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께서 우리와 함께 사시도록 삶의 자리 내드리는 시기”
3월 5일 재의 수요일을 기점으로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며 파스카 축제를 준비하는 사순 시기가 시작됐다. 매년 이 시기에 교황은 성경 내용을 바탕으로 교회와 시대가 요청하는 시선을 담아 메시지를 발표하고, 전 세계 신자들에게 사순 시기를 살아갈 신앙적 방향과 구체적인 실천을 독려한다. 프란치스코 교황 역시 2013년 즉위 후 2014년부터 교회가 마주하는 영적 과제들을 사순 메시지를 통해 피력해 왔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사순 담화에서 강조했던 주요 키워드들을 다시 한번 살펴보며, 40일 간의 사순 시기를 신앙인으로서 충실히 보낼 수 있는 방향을 짚어본다.
■ 가난 - “그리스도께서 우리 사랑하는 방식”
‘가난’은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의 첫 사순 담화의 열쇠 말이다. 교황 즉위 강론에서 ‘가장 가난하고 가장 약하고 가장 비천한 사람을 위해 봉사해야 한다’고 역설했던 가난에 대한 의지가 반영됐다. ‘그분께서는 가난하게 되시어 우리가 그 가난으로 부유하게 되도록 하셨습니다’(2 코린 8,9 참조)를 주제로 한 담화에서 교황은 “가난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방식으로서,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나약함과 죄를 짊어지시고 우리에게 하느님의 무한한 자비를 전해 주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그리스도의 가난은 가장 큰 부요이며, 언제나 어디에서나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의 가난을 통하여 인류와 세상을 구원하고 계신다”고 밝혔다. 또 빈곤과 가난을 구별하면서, “빈곤에 맞서 교회는 봉사하면서 인류의 모습을 훼손시키는 상처들을 감싸주고자 한다”고 했다. 영적 빈곤에 대해서는 “복음이 참된 해결책”이라며 “특별히 사순 시기에 물질적, 도덕적, 영적 빈곤 속에 살아가는 모든 사람에게 복음 메시지를 증언할 준비를 해달라”고 당부했다.
■ 자비·회개 - “십자가 위 주님 마주 대하는 체험”
2016년 자비의 특별 희년을 선포했던 교황은 그해 사순 담화에서도 자비를 강조했다. “하느님의 자비는 세상을 향하여 선포된 말씀으로, 특히 모든 그리스도인은 이 선포를 직접 체험하라는 부르심을 받는다”고 밝히고, “하느님 자비는 인간의 마음을 변화시킨다”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하느님 자비가 우리 저마다의 삶을 비추며,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우리 이웃을 사랑하고 교회의 전통에서 자비의 영적 육체적 활동이라고 불리는 것에 우리 자신을 헌신하도록 힘을 불어넣어 주는 것은 언제나 새로운 기적”이라고 했다.
자비의 육체적 활동과 영적 활동에 대해서 말한 교황은 “육체적 활동을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주며, 쉴 곳을 마련해 주고, 찾아 주어야 하는 형제자매 안에서 그리스도의 몸을 만지는 것”으로 풀이했다. 또 영적 활동은 “이를 통해 우리가 죄인이라는 사실에 더욱 직접적으로 다가가도록 한다”고 언급했다. 중요한 것은 이런 자비의 ‘육체적·영적 활동이 결코 서로 분리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교황은 2020년 사순 담화에서 ‘회개’의 시급성에 대해 말하며 “하느님 자비의 체험은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주님과 ‘얼굴을 마주 대하는’ 관계 안에서만 가능하다”고 피력했다. “‘기도’는 그렇기에 사순 시기에 너무도 중요하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 믿음·희망·사랑 - “시련 넘어서는 생명과 행복의 원천”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전 세계가 고통받고 있던 2021년, 교황은 사순 담화를 통해 “우리의 믿음을 새롭게 하고, 희망의 ‘생수’를 길어 올리며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형제자매가 되게 하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일 것”을 호소했다.
