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마당

[독자마당] 가을의 기도

박정연
입력일 2024-10-04 수정일 2024-10-06 발행일 2024-10-13 제 3412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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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가을이 이제야 자리를 잡았습니다.

입추의 절기가 무색하도록
우리의 잘못 살아 간 결과인 폭염이
오래 머문 시간
무더위 늦여름 안에서
열매들이 익어가는 소리는
아픔을 견뎌낸 인내와 희생의 소리였습니다.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의 먹이가 되기 위해
바쳐진 오곡백과, 열매들의 희생제사는 우리 주님을 닮은 듯
온 몸으로 태양의 뜨거운 열기와
모진 비바람 이겨낸 사랑의 승리
창조주께 영광 돌리며 순종한 아름다운 결실이었습니다.

이렇게 가을이 아름다운 대자연을 이루려 형형색색 곱게
점점 무르익어가고 있는 계절 앞에서
주님, 우리를 돌아봅니다.

그 무더운 날들 안에서
온갖 열매들은
태양의 뜨거운 빛을 받아 안으며, 매서운 바람을 끌어안으며
사나운 빛줄기를 어루만지며
활활 타는 촛불처럼 자신을 태우며 익어 갈 때
우리는 덥다, 덥다, 못 참겠다, 하면서

차디찬 인공 바람으로 마구 몸을 식히며 더위의 악순환은 반복되고
하나뿐인 지구는 아픔으로 울어야 했지요.

인간이 더위를 피해 살아간 방법은 이기심과 탐욕, 모두 죄악이었습니다.
무절제한 쓰레기로 땅은 신음하고 있고 무분별한 행동들로 바다는 오열하고 있고
인간 만능의 탐욕으로 산과 숲은 눈물 흘리고 있습니다.

주님, 주님을 슬프게 한 저와 인류를 용서하소서. 이제 새롭게 하소서.

언젠가는 한줌의 흙으로 돌아가야 하는 피조물의 존재로서
이 숭고한 가을이 주는 교훈을 듣습니다.

“피조물들이여! 창조주를 기억하며 열매를 맺어라.”

주님! 인내와. 절제. 선행으로 아름다운 결실을 맺으며 사랑. 기쁨. 평화 온유. 친절로 주님 주신 동산을 곱게곱게 물들여가도록 이 가을에 다짐해 봅니다. 주님 이끌어주소서. 아멘.

글 _ 김영희 요셉피나(서울 묵동본당)

박정연 기자 vividcecil@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