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회 김용해 신부, 2018년 산티아고 순례 다녀와 「비아토르」 펴내 김용해 지음/176쪽/1만5000원/생활성서
예수회 김용해(요셉) 신부는 지난 2018년 안식년을 맞아 800킬로미터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었다.
당시 대학에서 철학을 가르쳤던 그는 사제나 교수로서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배낭 하나 메고 홀로 걷고 싶은 마음에 길을 떠났다. 한 인간으로, 그보다도 자연 안의 한 존재로, 또 다른 타자 즉 자연과 소위 정신적 존재라 불리는 이들과도 소통하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무엇보다 ‘내가 누구인지’를 더 깊이 알고 싶은 심정이었다. 나의 가장 깊은 곳의 갈망은 무엇인지, 어떤 동기에서 오늘도 살아가는지 체험하고 싶었다.
「비아토르」는 김 신부가 순례길을 걸으며 만난 자연과 사람, 삶에 관한 이야기다. 책에서는 기존의 산티아고 순례를 다룬 이야기에서처럼, 풍경을 담은 화려한 컬러 사진이 등장하지 않는다. 그래서 심심한 듯 하지만, 담담하게 펼쳐지는 저자의 글은 모노톤의 선율처럼 담백하면서도 소박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제목 ‘비아토르’는 ‘호모 비아토르(Homo Viator)’를 축약한 것이다. ‘참 자신이 되기 위해 길을 걷는 인간의 자각’을 드러낸다. ‘Homo’는 인간을, ‘Viator’는 여행자를 의미한다. 즉 ‘길 위의 인간’이라는 뜻이다.
저자는 생 장 피에 드 포르에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프랑스 길’이라 불리는 순례길을 걸으며 자신과 대면한다. 그리고 참자아를 찾기 위한 과정이 일생의 순례라는 것을 깨닫는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바로 그 인생의 축약이 아닐 수 없었다.
“산티아고 길은 인생의 축소판이다. 순례길처럼 인생에서도 사람들과 서로 힘을 얻기도 하고, 서로 관대하게 배려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갈등과 불화가 생기기도 한다. 그리고 빨리 걸을 수 있는 사람과 느리게 꾸준히 걷는 사람이 있듯이 각자의 속도가 있어서 스스로의 속도를 존중하며 걸어야 한다.”(145쪽)
그는 하루 20~30킬로미터의 길을 걸으며 기도와 묵상을 하고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불쑥불쑥 찾아오는 추억과 근원을 알 수 없는 슬픔에 대해 숙고했다. 개인 차원의 슬픔의 근원을 들여다보고, 공동체라는 집단의 기억 안에 내재한 슬픔의 근원도 추적해 갔다. 저자의 감정과 영혼을 정화하는 시간이었다.
저자는 매일 새로운 사건을 통해 마음 깊은 곳에 울리는 소리를 적었다. 점점 많은 걸음이 축적되고 의식이 침잠하자 잠을 자다가 꿈에서 그 소리를 듣기도 했다. 그때는 머리맡 노트에 메모하고 걸음을 옮기며 되새김했다.
이 과정은 자신과 하느님을 더 잘 깨닫는 계기가 됐다. 자신의 존재 이유를 알아가고자 했던 걸음은 저자에게 그가 속한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소명 의식을 다시 불러일으켰으며, 길 위의 인연에 더욱 집중할 수 있도록 했다. 자신을 둘러싼 자연과 환경에도 더 큰 감동을 느낄 수 있도록 이끌었다. 책은 그 시간 그 자리에 대한 영혼의 기록들이다.
“슬픈 감정이 가시자 들꽃들이 피어 있는 모습이 너무나도 예쁘게 눈에 들어왔다. 불현듯이 온 세상이 아름다웠다. 이름이 있든, 이름을 모르든, 꽃과 나무와 사물 하나하나가 이처럼 아름다울 수 있을까?”(138쪽)
이주연 기자 miki@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