교회는 쇄신돼야 -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정신의 실현
4. 세상과 교회 - 빈곤과 폭력을 넘어 그리스도의 평화
교회는 항상 쇄신의 요구를 받는다. 교회의 역사는 끝없는 자기 쇄신의 여정을 보여준다. 교회사의 어느 시기든 예수 그리스도의 모범과 그분이 가르친 복음에 비추어 자신을 성찰하고 자신에게 주어지는 쇄신과 변화의 요청에 부응하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중세시대 수도원 운동, 현대 교회의 나아갈 방향을 열어준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가장 주목할 만한 교회의 쇄신 노력이었다.
교회 쇄신에 대한 ‘긴급 요청’
새 교황의 사목적 과제에 대한 가톨릭신문의 조사에서 신학자들은 오늘날 교회가 자기 쇄신의 긴급한 시대적 요청에 직면해 있다는 데 공감했다. 특히 응답자들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교황직 수행이 교회 안팎의 시대적 요청에 응답하는 쇄신의 여정을 열었고, 새 교황 레오 14세는 전임 교황의 이 쇄신 여정을 이어갈 것이고, 이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조사에서 ‘교회 쇄신을 위한 지속적인 노력’이 새 교황의 가장 중요한 사목적 과제라고 응답한 신학자는 모두 18명이다. ‘시노달리타스 구현과 시노드 정신에 따른 교회 건설’(35명)과 ‘경제적 불평등과 세계화 문제’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응답이다. 하지만 시노드 교회 건설과 교회 쇄신,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정신 실현’(5명)이 같은 목표를 지향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사실상 교회 쇄신의 요청과 필요성은 모든 응답자들이 공유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교회 쇄신의 노력이 가장 긴급하게 요구되는 영역이 ‘평신도의 소명과 역할 강화’, ‘여성의 교회 내 지위와 역할 확대’와 ‘직무사제직 문제(사제 독신제와 여성 사제 등)’ 등임을 고려하면, 모든 응답자가 교회 쇄신의 요청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교회 내 보수와 진보의 통합과 일치’ 문제 역시 교회 쇄신의 영역과 긴밀하게 연관된다.
교회 쇄신의 아이콘
프란치스코 교황 재위 12년은 그야말로 획기적인 쇄신의 길을 보여준 기간이었다. 그는 무엇보다도 교회가 하느님 자비를 드러내는 얼굴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고, 이는 교회 개혁과 쇄신으로 이어졌다.
프란치스코 교황 선출 당시 가톨릭교회는 교회의 세속화, 성직자 성 학대 추문 등으로 사회적 위신과 도덕적 권위를 모두 상실할 위기 상황에 놓여 있었다. 그는 쇄신의 긴급한 과제를 염두에 두고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정신을 바탕으로 ‘더는 미룰 수 없는 교회 쇄신’을 강조했다.
교회 쇄신은 모든 면에서 요구되는 것이지만 당시 교회 상황 안에서 두 가지 중대한 개혁이 요구됐다. 하나는 서구 교회 전체를 뒤흔든 성직자 성 학대 추문이었고, 다른 하나는 교황청의 부패한 재정 운영이었다. 물론 이와 관련된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지만, 프란치스코 교황은 혁신적인 새 법과 제도의 틀을 마련함으로써 ‘교황직과 보편교회 중앙 조직들’의 개혁과 쇄신의 기초를 놓았다.
교회 쇄신의 방향성은 이론의 여지 없이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명확하게 제시한 ‘교회는 하느님 백성’이라는 친교의 교회론에 바탕을 둔다. 그는 자신을 ‘세례받은 이들 중 한 명’으로서 ‘로마의 주교’라고 칭하며 다른 주교들과 동등한 위치에서 협력하고자 했다. 그리고 이전에는 남성 고위 성직자에게만 유보됐던 교황청 각 부서와 교회의 여러 직무에 여성을 포함한 평신도들의 참여를 대거 확대했다.
