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아름다움 담아 큰 의미…재능기부로 운영하며 전시도 “하느님 자녀로서 ‘인생사진’ 남기니 기쁠 따름”
“하느님 자녀다운 내 모습을 남길 수 있어서 기뻐요. '참 신앙인’으로 사람들 기억에 남는다는 것도 기쁘고, 훗날 주님 곁으로 갈 마음 편한 준비도 된 것 같아요.”
서울 용산본당(주임 황응천 스테파노 신부) 신자 이명희(데레사·85) 어르신은 기도하는 모습의 ‘인생사진’을 촬영하고자 7월 4일 성당에 차려져 있는 스튜디오를 찾았다. 이씨는 카메라 미리보기 이미지 속, 미사포를 쓰고 묵주를 꼭 쥔 자신을 마주하며 “누가 찍어줄 일 없는 나의 신앙인다운 면모라 각별히 다가온다”며 “완성될 사진이 기다려진다”고 웃었다.
본당은 5월부터 ‘인생사진을 찍어 드립니다’ 프로그램을 열어 본당 어르신들에게 장수사진(영정사진)의 개념을 변용한 인생사진을 찍어주고 있다. 어르신들의 평범한 모습도 찍지만, 미사포를 쓰거나 묵주, 성경을 들고 진지하게 기도하는 모습을 찍어주면서 그들의 영적인 진면모를 기록해 주자는 취지다. 신앙으로 노년을 거룩히 보내는 성령 충만한 내면…. 그를 이해할 리 없이 메마른 영정사진만 찍는 성당 밖 사진관과 달리 스스로 성화하는 어르신들의 참된 아름다움을 담아낸다.
완성된 사진을 받는 어르신들은 “내가 기도하는 모습이 이렇게나 거룩하고 보기 좋았구나” 하며 감탄한다. 처음에는 “벌써부터 영정사진을 찍냐”며 볼멘소리하던 자녀들도 막상 사진을 보면 집에서 가장 잘 보이는 공간에 걸어 둔다. ‘하느님을 닮은 우리 멋진 엄마 아빠’라는 글귀까지 적는 자녀들도 있다.
돌아가신 어르신에게는 그가 살아생전 얼마나 주님을 믿고 의지했는지 보여주는 훌륭한 영정사진이 된다. 올해 초 한 신자의 장례식에서는 유가족의 뜻대로 그의 기도하는 모습 사진이 영정으로 내걸렸다. 숙연한 평온함으로 손님들을 맞는 어르신을 마주한 비신자 조문객들은 “나도 어르신처럼 선종(善終)의 길을 걷고 싶다”며 가톨릭 신앙에 관심을 표현한다. 냉담을 떨쳐낸 조문객도 많다.
사진들은 개인에게 안겨지기 전 성당 1층 ‘만남의 방’에서 1주일간 ‘기도의 힘’이라는 주제로 전시된다. 신자들은 일면식뿐이던 교우들의 모습을 보며 “나처럼 하느님 없이 못 사는 분이구나” 하는 공감대로 묶인다. 가슴 한구석에서 미워하던 교우들에게는 화해의 마음이 싹튼다. “저 교우도 하느님을 닮은 사람인데, 내가 너무 미워했었나” 하며 반성하는 신자도 있다.
이날 사진을 찍은 심정보(안드레아·66)씨는 “오직 믿는 이들만이 표현할 수 있는 모습을 기록했다는 데서 뜻깊은 시간이 됐다”고 말했다. 이어 “손주들이 사진을 보며 할아버지가 하느님 제자였음을 기억하고, 똑같이 독실한 신앙인으로 살아갔으면 한다”고 전했다.
◆ 미니 인터뷰 - 정영길 사진작가
“하느님 닮은 아름다움 사진에 담아내고 싶어요”
본당에 ‘인생사진을 찍어 드립니다’ 프로그램을 제안하고 촬영을 전담해 온 정영길 사진작가(타대오·69). 매주 목요일이면 성당에 그가 손수 차린 촬영 전용 스튜디오에서 종일 20명 넘는 어르신들을 찍어드리는 투혼을 펼친다. 사진 수백 장 중 최고의 사진을 엄선하고 밤을 지새우는 보정 작업도 혼자 맡는다.
코로나19 전에는 액자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본당 사목위원들에게 장수사진을 찍어주며 찬조금을 모금해 비축했다. 올해 5월 인생사진 촬영을 하며 바빠졌지만, 매달 한 번 명동밥집을 찾아 노숙인들에게 장수사진을 찍어주는 봉사도 게을리하는 법이 없다. 그는 지난 3월부터 명동밥집에서 사진촬영 봉사를 하고 있다.
은퇴 후 전문 사진작가로 활동한 지 12년째, 이렇듯 재능기부에 자신을 내던지다시피 하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정 작가는 “어르신들 본인도 마주한 적 없는, 인생 최고로 아름다운 모습을 남겨 드리려는 열정으로 절로 몸이 움직여진다”고 밝혔다.
정 작가는 “인생의 주인공으로서 최고로 멋진 모습은 참된 내면의 모습이기에 기도 모습을 찍어드리고 있다”고 밝혔다.
“옷, 머리, 장신구처럼 외적인 것에 시선이 가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묵상하는 모습, 성경과 묵주 등의 상징물이 어우러진다면 영적 자유라는 참된 아름다움을 담아낼 수 있을 것이라는 발상이었죠.”
촬영하는 어르신들에게는 실제로 눈을 감고 기도하길 부탁드린다. 눈을 지긋이 감은 채 속으로 ‘예수님, 성모님’을 되뇌며 내면에 집중하는 어르신…. 여러 각도에서 찍어서 “이토록 하느님을 닮으셨습니다” 하며 보여드리면 순식간에 활짝 웃는 어르신들의 미소는 정 작가를 언제나 가슴 뛰게 한다.
“자신의 참모습을 떠올리며 닮아가는 ‘이미지’의 힘이 곧 ‘기도’의 힘”이라는 정 작가. 그는 “어르신들에게 내적으로 충만했던 생전의 아름다운 모습을 안겨드리고, 사후에는 모두에게 그렇게 기억될 수 있도록 앞으로도 사진을 찍어드리고 싶다”고 덧붙였다.
박주헌 기자 ogoya@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