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교회 혼인 무효 소송법 개혁 10년, 재판 빨라지고 교회법원·신자 거리감 좁혀

이승환
입력일 2024-10-28 수정일 2024-10-29 발행일 2024-11-03 제 3415호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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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교회의 교회법위원회, 자의교서 「온유한 재판관이신 주 예수님」 발표 10년 차 맞아 심포지엄
'재판 전 사목적 조사' 부족 개선 과제…수도자·평신도로 범위 넓혀 교회법 전문가 양성 힘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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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1~23일 수원교구 영성교육원에서 열린 ‘제31회 전국 교회법원 관계자 연수’ 참가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주교회의 교회법위원회 제공

교회 혼인 무효 소송법 역사에 큰 전환점이 된 프란치스코 교황의 자의교서 「온유한 재판관이신 주 예수님」(Mitis Iudex Dominus Iesus, 이하 자의교서) 발표 10년 차를 맞아, 교회법 전문가들과 각 교구법원 관계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자의교서가 한국교회 안에서 잘 적용되고 있는지 살펴보고 향후 개선 방안을 논의했다.

주교회의 교회법위원회(위원장 이경상 바오로 주교)는 10월 21일 수원교구 영성교육원에서 ‘자의교서 10년 차를 맞이한 한국교회 법원의 적응과 전망’ 주제로 2024년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발제에 나선 수원교구 1심 법원 재판관 이규용 신부(유스티노·미리내 천주 성삼 성직 수도회)는 수원교구 법원이 전국 15개 교구 법원과 수원교구 73개 본당을 대상으로 한 설문 결과와 교구 법원 업무 내용을 토대로, 혼인 무효 소송 절차를 단순화하고 사목적 의미를 강화한 자의교서의 내용을 한국교회 법원이 어떻게 적용, 실천해 왔는지 발표했다.

이 신부는 “자의교서에 드러난 개혁의 몇 가지 원칙 중 ‘신속성’과 ‘근접성’에 있어 한국교회 법원은 교황의 의향을 상당 부분 만족시킬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청구인 진술부터 제1심 판결 집행까지의 소요 기간이 평균 3.5개월인 것은 신속성의 원칙에 부합하는 결과라 볼 수 있다”고 했다. 이어 “근접성의 원칙에 따라 각 교구가 모두 제1심 법원을 설치해 재판관과 신자 사이의 물리적 거리감을 줄였고 소송 비용도 최소화해 심리적 거리감도 좁혔다”고 소개했다.

이 신부는 자의교서의 「절차 지침」 제2-5조에 도입된 ‘재판 전 사목적 조사’가 이뤄지는 교구가 별로 없다는 것은 개선할 점으로 지적하고, “이 조사는 혼인의 사목적 배려와 사법적 조치를 서로 연결해 주는 창구이자 법적·사목적 봉사이므로 한국교회에 아주 필요한 제도라 할 수 있다”고 부연했다.

설문 결과에 따르면, 대부분의 교구 법원에서는 재판 전 사목적 조사 역할을 따로 두지 않고 있다. 대신 본당 사목자가 소송 대리인을 맡으며 그 역할을 맡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제주교구만이 공증관으로 임명된 수도자가 이전 혼인과 이혼, 재혼 과정에 대한 자료를 사전 조사하고 있으며, 각 지구별 전담 변호사 제도까지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신부는 이밖에도 ▲피청구인의 참여와 방어권 보장 ▲혼인 불가 해소성의 원칙 보장 ▲소송 도입 단계에서의 사법대리 역할 준수 ▲법원 문서 양식 개선 등도 향후 과제로 제시했다.

이 신부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의도와 위의 모든 개선 사항이 올바로 이뤄지기 위해서는 수도자와 평신도를 포함한 적합한 교회법 전문 인력이 더 많이 양성돼야 한다”며 “교구와 수도회는 한국교회에 유일하게 존재하는 교회법 대학원을 더욱 활용하면서 해외 교황청립 대학에도 충분한 숫자의 학생을 파견하고 평신도들을 위한 장학금도 확대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심포지엄에서 공개된 교구·본당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재판 절차와 기간’에 대해 77%가 만족한다고 응답했다. 혼인 무효 판결 후 신앙생활에 대해서는 43%의 응답자가 무효 판결 이후 혼인 장애 상태에서 벗어나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고 답했으며 일반적인 신앙생활을 유지하고 있다는 응답자도 50%에 달했다.

수원교구 1심 법원 사법대리 박석천(안드레아) 신부는 설문 결과를 분석한 발제에서 “소송 절차의 단순·신속한 판결이 냉담 상태에 놓인 신자들이 신앙생활을 회복하고 더 나아가 열심한 신앙인으로 탈바꿈시키는데 있어 주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이 드러난 대표적인 사례”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광주대교구 사법대리 이정주(아우구스티노) 신부는 심포지엄 논평에서 “그동안 한국 교구법원이 살아 온 여정을 되돌아볼 때, 자의교서 반포 이전에 비해 상당히 많은 혜택과 사목적 유익을 누린 것으로 평가될 수 있다”며 “아직 아쉬움이 남는 점들에 대해서는 각 교구간 실무적 논의와 협의를 거쳐 자의교서와 적응지침이 제공해주는 신속성과 주교 중심의 원칙이 더 잘 정착되도록 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한편 주교회의 교회법위원회는 심포지엄을 시작으로 10월 23일까지 2박 3일간 ‘제31회 전국 교회법원 관계자 연수’를 개최했다.

이승환 기자 ls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