그러한 쇄신 노력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 세계주교시노드 제16차 정기총회는 교회 쇄신과 동의어라고 할 수 있는 ‘시노달리타스’를 주제로 열렸다. 고위 성직자들의 포럼처럼 열렸던 이전 시노드들과 달리 이번 시노드는 3년 동안 교구와 본당 단계에서부터 시작, 하느님 백성의 폭넓은 의견을 실질적으로 경청하는 단계를 강화했고, 특히 시노드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을 포함한 평신도와 수도자들이 투표권을 갖고 온전한 대의원으로 참여했다.
그리스도교 신앙 핵심 근거한 교회 전반의 근본적 개혁 필요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제시한 ‘하느님 백성으로서의 교회’ 조명
전방위적 쇄신의 요청
이번 조사에서 신학자들은 교회의 모든 영역에서 쇄신이 요구된다는 점에 공감했다. 서강대학교 박현준(아우구스티노) 대우교수는 “문화적 변동에 따른 교회 전반 즉 교회 운영과 조직 구조, 교의 해석, 신학교 교육 등을 개혁해야 한다”며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에 근거한 근본적 쇄신 없이는 현재의 위기를 극복할 수 없고, 특히 후속 세대와의 신앙 단절 위기를 해결할 수 없다”고 말했다.
수원가톨릭대학교 기획처장 한민택(바오로) 신부는 “오늘날 우리 교회 안에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적한 ‘영적 세속성’ 내지 ‘교회의 세속주의화’가 만연해 있다”며 “한국교회 현실에 대한 진단과 대책 마련, 이를 위한 전 신자의 회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여성, 평신도의 역할 확대
신학자들이 특별히 주목한 쇄신의 영역은 여성을 포함한 평신도의 역할 강화다. 광주가톨릭대학교 안준상(유스토) 교수는 “평신도 사도직의 다양성과 세속적 전문성이 거룩한 사도전승 위에 서 있는 보편교회의 교도권에 더 적극 협력할 때 새천년기의 복음 선포가 풍성한 내용과 더불어 더 견고한 일치의 방향성을 지닐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우(에드몬드) 한국천주교 평신도단체협의회 평신도사도직연구소장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정신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세상 속에서 복음을 살아가는’ 평신도 그리스도인의 재발견”이라며 “평신도의 소명을 고무하고, 그 역할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교회의 분위기가 변화돼야 하고 그에 걸맞은 구조적 전환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평신도 신학자 김연희 박사(마크리나·벨기에 루뱅대학교 교의신학)는 “사제 수가 급감하는 추세 속에서 평신도 신학 교육 및 신앙 강화 노력을 통해 평신도들이 교회 안에서 더 주체적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과감한 제도적 뒷받침을 해야 한다”며 “특히 평신도 신학자들을 사제들에 대한 보조적 역할이 아닌, 학자로서 인정하고 교회에 기여할 수 있도록 열린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신학연구소 조현진(알렉시오) 연구위원은 “여성의 교회 내 지위와 역할 확대는 바람직한 교회 문화 변화의 추동력이 될 수 있다”며 “남성 중심의 비민주적인 교회 운영을 바로잡기 위해서 소극적이고 주변적인 역할과 위치에 머물러 있는 여성의 지위와 역할 확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평신도의 소명과 역할 확대는 성직주의로 비판받는 직무사제직의 문제와 긴밀하게 연결된다. 가톨릭일꾼 한상봉(이시도로) 편집장은 “성직자 권위주의는 교회 안에서 가장 오랜 문제로 지적돼 왔다”며 “성직자의 일방성이 평신도의 무기력한 선교 노력을 낳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교회가 다시 활력을 찾고 세상을 성화하기 위한 여정에서 평신도 역량이 아주 중요하다”며 “시노달리타스나 동반사목에 대한 관심이 교회를 다시 일으켜 세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영호 기자 young@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