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는 1925년 79위 복자를 탄생시키며 한국교회의 이른바 순교복자 시대를 시작했다. 그들 복자는 모두 기해박해(1839) 70위와 병오박해(1846) 9위 순교자들이었다. 거기에 1968년에 병인박해(1866) 24위 순교복자가 추가되었다. 이들 복자는 지금으로부터 40년 전인 1984년에 모두 103위 성인이 되었다.
그런데 103위 시성 과정에서 당시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은 “한국교회가 평신도 중심의 신앙공동체로 시작했다고 알고 있는데, 왜 이들 복자 중에는 초기의 평신도 순교자들이 없느냐?” 물으셨다고 한다. 그때 청원인은 순교자들에 대한 기록이 파리 외방 전교회 선교사들에 의해서 주로 1839년부터 먼저 시작되었고, 이들 후대의 순교자 중심으로 먼저 시복을 추진하였기 때문에 초기 순교자들이 포함돼 있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교황님께서는 그 초기 교회 순교자들도 조사해서 시복을 추진하라고 당부하셨고, 그렇게 하여 결실을 보게 된 것이 2014년 124위 순교복자의 탄생이었다.
필자도 124위 복자 탄생에 조금은 기여한 바가 있다. 서울지역에서 순교하신 이들에 대한 현장 조사 실무를 맡았기 때문이다. 포도청, 형조 터, 의금부 터 및 서소문 밖 네거리, 당고개, 새남터 등 순교 장소를 지정하고 그곳에서 순교한 순교자들 기록을 정리해서 올려야 했다. 지금 그 장소들은 모두 서울 국제 순례지에 포함돼 많은 이들이 도심 속 성지들을 도보로 순례하고 있다. 참으로 잘된 일이다. 그런데 우리는 순례하면서 어떤 마음가짐으로 어떻게 준비하면서 출발하고 있는가? 한국의 순교성인과 순교복자들은 적은 숫자가 아니기 때문에 전공자들조차도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잘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의 순교성인과 복자들은 그들의 삶으로 보나 순교했을 때의 신덕과 용덕으로 보나 정말 모범적인 신자들이었다. 정약종-정철상-유체칠리아-정하상-정정혜, 유진길-유대철, 홍낙민-홍재영-홍봉주, 김제준-김대건, 최경환-이성례-최양업 등 한 가족들이 보여준 신앙심은 그 어디에서도 보기 어렵다. 그리고 최근에는 미디어를 통해 관련 역사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렇게 찾아보고 기억하며 순례하는 것이 좋겠다. 다만 검증은 항상 필요하다.
시복시성을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오늘날 우리의 신앙을 위해서이다. 곧 신앙 선배들의 모범을 배우기 위한 것이다. 그들처럼 순교까지 할 수 있다면 더할 수 없는 은총이지만, 오늘날 순교를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그런 상황이 된다면 성당을 다니지 않을 사람이 대부분일 것이다. 그렇다면 순교는 못 해도 최소한 그들의 뛰어난 삶과 신앙은 배워야 하지 않겠는가?
코로나19 이후로 너무나 많이 위축된 교회 활동이 순례를 통해서 다시 활성화되기를 바란다. 시복식 때에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당부하셨던 두 가지 키워드, ‘기억의 지킴이, 희망의 지킴이’가 되기 위해서 지상의 순례여정을 시작하자.
얼마 전 한 지인을 통해서 한국교회의 세례 공동체가 시작(1784)될 때 양반과 중인 중심으로 모인 이들 연령이 20~30대 청년이었음을 새삼 알게 됐다. 이제 ‘희망의 순례’를 떠나면서 청년들은 어른을 공경하고, 어른들은 젊은이들을 더 아끼며 함께 여정을 가면서 기억과 희망을 지켜나가야 하겠다. 이 여정에는 그 어느 때보다 한국교회 순교자들에 대한 전구가 절실하다.
한국의 순교자들이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글 _ 조한건 프란치스코 신부(한국교회사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