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도배부터 장판까지 뚝딱…먼지투성이 얼굴엔 미소 활짝

민경화
입력일 2025-02-12 09:03:14 수정일 2025-02-11 08:45:53 발행일 2025-02-16 제 3429호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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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대전교구 북부지구 주거환경개선사업단 집수리 봉사 현장

가난한 이들은 무엇하나 넉넉한 것이 없다. 특히 가진 것이 적다는 결핍감은 그들의 생활양식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곳이 집이다. 경제적 궁핍을 경험했기에 온갖 쓰레기를 버리지 못하고 집안에 쌓아놓는가 하면, 청결에 신경 쓸 겨를이 없어 오물과 벌레로 가득한 집들도 적지 않다는 게 대전교구 북부지구 주거환경개선사업단(단장 민병영 프란치스코·지도 변윤철 다미아노 신부, 이하 사업단) 봉사자들의 설명이다. 허름한 집을 고치고 새 단장을 돕고 있는 사업단 봉사자들은 가장 가난하고 보잘 것 없는 곳에서 예수님을 만났다고 입을 모았다. 예수님의 집이기에 정성을 다해 고치고 다듬는 것이다. 2월 9일 집수리를 마친 봉사자들의 온몸에는 먼지가 가득했지만, 얼굴에는 미소가 만연했다. 그들이 가난한 이들의 집에서 찾은 복음의 가치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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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8일 지체장애1급 딸과 노모가 사는 집에 장판을 교체하고 있는 주거환경개선사업단 봉사자들. 민경화 기자

■ 집에 담긴 아픔, 수리하며 치유를 돕다

“영은이랑 같이 죽고 싶다는 생각만 했는데, 여러분들이 애써서 집을 좋게 만들어주신 덕분에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요.”

2월 8일 충남 공주시 유구읍에 있는 작은 집의 수리를 마치자 주인 조분예(82) 씨는 눈물을 훔쳤다. 사업단이 올해 처음으로 수리를 맡은 이 집은 지체장애 1급인 딸과 노모가 함께 사는 곳. 5살 때 사고로 장애를 얻은 딸 이영은(미카엘라·49) 씨에게 작은 집은 온 세상과 다름없었다. 늘 옆으로 누워서 지내는 영은 씨가 눈으로 볼 수 있는 곳은 방바닥과 방문 밖의 어머니뿐이다. 혼자서는 밥을 먹지도, 대소변을 가리지도 못하는 딸의 병시중을 드느라 어머니 조 씨도 40여 년 동안 집 밖으로 나들이 한번 나간 적이 없었다. 두 모녀에게 집은 삶의 전부이자 가슴 아픈 공간이기도 했다.

오전 8시, 일찌감치 조 씨의 집에 도착한 봉사단은 모녀가 지내는 큰방 수리를 위해 가구를 들어내며 작업을 시작했다. 그간 수리했던 집들에 비해 조 씨의 집 상태는 양호한 편이었지만 외풍이 심한 방은 장애를 가진 영은 씨의 건강을 악화시킬 우려가 컸다. 영은 씨의 활동보조인인 이향숙(프란체스카) 씨는 유구본당 사회복지분과를 통해 주거환경개선사업단이 있다는 말을 듣고 조 씨의 집수리를 신청했다.

이 씨는 “조립식 집이라 외풍이 심할 뿐 아니라 겨울과 여름에는 전기세와 연료비가 많이 나와 기초생활수급자인 어머니에게 너무나 큰 부담”이라며 “조금이라도 건강하고 안전하게 지낼 수 있는 환경이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마침 교구에서 집을 수리해 주는 단체가 있다기에 신청하게 됐다”고 말했다.

