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봄볕처럼 따스할 하느님 자비 바라며 살아갈 희망 얻길”

박효주
입력일 2025-04-23 09:52:41 수정일 2025-04-23 09:52:41 발행일 2025-04-27 제 3439호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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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자비 주일 르포] 한마음한몸운동본부 자살예방센터 자살유가족모임
연간 프로그램 ‘슬픔 속 희망 찾기’…혼자만의 아픔 아님을 깨닫고 위로 얻어
따뜻한 시선 통해 유가족의 부정적 감정 떨치고 위로와 보살핌 얻도록 도와

4월, 대지에 새싹이 돋고 꽃이 방긋방긋 피었다. 만물이 소생하는 봄에 시작된 부활 시기. 부활 제2주일에 맞이한 ‘하느님의 자비 주일’이 가슴 사무치게 간절한 이들이 있다. 바로 죽은 이의 구원과 부활을 누구보다 절실히 기도하는 ‘자살 유가족’들이다. 그때의 충격과 슬픔 외에도 자책과 걱정 등으로 아픔을 겪는 유가족들을 위해 연간 프로그램 ‘슬픔 속 희망 찾기’를 진행하고 있는 한마음한몸운동본부 자살예방센터(담당 김수규 요한 사도 신부, 이하 센터)의 자살유가족모임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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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1일 봄꽃이 흐드러지게 핀 서울 서대문구 안산 자락길을 자살 유가족들이 걷고 있다. 박효주 기자

자연 속에서 걸으며 치유 받다

“아이고, 잘 지냈어요?”

센터의 자살 유가족 자조 모임 프로그램인 ‘걷기 테라피’의 시작 지점. 서울 서대문독립공원으로 가벼운 등산복 차림의 사람들이 하나둘 모였다. 아는 얼굴이 도착할 때마다 함께 끌어안고 토닥이며 건네는 인사말이 ‘그동안 잘 살아냈냐’는 말처럼 들려왔다. 고개를 끄덕이며 상대를 향해 웃어 보이는 모습에서 서로 애틋함과 동질감을 지녔음이 느껴졌다.

오늘은 안산 자락길을 걷는다.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 앞에 둥글게 모여 주님의 기도를 바친 뒤 본격적인 걷기를 시작했다. 더러는 팔짱을 끼거나 혹은 손을 잡고 꼭 붙은 채 이야기보따리를 풀며 발걸음을 옮겼다. 주위의 수많은 봄맞이 방문객보다 정다운 모습이었다. 잠시 쉬어갈 때마다 한 명씩 인원수만큼 준비한 오이나 샤인머스켓 등 간식도 나누며 못다 한 얘기를 나눴다.

“야외에 나와 활동적으로 움직이니 부정적인 감정을 자연 속에 발산할 수 있고 바깥의 긍정적인 에너지를 받아 좋아요.”

3년 전 배우자가 세상을 등진 이민숙(가명) 씨는 다른 실내 운동 모임도 좋았지만 꼭 눈물바다가 되곤 했다며 “같은 아픔을 겪은 사람들과 함께 걸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상처를 건드려 아프게 하는 게 아니라 다독이는 느낌이 들어 평안을 찾게 되는 것 같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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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1일 한마음한몸 자살예방센터 ‘걷기 테라피’에 참석한 자살 유가족들이 시작 전 서울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 앞에 둥글게 모여 주님의 기도를 바치고 있다. 박효주 기자

“처벌은 제게 내려주세요”

“유가족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자살자에게도 자비하신 주님의 구원이 있다는 것을 유가족들에게 확신시켜주는 거예요.”

마운재(가명) 씨의 아내는 지난해 이맘때 세상을 떠났다. 아내는 본당 성가대와 레지오, 구역 모임에 열심이던 신자였다. 마 씨는 신앙이 있음에도 허망하게 가버릴 정도로 힘들었을 부인을 생전 헤아리지 못한 점이 후회로 남는다. 하지만 “교회가 요즘에는 새로운 시각으로 자살자의 영혼에 구원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는 것에 고마운 마음이 든다”고 밝혔다. 이어 “자살자에 대한 처벌이 있다면 불쌍한 그 영혼에 하지 마시고 저에게 내려주시면 감사하겠다”고 전했다.

