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나눌수록 커집니다

[사랑 나눌수록 커집니다] “평생 떠돌이…이젠 ‘고향’에 정착했으면”

이형준
입력일 2024-05-20 수정일 2024-05-21 발행일 2024-05-26 제 3394호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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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으로 모든 것 잃고 한국으로…생계 막막한 고려인 박루슬란씨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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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7일 박루슬란씨 부부가 여동생, 손녀 둘과 월세방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박루슬란씨는 허리에 철심을 박아 앉지 못한다. 사진 이형준 기자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됐다. 전쟁 중 러시아 폭격기가 마리우폴에 떨어트린 폭탄은 고려인 박루슬란(67)씨 가족의 집을 직격했다. 다행히 집 밖에 있던 가족 모두 무사했지만, 충격파에 날아온 철문이 박씨를 덮쳤다. 어깨가 골절되고 허리를 크게 다쳤다. 가족의 보금자리였던 집은 온데간데없고 부서진 건물 잔해만 처량하게 남았다.

박씨는 원래 우즈베키스탄에서 부인 김발렌티나(60)씨, 딸 박제냐(40)씨와 함께 살았다. 무슬림 극단주의자들의 차별과 억압을 받던 가족은 결국 20년 전인 1994년 집과 가구를 모두 버리고 우크라이나 마리우폴 외곽으로 쫓겨나듯 이주했다. 그곳에서 손자 손녀까지 가족은 일곱 명으로 늘었다. 농사를 지어 가족을 먹여 살리며 한때 희망을 품고 살아갔지만, 참혹한 전쟁은 가족의 일상을 앗아가 버렸다.

구호단체의 도움을 받으며 1년간 집도 없이 우크라이나 도네츠크 지역을 헤매던 박씨 가족은 친척의 도움으로 한국행 비행기표를 구하게 됐다. 치료받지 못해 악화된 박씨는 통증 때문에 한국행 비행마저도 고역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2023년 조상들의 고향인 한국 땅을 밟아 인천광역시 연수구의 한 고려인 마을에 자리 잡았다.

현재 가족의 생계는 딸 박제냐씨가 책임지고 있다. 월수입 200만 원 중 월세로만 75만 원이 나가고, 남은 돈으로 일곱 명을 먹여 살리고 있다. 이주민 복지 자체도 부족한 데다 제도에 대한 정보도 부족해 이미 있는 지원도 못 받고 있었다. 네 명의 손주 중 한국에 먼저 와 있던 고등학생 손녀는 검정고시를 봤지만, 이제 커 갈 나머지 세 남매를 키울 일도 막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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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폭격으로 무너져 버린 루슬란 씨의 집. 사진 까리따스이주민문화센터 제공

박씨는 폭격으로 부상당한 지 약 2년 만인 4월 한국의 병원에서 허리 수술을 받았다. 당장 수술하지 않으면 평생 걷지 못할 수도 있었다. 수술비는 유일하게 수입이 있는 박제냐씨가 할부로 내고 있어 이제는 가족들 식비마저도 보존하기 힘들어졌다. 게다가 어깨도 골절돼 앞으로 추가 진단을 받아야 한다. 그나마 몇몇 단체의 도움으로 생필품을 지원받고 있다.

박씨 가족은 어딜 가도 ‘이방인’이었다. 부인 김발렌티나씨는 “우즈베키스탄에서 무슬림 극단주의자들에게는 물론이고 우크라이나에서도 인종차별을 받았다”며 “그래도 한국에서 우리를 외면하지 않은 분들 덕에 병원도 가고 치료도 받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박씨는 “우리의 고향은 ‘한국’이라고 배웠는데, 힘든 상황에서도 조부모님의 고향에 온 것만은 행복하다”며 미소 지었다. 이어 “부상을 회복해 몸이 건강해지면 어떤 일이든지 시작해 가족에 보탬이 되고 싶다”고 다짐했다.

까리따스이주민문화센터 김은덕(마티아) 수녀는 “러시아에 의해 강제로 이주당한 우리 민족의 후손이 타지에서 전쟁으로 또 고통받은 모습이 너무 안타깝다”면서 “어깨 부상도 남아 있어 간절한 마음으로 도움을 요청하게 됐다”고 전했다.

◆ 성금계좌 - 예금주 (재)대구구천주교회유지재단
     우리은행 1005-302-975334
     국민은행 612901-04-233394
     농협 301-0192-4295-51  

◇ 모금기간: 2024년 5월 22일(수) ~ 6월 11일(화)

◇ 기부금 영수증 문의 080-900-8090 가톨릭신문사(기부금 영수증은 입금자명으로 발행됩니다.)

 

이형준 기자 june@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