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기다리던 세례식 날. 두근두근하는 마음으로 성당으로 향했다. 하늘은 어쩜 이리 맑은지. 진짜 맑은 가을 하늘이다. 어제까지 추웠는데 또 나를 위해 이렇게 좋은 날을 주셨나? 콧노래가 절로 나올 것만 같았다. 무슨 노래를 할까? 그래, 이런 날은 성가를 부르면 좋겠다. 근데 내가 아는 성가는 대영광송 307번 밖에 없잖아. “하늘 높은 데서는 하느님께 영광~” 참, 여기는 신부님이 부르셨지. “땅에서는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들에게 평화~” 난 이 부분이 특히 좋은 것 같다. 예비신자 교리 선생님이 성가는 두 배의 기도 효과가 있다고 하셨으니, ‘다른 성가들도 얼른 배워야겠군’이라고 생각했다. 차 안에서 혼자 큰 소리로 대영광송을 부르며 성당으로 향했다.
수원교구 모전동성당은 집에서 신호에 걸리지 않으면 차로 5분도 안 걸린다. 가까운데 사는 사람이 꼭 지각한다고 했던가? 날이 날이니만큼 다른 날보다 약간 꾸미느라 조금 늦었다. 주차 봉사를 하고 계신 처음 뵙는 형제님께 오늘 세례받는다고 자랑하고 싶은 것을 꾹 참고 후다닥 뛰어가니, 기다리고 있던 선교분과 봉사자분께서 가슴에 생화 코르사주를 달아주셨다. 숨 쉴 때마다 장미향이 바로 코밑에서 계속 올라오니 기분이 더 좋아졌다.
사실 내가 성당에 첫발을 들여놓은 건 좀 오래되었다. 친하게 지내는 가타리나 언니로부터 같이 성경 공부하러 가자는 권유를 받고 성경은 상식적으로도 알면 좋겠다 싶어 ‘여정’ 공부를 시작했던 게 벌써 다섯 학기째가 되었다. 코로나19 때 쉬었던 것까지 합치면 5년 정도 된 것 같다. 그러던 중 예비신자 교리반이 열려 친한 동생 안젤라가 일방적으로 등록을 해놓았다고 통보했다. 원래 나는 성경 공부만 하고 하느님을 믿어야겠다는 생각은 없었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뭔가에 이끌리듯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어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성당에만 오면 좋은 일이 많이 생기는 것 같았다. 우리 여정 식구들은 원래 모두 좋은 사람들인 것 같았지만 특히 내가 예비신자라고 미안하리만큼 더 친절하게 대해주셨다. 성당만 갔다 오면 뭐라도 좋은 일이 생겼다. 정말 하느님이 나를 부르시는 건가? 생각될 정도로.
가톨릭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랐던 내가 예비신자 교리를 통해 배우는 시간은 정말 새롭고 흥미로웠다. 성호경 긋는 법부터 기도하는 법, 기도의 종류, 한국 천주교 역사 등 생각지도 못했던 것들이 가득했다.
10개월간 주일 아침마다 해온 교리 공부를 끝내고 드디어 오늘 세례를 받게 되었다. 오늘 함께 세례받는 고등학생 지형이가 하얀 코트를 입고 왔는데 어찌나 예뻐 보이던지, 나는 까만색으로 온몸을 감싸고 온 게 좀 아쉬웠다. 나도 밝은색 옷을 입고 빛나는 느낌을 내고 싶었지만, 세례식이 끝나고 구역별 연도 대회에 참석할 예정이어서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나도 이미 우리 구역의 한 명이 된 것이다.
세례식이 시작되고 드디어 내 이름이 세례명 ‘에스테르’로 불렸다. 신부님이 머리에 손을 얹어 기도해 주실 때는 왠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처음으로 ‘예수님의 몸’도 받아 모셨다. 모든 게 새롭고 신기했다. 오늘 하루 넘치게 축하를 받았다. 생각보다 더 복된 날이었다. 대모님이 미사보랑 파우치를 준비해 주셨고 여정 식구들은 성경, 성가책, 기도서, 십자고상 등을 선물해 주셨다. 또한 구역 식구들이 주신 꽃다발과 성모상을 비롯해 신부님이 주신 가톨릭신문 구독권까지 너무 많은 선물과 축하를 받아 몸 둘 바를 모를 정도였다. 오늘 하루 너무너무 행복한 날이었다. 나중에 하느님께 가는 길도 이렇게 행복할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교리 선생님이 각자 좋아하는 성경 문구를 정한 다음 예쁜 글씨로 써서 코팅해 주셨는데 나의 세례 문구는 ‘네 자선을 숨겨두어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마태 6,4)이다. 나는 이 말이 참 좋다. 착한 일을 남들 몰래 할 기회가 있을 때 하느님은 알고 계실 테니 말이다. 나도 하느님께서 좋아하실만한 자녀가 되고, 또 새로 세례받는 후배가 들어올 때 이 기쁨을 느낄 수 있게 많이 축하해 줘야겠다.
드디어 하하하! 나는 이제 당당한 천주교인이 되었다.
글 _ 임은옥 에스테르(수원교구 모전동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