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강석진 신부의 세상살이 신앙살이] (362) 70대 노부부의 사랑이야기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입력일 2016-11-29 수정일 2016-11-30 발행일 2016-12-04 제 3022호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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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 연세가 70세도 더 넘어 보이는 어느 자매님께서 성지에 기도하러 오셨습니다. 그분은 성지 추모 형장에서 한참을 기도하신 후, 순례자 미사 시간에도 내내 어찌나 진지하게 기도를 하시던지, 나도 모르게 그분의 모습을 힐끗하고 쳐다볼 정도였습니다.

미사가 끝나고 그분과 마주치게 되어 내가 먼저 웃으며 인사를 드렸습니다.

“어르신, 오늘 미사를 너무 정성껏 봉헌하시던데요…. 마치 소녀처럼요!”

“에이, 젊으신 신부님이 어른을 놀리면 쓰나요. 신부님, 늘 건강하셔야 합니다.”

“예, 저는 늘 건강해요. 그런데 무슨 기도 지향을 갖고 그리 열심히 기도를 하셨어요?”

“아, 내가 아끼고 사랑하는 어느 신부님을 위해서 기도를 했어요. 그 신부님을 생각하면 마음이 찡하거든요.”

“아, 그러셔요. 연배가 비슷하신가요?”

“에이, 아니에요. 음, 한 40대 정도나 되셨을까…. 그 신부님은 내가 자주 가는 어느 기도 모임 지도 신부님이신데, 글쎄 그분이 때가 되어 다른 곳으로 가신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기도했어요.”

“아이쿠, 마음이 좀 아프셨겠네요.”

“마음이야 좀 아팠지. 나도 사람인데. 그래서 어제는 마음이 싱숭생숭해서 저녁에 우리 남편에게 이렇게 물었어요. ‘여보, 내가 우리 기도 모임의 지도 신부님이 다른 곳으로 떠난다고 하니, 마음 한 구석이 휑한 느낌이 들어요. 이게 뭐지요?’ 그러자 남편이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당신이 그 신부님을 마음으로 많이 사랑했구려’. 그래서 남편에게 ‘예, 맞는 것 같아요, 이게 사랑이라는 감정 맞죠? 아이고, 칠십이 훨씬 넘은 이 나이에도 젊은 신부님을 영적으로 사랑하니…. 참 사랑이라는 것이…. 그러네요.’

내 말에 우리 남편도 고개를 끄덕이며, ‘그래요, 그게 사랑이지. 당신이 그 젊은 신부님을 위해 기도를 많이 해야겠어요’ 암튼 어제는 우리 남편이 많이 위로해 주어서 지금은 한결 마음은 좋아요. 아무튼 우리 신자들 주변에 훌륭한 신부님들이 많이 나와서, 사랑에 무딘 요즘 사람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이렇게 영적으로 사랑하는 마음들을 가지며 서로 기도해 주며 살면 참 좋겠어요.”

“어르신, 좋은 말씀이시네요.”

“에이, 무슨 어르신. 암튼 우리 신부님도 열심히 사시고요. 성지에 오는 사람들에게 사랑 많이 나누어 주시고요.”

그리고 다시 성지 추모 형장으로 가서 기도를 하고, 초를 봉헌하고는 어디론가 사라지신 그분의 뒷모습을 한참 동안 쳐다보면서, 다시금 내 자신에게 묻습니다.

‘이게 뭐지…. 평생 서로가 어떻게 사랑하며 사셨기에 그런 대화가 가능하지? 이 부부가 나눈 대화가 왜 이렇게도 아름답게 느껴질까! 정말, 열심히 살고 있는 그 신부님도 대단하시지만, 그 신부님을 사랑하며 기도하시는 70대 부부님도 대단하시다.’

정말로 아름다운 사랑은 모든 것을 초월하는 신비로운 힘이 있는 듯합니다. 그래서 진심, 사랑은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것인가 봅니다.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