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달 동안 보도된 뉴스의 젠더폭력 피해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잔인했다. 교제 중 폭력을 당하던 피해자가 살해당한 사건, 불법 동영상을 유포하겠다고 협박받으며 온·오프라인의 성폭력을 당한 사건, 사진을 도용당하고 딥페이크 동영상 유포를 협박받고 금품을 갈취당한 사건 등이 있었다.
한 유명 여성 유튜버는 전 남자친구에게 불법촬영 동영상을 유포하겠다는 협박을 받고 많은 돈을 갈취당했다고 고백했다. 다른 남성 유튜버들이 이 사실을 알고 피해자를 협박해 돈을 요구했다는 내용은 충격적이다.
우리는 존중과 배려를 기본적 예의로 생각하기보다 나의 이익, 욕망을 관철한다면 상대방의 피해는 상관없다는 태도가 팽배한 사회에서 살고 있다. 폭력에 대한 감수성 부족은 가난, 연령, 성, 장애 등의 층위에서 주변화된 집단을 위한 복지나 정책을 특혜나 역차별로 해석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교육, 고용 등 성평등에서 진보가 없다고 할 수 없으나, 과소대표성은 해결되지 않고 여성들은 남성중심적 사고나 여성혐오에 기초한 폭력에서 안전하지 않다.
젠더폭력은 성별 권력 관계를 이해하지 않으면 해결될 수 없다. 하지만 공정성이나 독립, 동등한 주체로서 여성들에게 행동하라고 요구할 때 여성들이 경험하는 폭력적 피해들은 사소화된다. 이러한 문화는 여성들이 피해를 자초했다고 비난하는 통념을 지지한다. 가해자가 권력을 이용하거나, 초범인 경우 처벌이 경감되는 것 또한 납득되지 않는 일이다.
미국 코넬대 철학과 교수 케이트 만(Kate Manne)은 「다운걸: 여성혐오」에서 남성 가해자들에 대한 과도한 동정심을 ‘힘퍼시’(Himpathy)로 명명한다. 피해자를 비난하는 이면에서 가해자를 연민하고 가해자가 범죄를 저지를 만한 이유가 있다고 해석하는 문화를 비판하는 것이다.
가해자가 괴물이나 뿔 달린 사람이 아니라 평범한 인간이라는 사실은 가해자의 상황에 대해 연민으로 작용한다. 피해자에게 연민이 부족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우리 사회에는 피해자가 유혹하지 않았는지 의심하면서 피해 상황을 이해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여성학 연구자 김보화는 「시장으로 간 성폭력」에서 성폭력 피해에 관한 법적 처벌 규정을 만들어낼수록 가해자들이 악랄해지는 상황을 기술한다. 성범죄 이력은 열람되고 취업의 제한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에 성폭력 가해자들은 처벌을 피하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한다. ‘유능한’ 변호사를 고용하고 피해자를 명예훼손으로 역고소하기도 한다.
여성단체에서는 성폭력 가해자의 기부금 계좌이체를 발견하고 당황한다. 이러한 기부는 가해자가 범죄에 대해 반성하는 자료로 악용되면서 형량을 낮추는 데에 도움이 된다.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피해자와 가족의 고통에도 가해자가 응당한 법적 처벌을 받지 않아 개인이 응징하는 내용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이들은 정의의 이름으로 가해자를 심판하면서 공분을 가라앉히고 피해자와 가족들을 위로한다. 하지만 사법체제가 부정의를 심판하지 않을 때 사적 처벌은 성찰의 부재로 권력이나 폭력의 남용을 낳을 수 있다.
미국의 정치철학자 마사 누스바움(Martha Nussbaum)은 「분노와 용서」에서 피해자에게 용서할 마음이 없는데도 용서를 강요하는 문화를 비판한다. 또한 피해자와 가족이 개인적으로 복수를 하는 것이 이들의 분노나 고통을 완화시킬 수 있지만 같은 범죄의 피해를 반복하는 악순환을 막지 못한다고 설명한다. 따라서 한 사회가 피해자와 가족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이들의 아픔에 공감하고 아낌없이 위로를 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피해자의 아픔에 공감하는 것은 범죄, 폭력을 예방하고 피해자를 양산하지 않도록 예방 및 대처의 사회적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장치는 처벌을 위한 감시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사회 구성원들이 젠더폭력에 민감해질 때 여성들은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다.
글_이동옥 헬레나(경희사이버대학교 후마니타스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