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재의 수요일 특집] ‘재’(灰)는 어떻게 만들어질까?

이형준
입력일 2025-02-26 08:57:24 수정일 2025-02-26 08:57:24 발행일 2025-03-02 제 3431호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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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가져간 성지 다시 모아 ‘밝고 고운 재’로 만들어

재의 수요일을 앞둔 본당들이 성지(聖枝) 모으기에 한창이다. 모인 성지들을 태워 재(灰) 예식에 쓸 재로 만들기 위해서다. 가정에서 간직하던 성지는 보통 재의 수요일 전 주일에 모두 모여 예식 당일 밝은 회색빛 가루로 돌아온다. 그럼 이 재는 어디서 어떻게 만들까. 재의 수요일을 맞아 재의 의미를 돌이켜보고, 본당이나 수도회 등에서 재를 만드는 방법, 교회가 재와 관련한 특별한 규정을 두고 있는지 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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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2월 필리핀 마닐라의 한 성당 야외에서 사제가 재의 수요일에 쓸 재를 만들기 위해 종려나무를 불태우고 있다. CNS

나약함, 허무, 속죄를 상징

재는 사제의 축복을 통해 예식에 쓰일 수 있다. 주례 사제는 재를 축복한 후 “사람아,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여라”(창세3,19 참조) 또는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마르 1,15)라는 말씀을 읊으며 신자들 머리에 재를 얹는다. 여기서 재의 의미를 엿볼 수 있다.

먼저 인간이 ‘재’와 같은 먼지, 흙에서 온 약하고 유한한 존재라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 육신은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고 삶과 죽음은 온전히 하느님 뜻에 달려있다. 인간이 유한한 존재이기 때문에 언젠가 맞게 될 죽음에 대한 슬픔과 허무도 ‘재’에 담겨 있다.

또한 재는 속죄와 회개의 의미도 있다. ‘재의 수요일’도 교회가 참회의 상징으로 거행하기 시작했듯이 사순 시기를 맞아 예수님의 수난과 고통을 묵상하기 위해 우선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주님 앞에 나아가는 것이다.

더 나아가 ‘정화’를 뜻하기도 한다. 속죄·회개와 이어지는 의미이기도 한데, 불순물이 남지 않은 순수한 재에는 하느님이 인간을 처음 흙으로 빚었던 때처럼 순수하고 깨끗하게 정화돼야 한다는 의미가 담겼다.

이러한 재의 의미는 구약시대 유다인들이 머리에 재를 뒤집어쓰고 하느님 앞에서 참회하던 관습에서 유래했다. 구약에는 특히 참회와 보속의 의미가 잘 표현됐다. 사탄이 욥의 온몸에 부스럼을 일으키자 욥은 잿더미 속에 앉았고(욥 2,8 참조), 요나가 니네베 사람들에게 회개를 요구하자 백성과 임금이 단식을 선포하며 잿더미 위에 앉기도 했다.(요나 3,4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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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당과 수도회 등에서 성지(聖枝)로 재를 만들 때는 되도록 밝은 회색빛을 띤 결정체가 되도록 한다. CNS

밝은 회색빛 내기 위해 성지 골고루 태워야

그렇다면 이 재는 어떻게 만들어질까. 담긴 의미만큼 정성이 들어간다. 재를 만드는 과정에 특별한 예식은 필요하지 않다. 또 본당, 수도회마다 다양한 방식으로 재를 만든다. 다만 예식에 쓰일 수 있도록 밝은 회색빛을 내기 위해 성지를 골고루 태워 남는 부분이 없게 한다는 점은 같다.

성가 소비녀회 의정부관구 정복영(안젤로) 수녀는 “수녀회는 전례 담당 수녀님이 직접 태우는데, 태우는 장소가 항상 정해진 건 아니고 다만 재가 날리지 않도록 바람이 없는 곳을 골라야 한다”며 “중요한 것은 성지가 탈 때 불이 더 잘 붙게 하겠다고 쑤시거나 뒤집으면 안 되고, 형태를 건드리지 않은 채 끝까지 다 탈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점”이라고 했다. 가지를 뒤집거나 흩트릴수록 재의 색깔이 검게 변하기 때문이다.

각 본당에서는 솜씨 좋은 관리장들이 성지 태우는 임무를 주로 맡는다. 서울대교구 불광동본당 관리장 허수경(프란치스코) 씨는 “드럼통에 구멍을 뚫어 공기가 통하게 해 불에 태운 뒤, 재가 천천히 식으며 가라앉아 삭을 때까지 하루 정도 가만히 놔둬야 한다”며 “그다음 큰 결정들을 체로 걸러낸 뒤 프라이팬에 볶고 한 번 더 체로 거르면 곱고 밝은 빛깔의 재만 남는다”고 설명했다.

약 2000개의 성지를 태우면 두 손에 모두 담을 수 있을 만큼의 재가 나온다. 재는 항아리나 병 같은 적절한 크기의 용기에 담아 보관한다. 만든 재의 양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정복영 수녀는 “재의 양이 적어도 예식 때 양을 조절하면 모두에게 발라 줄 수 있고, 재가 남으면 다시 땅으로 돌려보내면 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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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소녀가 재의 수요일 재 예식 중 머리에 재를 바르며 기도손을 하고 있다. CNS

재 바르며 자비로우신 하느님께 간청

재를 만드는 방법은 이처럼 본당, 수도회마다 조금씩 다른 것으로 확인된다. 전문가들은 재의 재료와 만드는 방법이 재의 수요일의 의미를 결정짓는 절대적 기준은 아니라고 말한다. 

가톨릭대학교 전례학 교수 윤종식(티모테오) 신부는 “특히 재의 재료에 대해 「로마 미사 경본」에 따르면 ‘지난해에 축복한 올리브 나무’뿐 아니라 다른 나무와 가지도 가능한데, 이는 ‘재’의 축복이 만드는 과정에서가 아니라 재의 수요일 미사 중에 이뤄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다만 재의 수요일에 쓰이는 재가 예수님을 따르는 참된 제자로 살아오지 못했음을 성찰하고 참회하는 상징이기에 교회의 오랜 전통은 1년 동안 십자가 뒤에 걸어놓았던 성지를 태우는 것을 우선시한다”고 말했다.

그리스도인은 어떤 자세로 예식에 임해야 할까. 신자들은 재를 머리에 얹으며 회개한 뒤 하느님께 자비와 용서를 구한다. 윤 신부는 “재의 축복 양식문을 보면 고백, 자비 간청, 준비를 위한 은총 간청의 단계로 진행된다”면서 “즉 비천한 우리가 재를 바르며 하느님의 종이자 죄인임을 고백하고, 하느님께서 회개하는 우리의 간절한 기도를 자애로이 들으시고 강복하시기를 간청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형준 기자 june@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