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께서 주신 손재주, 잘 키워 봉헌하려 노력”
우연히 들어선 조각의 길
저는 전라북도 무안 산골에서 태어났어요. 예전에는 차도 들어갈 수 없는 오지였어요. 그곳에서 중학교까지 다녔어요. 고등학교는 안 다녔어요. 학교에서 배우기보다는 사회에 나가 배우고 내 삶의 토대를 세우기로 생각한 거죠. ‘밖에 나가 몸으로 부딪치자’ 이렇게요. 아버지께 제 결심을 말씀드리고 서울로 올라왔어요. 부모님이 실망하지 않게 정말 엄청 노력했어요.
처음에 서울로 올라와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CCK) 지하에 있던 작업실에 들어갔어요. 거기서 서울대 조소과 출신인 고(故) 강홍도(요한) 선생님 밑에서 조각을 배웠어요. 조각이라는 일이 작가가 이미지를 구상하지만 혼자서 작업하기는 힘들어 조수가 필요하거든요. 흙으로 빚고 돌을 쪼아내는 조수로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작업을 했어요.
그런 다음에는 고(故) 김세중(프란치스코) 선생님 연구실로 들어갔어요. 서울대 학생들과 같이 작업에 참여했죠. 당시에는 큰 조형물들 작업을 많이 했어요. 이런 대규모 조형물을 학생들만 데리고서는 만들 수 없었어요. 위험하기도 했고요. 우리 같은 기술자들이 주물에 들어가기 전 단계 작업 등 마무리 작업을 했어요. 김세중 선생님과 작업을 하면서 힘든 일도 많았어요. 일이 계속 있지 않았거든요. 연구실 작업이 없을 때에는 투잡, 쓰리잡까지 뛰어야 했어요.
조각가의 길로
김세중 선생님 선종 후 개인 작업실을 열었어요. 나름 독립한 셈이죠. CCK와 김세중 선생님 작업실에서 작업을 하며 알게 된 교수님들과 함께 작품들을 만들었어요. 그런데, 주변에서 전시회를 한번 열라고 재촉하더라고요. 제가 만드는 작품들을 여러 사람들에게 보여주면 일을 하는 데 도움이 될 거라면서요. 그래서 작업실을 열고 얼마 후 전시회를 한 번 했어요. 제가 정규교육을 받지는 않았지만 이 정도는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기회였어요. 전시회 이후 조금씩 인정을 받기 시작했어요.
CCK와 김세중 선생님 작업실에서 조각 작업을 하면서 다양한 성물들을 만들었지만, 독립한 이후로도 저는 신자는 아니었어요. 먹고살기 힘들 때였고, 아이들을 건사하기 위해서 밤낮으로 일을 해야 했기에 시간을 낼 수가 없었어요. 신자가 아니다 보니 교회 안에서는 작업을 하는 데 한계가 있었어요. 저도 먹고살아야 했기에, 예비신자 교리를 받고 가톨릭신자가 됐죠. 일 때문에 선택한 종교였지만, 종교 생활에는 나름 열심히 하고 있어요.
신앙이 없었을 때와 신앙이 생기고 난 후 작품에 티가 나더라고요. 전에는 정성도 좀 덜 들어갔는데, 그냥 일로 했던 거니까요. 그런데 신앙이 생기고 난 후에는 성미술 작업에 눈이 좀 뜨이게 됐어요. 많은 분들이 보고 기도하는 성물이잖아요. 마음을 전달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지금도 성미술 작업을 할 때는 교회에 봉사한다는 생각으로 작업을 해요.
그동안 여러 곳에 성미술 작품을 봉헌했는데요, 그중에 청주교구 감곡매괴성모순례지성당 성모 동굴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감곡과의 인연은 산꼭대기에 십자가상을 설치한 것으로 시작했어요. 그 후 종종 성지를 오가며 여러 작업들을 했는데, 성지에서 루르드 성지에 있는 것과 똑같은 성모 동굴을 조성해 달라고 의뢰했어요. 루르드까지 갈 여건이 안 돼서 현지에 있는 지인에게 성지의 성모 동굴의 사진을 찍어달라고 요청했고, 그다음부터는 비용문제를 빼면 일사천리로 작업이 진행됐어요. 높이가 13미터가 되는 동굴을 찰흙으로 빚어 모양을 만들었어요. 찰흙을 쓰면 정교하게 잘 표현할 수 있거든요. 거기에 표현력이 좋은 실리콘으로 본을 떠서 성모 동굴을 완성했어요.
항상 최선 다하는 작가 되고파
이제 어느 정도 먹고살 수 있게 되니, 제 안에 창작의 열의가 올라요. 또다른 돌파구도 필요했고요. 그래서 최근에 목우회라는 미술가 단체의 공모전에 제 작품을 선보이고 있어요. 목우회에서도 제 작품을 인정해 주고 있고, 조만간 목우회 회원으로도 등록이 될 것 같아요. 제 자신만의 작업을 한다는 게 쉽지가 않아요. 머릿속에 작품을 구상해도 계속 의뢰가 들어오는 작업을 해야 하니까요. 제 작업을 중단하고 다른 작업을 하다보니 집중이 어려운 거죠. 목우회 회원이 되면 회원전에도 작품을 내야 하니 신경이 쓰이긴 한데요, 제가 하고 싶은 작업을, 제가 만들고 싶은 작품을 만든다는 데에 의미를 두고 있어요. 이런 면에서 저는 아직 학생인거죠.
그래서 제 작업실은 24시간 열려 있어요. 작가들도 많이 와서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의 작품에 대해 품평도 하고요. 주일에도 오전에 미사를 드리고 3~4시간 작업실에 있다가 퇴근해요. 주일 오후에만 잠시 쉬는 일상이에요.
성미술 작업에는 항상 최선을 다하지만 만족은 없어요. 최선을 다해 만들어 설치하지만 항상 미비한 점이 보이거든요. 죽을 때까지 주어진 작업에 최선을 다하고, 제가 원하는 작품을 하는 작가가 되고 싶어요.
◆ 윤경호(요셉) 작가는
1961년 전라북도 무주에서 태어났다.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조각실에서 조각 작업에 입문해 김세중 작가 연구실 등을 거쳐 현재 호성조각조형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2006년 평화화랑 개인전 등 세 차례 개인전을 열었으며, 청주교구 감곡매괴성모순례지성당 성모 동굴을 조성했다.
최용택 기자 johnchoi@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