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 성당 스케치

[르네상스 성당 스케치] 리미니의 산 프란체스코 성당

이형준
입력일 2025-03-31 13:39:06 수정일 2025-03-31 13:39:06 발행일 2025-04-06 제 3436호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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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성당에 로마 고전주의 접목해 ‘르네상스의 옷’ 입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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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미니의 산 프란체스코 성당 파사드가 보이는 전경 . 출처 위키미디어

르네상스 시대의 인문학, 수학, 과학, 예술 등 모든 분야에서 전인적인 인물로 평가되는 레온 바티스타 알베르티가 건축가로서 첫발을 내디딘 것은 리미니의 산 프란체스코 성당(Chiesa di San Francesco in Rimini)의 중축 공사를 맡으면서입니다. 원래 이 자리에는 9세기에 설립된 ‘트리비오의 산타 마리아 경당’(Cappella di Santa Maria in Trivio)이 있었는데, 13세기 중엽 프란치스코회가 새 성당을 성 프란치스코에게 봉헌하면서 ‘산 프란체스코 성당’이 되었습니다. 

이 성당은 하나의 네이브(1랑식)에 세 개의 앱스가 있었고, 나중에 남쪽으로 두 개의 경당이 추가되었습니다. 그리고 14세기에 들어서 말라테스타(Malatesta) 가문의 묘지로 사용되기 시작하였고, 15세기 중엽 말라테스타 영주가 가문의 수호성인인 산 시지스몬도(San Sigismondo)에게 봉헌할 경당을 짓기로 결정하면서 증축 규모가 확대되었습니다. 증축 공사의 건축 책임자는 마테오 데 파스티(Matteo de’ Pasti)였는데 공사가 확장된 데에는 알베르티의 영향이 있었습니다.

성당 내부는 마테오 데 파스티와 아고스티노 디 두치오에 의해서 계획되었고, 외부는 내부의 공사가 시작되고 몇 년이 지나 알베르티가 설계를 맡았습니다. 알베르티가 설계한 원안의 파사드를 마테오 데 파스티가 제작한 메달에서 볼 수 있습니다. 파사드의 1층은 복합 주두가 있는 네 개의 벽기둥에 의해서 세 개의 베이로 분할되고, 각각의 베이는 상부에 반원 아치를 갖고 있습니다. 

중앙에는 출입구가 있고 그 상부에 페디먼트(기둥 상부의 삼각형 부분으로 박공지붕과 비슷한 일종의 장식 요소)가 있으며, 양쪽 베이는 개구부 없이 마치 블라인드 아치처럼 되어 있습니다. 파사드의 2층은 성당 내부의 네이브와 아일의 높이 차이에 따라서 계획되었는데, 네이브 부분의 전면은 1층의 중앙 부분과 유사하지만, 아일 부분은 곡면으로 설계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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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0년 발행된 마태오 데 파스티의 메달. 이 메달은 리미니의 산 프란체스코 성당 파사드를 보여주는데, 발행일이 1450년인 것은 알베르티가 설계한 성당의 외관임을 암시한다.  출처 위키미디어

또한 설계의 원안이라고 할 수 있는 마테오의 메달을 보면 파사드의 뒷부분에 대형 돔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돔의 크기는 크로싱의 상부 면적에 상응하지만, 이 돔의 지름은 크로싱이 아닌 건물 전체의 폭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는 돔이 제대와 성가대석이 있는 성당의 동쪽 부분을 모두 덮도록 계획되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알베르티가 이렇게 돔을 크게 설계한 것은, 성당의 중심이 네이브와 아일, 그리고 주출입구와 파사드가 있는 성당의 서쪽 부분(세속의 공간)에 있지 않고 제단을 중심으로 하는 동쪽 부분(거룩한 공간)에 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또한 돔이 커지는 것은 르네상스 건축의 흐름이 바실리카 형태의 선형성보다는 중앙집중형으로 바뀌고 있는 것을 보여줍니다.