‘보다시피 우리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고 있다’(마태 20,18)를 주제로 ‘사순 시기 : 믿음, 희망, 사랑의 쇄신을 위한 때’를 부제로 한 담화는 감염병으로 인한 시련의 시기에 믿음과 희망, 사랑의 의미를 되새기도록 한다. 교황은 “사순 시기는 믿음의 때”라며 “우리의 삶 안으로 하느님을 환대하고, 그분께서 우리 안에 함께 사시도록 자리를 내어 드리는 때”(요한 14,23 참조)임을 상기시켰다.
희망과 관련해서는 “예수님과 함께,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희망한다는 것은 우리의 과오, 폭력과 불의 또는 사랑이신 분을 십자가에 못 박은 죄 때문에 역사가 끝나지 않음을 믿는다는 의미”로 전했다. 계속해서 “희망으로 사순 시기를 보내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하느님께서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드시는’ 새로운 시대의 증인들임을 깨닫는 것을 뜻한다”고 역설했다.
또 “모든 이를 위한 관심과 연민으로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르는 사랑은 우리의 믿음과 희망의 가장 고귀한 표현”임을 알렸다. ‘사랑은 선물’임을 강조하면서, “사랑은 우리 삶에 의미를 주고 우리가 가난한 이들을 우리의 가족, 친구, 형제자매로 바라보도록 해준다”고 했다. 사렙타 과부의 밀가루 단지 예를 들며 “아주 작은 것이라도 사랑으로 함께 나누면 결코 마르지 않고 생명과 행복의 원천이 된다”는 것을 명시했다.
■ 수덕·단식·기도·자선 - “희망과 사랑의 삶으로 이끄는 여정”
‘수덕’은 보편교회가 시노달리타스 여정에 있었던 2023년 사순 담화에서 부각됐다. 교황은 “사순 시기의 수덕은 우리가 부족한 믿음과 십자가의 길로 예수님을 따르는 데에 대한 저항을 극복하도록 은총으로 지탱되는 하나의 임무”라며 “범속과 허영을 멀리하고 그분께서 외떨어진 높은 곳으로 이끄시도록 우리 자신을 내어 맡기고, 곧 산을 오르는 것처럼 노력과 희생과 집중을 요구하는 오름의 여정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예수님이 제자들을 데려가신 타볼산의 변모 사건을 예로 들며 “사순 시기의 수덕 여정과 시노드 여정은 모두 개인과 교회의 변모를 목표로 한다”고 강조하고 “두 여정 안에서 이 변모는 예수님의 변모 안에서 모범을 찾고, 그분의 파스카 신비의 은총으로 이뤄질 수 있다”고 전했다.
단식, 기도, 자선은 사순 담화들에서 여러 차례 언급되는데, 2021년 담화에서 교황은 “단식과 기도와 자선은 우리의 회개를 가능하게 하고 드러낸다”고 했다. 아울러 “가난과 극기의 길로서의 단식, 가난한 이를 위한 관심과 사랑의 돌봄으로서의 자선, 자녀로서 하느님 아버지와 나누는 기도는 우리가 진실한 믿음과 살아있는 희망과 실질적인 사랑의 삶을 살 수 있게 한다”고 설명했다.
2018년 담화를 통해서는 “기도에 더 많은 시간을 바칠 때, 우리 마음에 숨겨진 거짓말과 자기기만의 형태를 근절하고 그런 다음에 하느님께서 주시는 위로를 발견하게 된다”고 했다. 또 “자선을 베풀 때, 우리는 당신의 모든 자녀를 돌보시는 하느님 섭리에 참여하게 되며 단식은 폭력으로 기우는 우리의 성향을 완화시켜 주고 하느님과 이웃에 더욱 관심을 기울이도록 한다”고 말했다.
2019년 담화에서는 단식을 “타인과 모든 피조물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바꾸는 법을 배우는 것”이라 했고, 기도는 “우리에게 우상 숭배와 자만을 버리고 주님과 그분 자비의 필요성을 깨닫게 해준다”고 설명했다. 덧붙여 자선은 “우리가 관장할 수 없는 미래를 스스로 보장할 수 있다는 헛된 믿음으로 자신만을 위해 살고 모든 것을 움켜쥐려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게 해 준다”고 역설했다.
이주연 기자 miki@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