정연아(가명) 씨는 2024년 새해 첫날 아버지를 떠나보냈다. 그간 아버지에 대한 서운함과 미움 등 여러 상처 때문에 최소한의 연락만 하고 지내던 터였다. 아버지의 힘들었던 삶을 새어머니에게 듣고 다가온 회한과 연민 등을 정작 당사자와 나눌 수 없다는 것이 힘들었다. 정 씨는 “그러던 중 ‘하느님께서는 자비로우시며 그분의 자비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깊다’는 신부님 강론을 듣고 겨우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며 “많이 부족한 딸이어서 죄송했고, 하늘나라에서 부모님을 다시 꼭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

46년 전 세상과 이별한 여동생이 아직도 가슴에 멍으로 남은 전성환(가명) 씨는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생각으로 아직도 구원을 위해 기도를 드린다”고 밝혔다. 부인을 잃은 경인석(가명) 씨는 “모임에서 자살자와 유가족을 따뜻한 시선으로 품어주는 교회를 경험하며 하느님의 ‘자비’라는 단어를 절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도한다는 것은 희망이 있다는 것이다. 유가족들은 모두 고인의 영원한 안식을 위해 연미사를 넣고 묵주기도와 위령기도 등을 매일 바치고 있었다. 사실 유가족들은 “안타깝게도 기도밖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며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기도 드린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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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8일 열린 한마음한몸 자살예방센터 유가족 자조 모임 ‘글쓰기’ 프로그램 모습. 한마음한몸운동본부 제공

유가족 모임에 집중하는 센터

센터는 여러 사업 중 유가족 모임에 가장 중점을 두고 있다. 교회는 앞서간 이를 단순히 추모에서 끝내는 게 아니라, 남은 이들에게 먼저 떠난 이의 구원과 안식을 위해 꾸준히 기도할 것을 권고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자살 유가족들은 고인의 구원에 대한 절망과 희망 사이에서 힘겹게 싸우고 있다. 그 외에도 당시의 충격과 고통, 미안함과 후회 등 지고 갈 것이 많기에 위로와 보살핌, 치유가 특히 필요하다.

많은 유가족이 센터의 집단 상담, 월례 미사, 독서 모임, 성지순례 등의 자살 유가족 모임에서 큰 힘을 얻었다고 밝혔다. 경인석 씨는 “모임에 오니 나 혼자만의 아픔은 아니었음을 깨달았다”며 “우리는 영혼적으로 헐벗고 가난한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렇게 센터 모임을 통해 주님의 따스한 자비를 접할 수 있어 너무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김수규 신부는 “유가족들을 만나면 ‘하느님께서는 분명히 극단적 선택을 할 정도로 큰 고통을 겪은 가여운 영혼들을 잘 돌봐주실 것’이라고 계속 말씀드리게 된다”며 “자살에 대한 고민과 위기, 그리고 자살 유가족들의 슬픔과 아픔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드러내는 것이 필요한 많은 이에게 센터 모임이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센터의 유명옥 지도 수녀(마리아·예수성심전교수녀회)는 “센터 모임에 오는 유가족들은 애도 과정을 먼저 겪은 사람들의 회복과 희망의 이야기를 듣고 자신도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과 용기를 얻게 되는 것 같다”며 “자살 유가족들은 스스로 드러나기를 원하지 않는데 이들이 마음껏 이야기하고 치유 받을 수 있는 공간이 많아지길 바란다”고 밝혔다.

※ 후원 : 우리 1005-380-307979 (재)천주교한마음한몸운동본부
※ 한마음한몸운동본부 자살 예방 정기·일시 후원 : https://online.mrm.or.kr/WVXuiLZ 

박효주 기자 phj@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