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신앙에세이] 여행 중에 만난 내 인생의 소명

민경화
입력일 2025-06-17 15:29:06 수정일 2025-06-17 15:29:06 발행일 2025-06-22 제 3447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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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성미술을 하는 작가에게 ‘성상 보수’란, 비주류 분야이고 일반 작가들은 관심을 두지 않는 작업이다. 더욱이 명예를 꿈꾸는 작가로서는 시간 낭비와도 같은 일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운명을 바꿀만한 계기는 아주 사소하게 우연히 다가오는데 이 또한 주님의 이끄심이라는 것을 나중에 깨닫게 됐다.

1998년, 신혼 초 아내와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여행을 하던 중 우연히 시골 길가 작은 공소 앞에서 나이 지긋하신 형제님이 성모상에 페인트 칠을 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아내와 나는 형제님이 들고 있는 페인트를 보고 경악했다. 그의 손에는 자택을 수리하고 남은 외벽용 수성 페인트가 들려 있었다. 형제님은 정성을 다해 봉헌하는 마음으로 칠을 하셨지만, 성상을 제작하는 나로서는 안타까운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몇 년이 지나면 지금보다 더 보기 흉해질 뿐만 아니라, 복원조차 어려워질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일은 쉽게 잊히지 않았다. 특히 건축용 페인트에 덮여 사라진 성모님의 눈매와 은은한 미소가 자꾸만 떠올랐다.

그 당시만 해도 성상을 어떤 재료로 어떻게 보수하는지 지식이 없던 시기여서 내가 아는 지식과 기술을 봉헌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년 후 열흘가량 시간을 비우고 춘천교구 김현준 신부님(율리오·2022년 선종)께 연락드려 성상 복원 봉사를 하고자 하니 교구 내 공소 중 네 곳을 선정해 달라고 하였다. 신부님도 반가워하시며 공소를 선정해 주셨다. 열흘간의 복원 작업을 마치고 돌아온 후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우선 전문적인 보수에 관한 공부를 좀 더 하고 싶어졌다.

이것이 내 인생의 전환점이었다. 그 후 2년 정도 준비를 하여 아내와 함께 유럽 여러 나라의 성상을 보러 다니기 시작했고 틈틈이 고미술 복원과 재료학에 대해 공부를 하였다. 또한 영원한 도움의 성모, 은총의 중재자이신 어머니 마리아, 신자들의 도움이신 어머니 마리아, 바다의 별 성모님, 순교자의 모후 등 여러 가지 성모님 모습과 표현에 대한 공부를 하며 본격적으로 복원 작가의 길에 들어섰다.

1980~1990년대 신도시 붐과 함께 성당 건축이 급격히 늘어나자 성상에 대한 수요도 급증했다. 그로 인해 졸속으로 제작된 성상이 많아졌고, 유지 관리 역시 상대적으로 소홀해졌다. 이러한 현실이 주님 보시기에 얼마나 안타까우셨을까 생각하니, ‘그분께서 나를 이 길로 이끄신 것이구나’ 하는 마음이 깊이 들었다. 그것은 내게 커다란 소명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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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_ 고승용 루카(성미술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