공사는 2층 부분에서 설계와는 다르게 진행되었는데, 먼저 아일 부분의 곡선 지붕이 직선으로 바뀌었고 네이브 부분은 1층과 같은 설계였지만 공사를 하지 못한 채로 남아 있습니다. 따라서 알베르티의 대형 돔은 시작하지도 못한 상태입니다. 왜냐하면 1460년 말라테스타 영주가 교황과의 전쟁에서 패함으로써 공사가 중단되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말라테스타 영주는 이 건물을 가문을 위한 경당으로 만들고자 전통적인 그리스도교 성당의 모습보다는 이교도적인 언어로 표현된 상징과 표상들을 사용하였습니다. 그래서 이 건물은 더 이상 ‘산 프란체스코 성당’이 아닌 ‘말라테스타 사원’(Tempio Malatestiano)으로 불렸습니다. 말라테스타에게 성당을 개축하여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일은 기대하기 힘들었고, 그의 이런 행동이 교황과의 관계를 악화시키는 발단이 되었습니다.

알베르티는 구조적인 측면에서 기둥보다 벽체를 중요시했습니다. 파사드를 보면 벽체가 내력 역할을 하고 기둥은 장식 역할을 합니다. 이는 로마식 고전주의에 나타나는 전형적인 형태입니다. 남측의 입면을 보면 아치로 구성된 아케이드라기보다 벽체에 가까운 기둥이 연속적으로 있는 콜로네이드로 되어 있는데, 이 또한 고대 로마 건축에서 볼 수 있는 형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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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 파사드 . 강한수 신부 제공 (오른쪽) 산 미니아토 알 몬테 성당 파사드. 출처 위키미디어

파사드에는 고대 로마의 개선문 아치와 그리스 신전 파사드의 페디먼트가 모두 나타나는데, 페디먼트가 아치 안에 포함된 이런 형태는 로마 건축의 아치와 바실리카형 파사드가 주를 이루고 그리스 신전의 파사드는 장식화되는 경향을 드러냅니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은 르네상스 시대를 거치면서 더욱 발전하게 됩니다.

알베르티가 설계한 대표적인 파사드는 1470년에 완성된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Basilica di Santa Maria Novella)의 파사드입니다. 산 프란체스코 성당의 경우는 내부 공사가 진행되는 동안 파사드를 비롯한 외부 전체의 설계를 맡았기 때문에 알베르티는 어느 정도 자유롭게 설계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은 내부가 오래전에 완공되었고 파사드 역시 거의 시공된 상태에서 파사드의 나머지 부분을 설계해야 했기에, 알베르티에게는 중세 고딕 양식과의 조화를 비롯하여 설계에 있어서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우선 고딕 양식의 대표적인 특징이라고 말할 수 있는 포인티드 아치(첨두 아치)를 유지해야 하는 것이 첫 번째 해결 과제였습니다. 알베르티는 기존의 건축 양식으로부터 기하학적 요소들을 찾아서 로마의 고전주의가 갖는 기하학적 요소들과 접목시켰습니다. 곧 원, 반원, 사각형, 삼각형의 기하학적 요소들을 원형 창, 아치, 벽체, 페디먼트로 표현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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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 <산 시지스몬도 앞에서 기도하는 시지스몬도 판돌포 말라테스타>

이런 요소들은 토스카나 지역의 로마네스크 양식에 나타나는 것으로, 알베르티는 대리석의 다양한 색을 이용해서 중세의 기하학적 요소들을 파사드에 넣은 것입니다. 또한 알베르티는 리미니의 산 프란체스코 성당에서 과제로 남겨진 네이브와 아일의 높이 차이에 의한 경사 부분의 문제를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에서 그리스 신전의 소용돌이 문양과 함께 곡선으로 마무리함으로써 해결하였습니다.

알베르티는 토스카나 로마네스크를 대표하는 피렌체의 ‘산 미니아토 알 몬테 성당’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는 중세의 기하학적 요소를 고대 로마의 기하학적 요소로 단순화하였고, 특히 고대의 정사각형 정수 비례에 의한 구성 체계를 선호하였습니다. 이렇게 알베르티가 중세의 성당에 르네상스의 아름다운 옷을 입힐 수 있었던 것은 그 성당에 그 아름다움이 어울렸기 때문일 것입니다. 지금의 성당들은 어울리는 옷을 입고 있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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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_ 강한수 가롤로 신부(의정부교구 건축신학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