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행위의 윤리 기준 판단 내적으로 다루는 전환점 제시 인간을 보는 시각의 변화 요청
지금까지 우리는 교리서 1부 ‘한처음’(1~23과)에 대한 가르침을 살펴보았다. 1부는 존재, 즉 ‘나는 누구이며 너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바탕으로 한 내용이고, 오늘부터 펼치게 될 2부는 ‘마음의 구원’으로,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인간 실존에 대한 질문이 내적 인간, 즉 마음이 무엇을 갈망하는지 바라보게 한다. 마음의 구원편은 무려 1년 1개월(1980년 4월 16일~1981년 5월 6일) 동안 교황의 수요 교리로 계속됐고(특별한 전례 시기는 제외), 그 분량도 40과(24~63과)에 이르는 대단원이다.
2부의 중심 말씀은 “‘간음해서는 안 된다’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음욕을 품고 여자를 바라보는 자는 누구나 이미 마음으로 그 여자와 간음한 것이다.”(마태 5,27-28)와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마태 5,8)이다. 교황은 이 말씀에서 ‘몸 신학’의 핵심적 의미를 찾았고, 마음이 그 모든 것의 출발이요 중심이라 보았다.
한 인간의 생애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행위들은 보이지 않는 내면에서 움직인 것이기에 외적으로 드러난 행위를 판단하기 전에 내적으로 어떤 상태였는지 먼저 살피라는 뜻이다. 즉 왜 마음이 자유롭지 못한 상태였는지, 무엇에 묶여 있었는지를 먼저 살펴 참된 자유, 곧 한처음 상태를 회복하라는 것이다. 그렇게 회복하여 한처음 상태에 놓이면 마음이 깨끗한 사람이고, 그는 하느님을 뵙는 참된 행복에 머문다는 것이다. 여기서 하느님을 뵙는다는 것은 단순히 종말론적 의미만이 아니라 현재에도 일어나는 부활의 삶이다.
1부에서 다루었던 바리사이들과의 이혼에 관한 논쟁(마태 19장, 마르 10장)처럼, 마태오 5장 27절과 28절의 말씀도 창세기 첫 장까지 거슬러 올라야 그 의미를 제대로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이 말씀도 다른 말씀과 마찬가지로 규범적 성격을 뚜렷하게 띠고 있기 때문이다.(24과 2항) 그리스도께서 선포하신 말씀뿐만 아니라 문장 하나하나가 갖는 정황도 그 의미가 얼마나 폭 넓은지 알 수 있을 때, 제6계명인 ‘간음하지 마라’는 복음적 의미에서의 ‘이해’와 ‘완성’이라는 두 가지 모습을 만나게 된다.
인간 행위의 윤리 기준을 외적으로만 보고 판단하던 것을 이제 내적으로, 즉 마음에서 다루는 에토스의 중요한 전환점을 새롭게 제시했다. 또 규범적 성격을 띤 이 복음 구절에 대해 인간적 해석은 하지 말 것을 먼저 말씀하신 것이다. “너희의 의로움이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마태 5,20)
2부에서 다루는 중심 성경 말씀의 본질에 이르려면, 간음의 범위를 다시 보아야 한다. 구약시대엔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을 혼인 관계로 보고,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을 떠나 세상 것을 쫓을 때 간음이라 표현했다. 신약시대는 그리스도와 믿는 이들을 신랑과 신부의 관계로, 이는 율법이 아니라 영에 따라 가능한 것으로, 그 영의 자리가 바로 마음으로 제시되었다. 세례자 요한은 “신부를 차지하는 이는 신랑이다. 신랑 친구는 신랑의 소리를 들으려고 서 있다가, 그의 목소리를 듣게 되면 크게 기뻐한다. 내 기쁨도 그렇게 충만하다.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요한 3,29-30)면서 자신을 율법에 비추어 말했다. 외적인 율법의 영향은 작아지고 복음은 내면에서부터 커져야 했던 것이다.
그리스도의 말씀은 문제의 본질, 즉 인간을 바라보는 시각의 변화를 원하고 있다. 이는 윤리적인 이유에서가 아니라 인간학적인 이유에서도 문제의 본질을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옮긴 것이다.
글 _ 김혜숙 막시마(그리스도 왕직 재속 선교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