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주의 창

“호소해 보아도 법이 없네그려”(욥 19,7)

이주연
입력일 2025-02-03 08:16:02 수정일 2025-02-04 09:56:53 발행일 2025-02-09 제 3428호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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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일간지의 지난 1월 23일 보도에 따르면, 인천 미추홀구에서 148억대 규모 전세 사기를 주도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일명 ‘건축왕’과 일당이 1심보다 형량이 감경된 2심 판결을 대법원에서 받았다.

사기범과 그 일당은 2021년 3월부터 2022년 7월까지 인천 미추홀구 일대 아파트와 빌라 등 공동주택 191채의 전세 보증금 148억을 세입자들로부터 받아 가로챘다. 이 사기범은 인천과 경기 일대에서 주택 2708채를 보유해 ‘건축왕’이라고 불렸다. 이들 일당의 전세사기로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피해자 중 4명이 목숨을 끊었다. 

1심은 사기죄의 법정 최고형인 징역 15년을 선고하고, 추징금 115억 원을 명했지만 2심은 징역을 7년으로 줄여 확정했다. 공범 중 2명은 무죄를 받았고, 나머지는 징역형 집행유예로 감형됐다. 피해자들은 “희대의 전세 사기범 일당에게 면죄부를 주었다”며, 사기가 합법이 되었음에 분개하면서 대법원을 규탄했다.

어디서부터 시작되었을까? 갭투자가 유행처럼 번질 때가 있었다. 이재에 밝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다는 재산 증식 방법이다. 주택을 구입할 때 은행에서 주택담보 대출을 받고, 그 집을 전세로 내놓아 전세금을 받고 정작 자신은 몇 푼 안 들이는 방식이다. 그 갭투자로 한 채, 두 채, 세 채… 기본이 열 채 이상의 주택을 소유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자신이 투자한 자본 없이 집을 소유할 수 있는 마술과도 같은 재산 증식이다. 거기다가 집값은 매해 오르니 더 이상 좋을 수 없는 재테크 방식으로 떠올랐다. 재산 증식에 관한 유명 경제인이나 연구소에서도 재테크 중에서 실질적으로 이익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라며, 사람들을 부추기고 금융기관과 정부도 이를 수월하게 하는 정책과 상품을 내놓았다. 

국세청 자료에 의하면, 전국의 주택 임대 사업자는 2021년 기준 47만 명에 이른다. 이는 주택 임대 사업 신고 대상자가 확대된 영향을 감안하더라도, 그전 4년 사이에 10배 가까이 오른 수치라고 한다. 갭투자뿐 아니라 전세사기의 수법은 다양하다고 한다. 물론 전세사기는 전세라는 제도가 생긴 후 끊임없이 발생하기는 했지만, 이제는 조직적이고 광범위한 사회문제가 된 것이다. 

재산을 늘리는 것은 자유 경제체제에서 잘못된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에 따라 피해자가 발생했다면, 공동체에는 악행이 되는 범죄행위이다. 지난 2년간 전국에서 발생한 전세사기 피해자는 1만 6천 명이고 피해액이 약 2조 5천억 원이라면 심각한 사회문제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피해자 10명 중 6명이 20대 청년들이라는 것이다. 처음 사회에 진출하여 자립이라는 꿈을 일구며 살고자 했던 이들이 그 시작부터 사회로부터 사기를 당한 것이다.

국가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할 책임이 있다고 대한민국 헌법은 명시하고 있다. 그러므로 국가의 할 일은 국민들이 사기를 당하지 않도록 예방조치를 취하는 것이며, 사기로 인하여 취득한 것들에 대해서는 끝까지 추징하여 피해자들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국가가 피해액을 배상하고 피해자들을 위로해 주어야 하는 것이다. 국가의 존재 이유인 것이다. 

하지만 이번 대법원의 확정은 국가를 구성하는 한 축으로서 그 책임과 의무를 저버린 것이다. 범죄자에게 면죄부를, 피해자들에게 절망을 주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만물을 창조하시고 돌보시는 하느님께서는 이 참혹한 상황을 어떻게 보고 계실까? “‘폭력이야!’ 소리쳐도 답이 없고 호소해 보아도 법이 없네그려”라는 욥의 절규를 모든 것을 마련하신 하느님께서도 외면하실까? 

“너희 재산이 는다 하여 거기에 마음 두지 말라”는 성무일도 시편의 한 구절을 되뇌며 우리 모두의 마음 안에 심어주신 하느님의 마음이 양육강식, 각자도생의 험난한 세상에서도 기어이 살아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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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_ 나승구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신부(서울대교구 금호1가동(선교)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