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교회

[글로벌칼럼] 교황청이 루시퍼에게 빚을 진 이유

최용택
입력일 2024-11-29 수정일 2024-11-29 발행일 2024-12-08 제 3420호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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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베르토 루치페로  모습.  

11월 초 이탈리아에서는 교황청 고위 성직자들이 제단 주위에 모여 사탄을 숭배하는 장면을 담은 AI 비디오가 인터넷에서 화제를 모았다. 물론 이 영상은 가짜였다. 하지만 교황청이 루시퍼(Lucifer) 덕분에 이탈리아와 맺은 조약을 유지해 오늘날까지 주권과 부를 누리고 있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이탈리아는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했다. 첫 번째는 1946년 6월, 사보이아 왕조 아래에서 군주제로 남을지 아니면 민주공화국으로 변할지를 결정하는 것이었다. 결국 공화파가 승리했다. 새 헌법을 제정하기 위한 제헌회의가 열렸고 1948년 선거의 기초가 될 헌법을 마련했다.

헌법 논의에서 가장 논란이 된 문제 중 하나는 새로운 공화국과 교황청 사이의 관계였다. 교황청의 입장에서 이 문제는 1929년의 '라테란 조약'으로 이미 해결된 상태였다. 이 조약에서 교황청은 새로 설립된 이탈리아를 인정하고, 그 대가로 이탈리아는 교황청의 주권을 인정하며, 교황령의 상실에 대한 보상으로 오늘날 기준으로 10억 달러가 넘는 일시불 지급을 약속했다. 이 협정은 무솔리니의 파시스트 정권과 체결된 것이었지만, 교황청은 이 계약이 국제적으로 법적 구속력이 있는 조약이며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변경할 수 없다고 간주했다.

가장 큰 정당이었던 기독민주당은 교황청의 입장을 지지했지만, 사회당과 공산당은 이를 반대했다. 사회당과 공산당은 의원 40%를 차지하고 있었고, 몇 명만 더 포섭하면 헌법 승인을 막을 수 있었다. 사회당과 공산당은 새로운 조약을 통해 교회와 국가의 관계를 규정하려 했고, 이를 통해 새로운 정부가 더 나은 조건을 끌어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두 진영 간의 차이가 거의 해결 불가능해 보였을 때, 소수당의 의원 한 명이 나서서 타협안을 제시했다. 군주제를 지지했던 이 의원은 헌법에서 교회와 국가 관계의 기초로 '라테란 조약'을 인정하되, 양측이 동의하면 헌법 개정 없이 조약 내용을 바꿀 수 있도록 했다. 이렇게 해서 교황청은 원하던 바를 얻을 수 있었고, 동시에 향후 협상 여지를 남길 수 있었다.

이 타협안을 제시한 의원의 이름은 로베르토 루치페로(Roberto Lucifero)였다. 맞다! 루시퍼(Lucifer)가 사실상 이탈리아의 교회와 국가 관계를 구한 것이다!

분명히 말하지만, 로베르토 루치페로는 무정부주의적 사탄 숭배자가 아니었다. 변호사였던 그는 이탈리아 왕국 하원 의원을 지낸 보수주의자였다. 전쟁 중에는 파시스트와 독일 점령에 맞서 싸운 왕당파 저항군에 합류했다. 1944년에는 나치 친위대에 붙잡혀 로마의 레지노 첼리 감옥에 갇혔다가 미군에 의해 석방됐다. 이후 저명한 언론인이자 정치인이 됐다.

역사적으로, 이탈리아의 루치페로 가문은 이탈리아 남부 칼라브리아 지역의 저명한 귀족 가문이다. 수 세기 동안 칼라브리아 크로톤 시장 10명을 비롯해 군인, 예술가, 지식인, 기업인 지도자들뿐만 아니라 이탈리아 가문답게 많은 신부와 주교들을 배출했다. 칼라브리아의 크로톤을 방문하면, 1508년부터 1521년까지 그곳에서 교회를 이끈 안토니오 루치페로 주교의 교구 문장이 주교관 입구에 걸려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크로톤의 성 요셉 성당에는 ‘루치페로 경당’도 있다.

이 가문의 이름은 아마도 그리스도교 이전의 문화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그 당시 ‘루시퍼’는 라틴어로 ‘빛을 지닌 자’를 의미하며, 이는 금성과 관련이 있다. 금성은 새벽에 보이기 때문에 '모닝 스타'로도 불린다. 로마인들은 이 금성과 관련된 신을 ‘루시퍼’라고 불렀다. 금성은 저녁에도 보이기 때문에, 로마인들은 그것을 ‘베스페로’(Vespero)라고도 불렀으며, 이는 ‘저녁 기도’를 의미하는 ‘베스퍼’(vespers)라는 용어의 뿌리가 되었다.

또한 4세기에 사르디니아섬의 칼리아리에서 주교로 활동하며 아리우스파 이단에 맞서 정통을 지킨 성 루시퍼라는 인물도 있다. 이 인물이 같은 가문 출신인지는 알 수 없지만, 오늘날 칼리아리의 성 루시퍼 성당에서 미사를 드릴 수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이 교회는 ‘성 루시퍼 거리’에 위치해 있다.

루시퍼라는 이름이 악마를 의미하게 된 것은 4세기 라틴어 불가타 성경에서부터였고, 이때쯤 루시퍼라는 성씨는 이미 이탈리아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었다. 이 이름은 반드시 부정적인 의미를 내포하지 않았다. 사실 1950년대에는 이탈리아의 학교 어린이들을 위해 ‘루시퍼’라는 브랜드의 연필이 판매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탈리아에서 교회의 이익을 보존하는 중요한 순간에 ‘루시퍼’라는 인물이 개입했다는 사실은 다소 아이러니하게 느껴질 수 있다. 대부분은 이를 단지 재미있는 역사적 일화로 여길 것입니다. 그러나 냉소적인 일부는 교회가 부와 권력을 추구할 때, 이를 위해 악마와 거래를 한다는 우주적 확인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기록은 분명하다: 역사적으로 교황청은 루시퍼에게 빚을 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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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_존 알렌 주니어
교황청과 가톨릭교회 소식을 전하는 크럭스(Crux) 편집장이다. 교황청과 교회에 관한 베테랑 기자로, 그동안 9권의 책을 냈다. NCR의 바티칸 특파원으로 16년 동안 활동했으며 보스턴글로브와 뉴욕 타임스, CNN, NPR, 더 태블릿 등에 기사를 쓰고 있다.

 

최용택 기자 johnchoi@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