봉사단은 10년차 베테랑부터 이날이 처음인 신입까지 경력은 천차만별이었으나 집수리에 대한 열정은 한마음이었다. 빈 방에서 가장 먼저 진행된 작업은 단열벽지를 붙이는 일이었다. 단순한 작업같지만 천장에서부터 선을 맞춰 붙이는 일은 실수 없이 한 번에 이뤄져야 하기에 집중력이 필요해 보였다. 장판 역시 전보다 두꺼운 것을 골라 주로 바닥에 누워있는 영은 씨가 따뜻하게 지낼 수 있도록 배려했다. 새로운 벽지와 장판으로 바꾸자 방안에 화사함이 더해졌다. 가구까지 들여놓자 낡았던 방은 새옷을 입은 듯 빛이 났다. 네 시간 넘게 허리 한번 펴지 못하고 장판과 벽지를 붙이는 작업을 한 민병영 단장의 손과 옷은 먼지로 가득했다. 처음과 행색이 달라진 것은 다른 봉사자들도 마찬가지. 하지만 먼지가 덮인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민 단장의 손을 잡고 방에 들어온 조 씨는 “아이고, 새집처럼 좋아졌네요, 너무 감사합니다”라며 연신 고개를 숙여 인사를 전했다. 바뀐 방에 처음 누워 본 영은 씨도 “방이 밝아지고 깨끗해져서 기분이 좋다”며 “겨울에 너무 추워서 고생을 했는데, 앞으로는 어머니와 따뜻하게 지낼 수 있을 것 같아 안심이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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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리가 끝난 뒤 민병영 단장이 집 주인 조분예 씨와 방을 둘러보고 있다. 민경화 기자

■ 가난한 곳에서 예수님 찾고자 시작된 주거환경개선사업

주거환경개선사업은 대전교구 하기동본당에서 시작됐다.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주로 먹을 것이나 입을 것을 나누는데 집중했던 사회복지 사목에서 주거지 개선으로 시야를 넓혔다. 삶의 질 개선이라는 보다 본질적인 변화를 돕고자 의견을 모은 것이다.

민 단장은 “그동안 먹을 것과 입을 것을 나누는 봉사를 주로 해왔다면 취약계층에게 실질적으로 필요한 것들이 무엇인지, 교회에서만 해드릴 수 있는 복지가 무엇인지 고민을 하다가 의견을 모은 것이 주거환경개선사업이었다”며 “하기동본당에서 시작된 사업은 옆 동네 반석동본당이 함께하게 됐고, 소문을 듣고 여러 본당 사회복지분과에서 참여하고 싶다는 요청에 북부지구로 확대됐다”고 말했다.

봉사자들은 북부지구 본당 사회복지분과 위원들이지만, 대상자는 대전교구 전 지역에서 신청을 받는다. 수리를 하는 대상은 1년에 열 집가량. 무너지기 직전인 집부터 쓰레기로 가득 찬 집까지, 다양한 조건에 놓인 집을 수리하다 보니 봉사자들의 수리 실력은 전문가에 준한다.

민 단장은 “작업을 하기 전에 봉사자들과 함께 예수님의 집을 고친다는 생각으로 임하자는 기도를 바친다”라며 “내 집을 고치듯 정성을 다해서 작업해야 하기 때문에 저는 도배를 배우기도 했고, 전기설치 작업을 배워서 봉사하시는 형제님도 계신다”고 밝혔다.

가난의 민낯은 그들이 사는 집안에서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돈의 부재는 정신을 피폐하게 만들었고 자신의 주변을 챙기고 정리하는 방식을 잊게 했다. 게다가 비용에 대한 부담 때문에 개인적으로 집수리를 하는 것도 쉽지 않다.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가정은 사회복지기관에서 진행하는 주거개선사업에 지원하기조차 어렵다. 사업단은 이처럼 주거개선에 대한 복지 혜택을 받지 못하는 가정을 대상으로 수리를 지원하고 있다.

민 단장은 “대상자는 대부분 장애가 있는 자녀를 키우거나, 조손 가정, 다문화 가정인 경우가 많다”며 “어르신들이 가장 역할을 하시다 보니 육체적으로 집을 돌보기 어려워 열악한 환경에 놓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보통 오전 8시에 시작해서 오후 늦게 끝나는 작업. 먼지로 가득한 현장에서 허리도 펴지 못한 채 몇 시간 일을 하고 나면 기운이 빠지는 게 당연하다. 그럼에도 주거환경개선사업단 봉사자들은 “집수리하러 가는 날 아침이 늘 설렌다”라고 입을 모았다. 민 단장은 “일을 할 때는 당연히 힘들지만 끝나고 나서 대상자가 기뻐하시는 모습을 보면 힘든 생각이 싹 사라진다”며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주거환경개선 작업이 제게는 신앙의 중심이자 삶의 원동력”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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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리가 끝난 뒤 단체사진을 찍고 있는 봉사자들. 봉사자들은 “예수님의 집을 고친다는 생각에 봉사를 갈 때면 늘 기쁘고 설렌다”고 말했다. 사진 민경화 기자

민경화 기자 mk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