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한국 그리스도인 일치순례 (중) 제네바에서 ‘일치’를 기억하다
한국그리스도교신앙과직제협의회(공동의장 이용훈 마티아 주교·김종생 목사, 이하 신앙과직제)는 11월 25일부터 12월 3일까지 로마 교황청, 스위스 제네바 세계교회협의회, 튀르키예 콘스탄티노폴리스 세계총대주교청 등지에서 ‘생명과 평화의 길, 한국 그리스도인 일치순례’(이하 일치순례)를 진행했다. 두 번째 특집에서는 제네바에서의 여정을 소개한다.
■ 갈라진 자리에서 일치를 기억하다
“제네바는 개신교의 로마로 여겨지는 곳입니다.”
스위스 제네바를 방문한 신앙과직제 일치순례 순례단을 안내한 세계교회협의회 신앙과직제 책임 오다이르 마테우스 목사는 제네바를 로마에 비견했다.
제네바는 종교개혁가 장 칼뱅이 개신교를 부흥시킨 본산지다. 칼뱅은 제네바에 초청을 받아 개신교를 체계화시켜 가면서 사람들을 가르쳤고, 그의 사상은 제네바를 비롯한 스위스, 프랑스, 영국, 미국 등지로 확산됐다. 우리나라 개신교인의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장로회 등의 교단이 칼뱅이 주창한 신학과 교리를 따르고 있다.
순례단은 칼뱅이 1547년부터 1564년 선종하기까지 살았던 칼뱅의 생가를 시작으로 칼뱅이 목회했던 제네바 생 피에르 교회, 종교개혁 국제 박물관 등을 방문하며 칼뱅과 종교개혁 당시의 모습을 살폈다.
특히 순례단은 생 피에르 교회에서 종교개혁의 결과를 더욱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생 피에르 교회는 가톨릭교회의 성당이었던 곳으로, 1536년부터 개신교 예배당으로 사용하는 곳이다. 지금도 원어로는 지금도 카테드랄(Cathedrale, 주교좌성당)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있다. 생 피에르 교회가 개신교 예배당이 되면서 원래 있던 성화와 성상들은 모두 제거됐고, 벽에 그림이 있었던 흔적만이 남게 됐다.
순례단이 방문한 성 피에르 교회에는 가톨릭교회였다면 제대가 있었을 자리에 성경만이 놓여 있었다. 또 옛 독서대 아래에 설교대가 설치돼 가톨릭교회와는 다른 개신교의 특색이 두드러졌다. 또한 설교대 계단 옆에는 칼뱅이 설교를 준비하며 앉아있었다고 하는 의자가 전시돼 있어 이곳에 담긴 개신교의 역사를 실감하게 했다.
이렇게 제네바는 가톨릭교회와 개신교가 갈라진 곳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일치를 기억하는 곳이기도 했다. 바로 세계 352개 그리스도교 교단이 함께 일치운동을 전개하는 세계교회협의회(World Council of Churches, 이하 WCC)의 본부가 바로 이곳, 제네바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네바, 칼뱅이 개신교 체계화시킨 곳…종교개혁 당시 변화 엿볼 수 있어
일치운동 펼치는 WCC 본부 위치, 교회 일치 넘어 화해·평화 활동도 전개
■ 일치로 일구는 평화
일치순례 순례단은 WCC 본부를 방문해 제리 필레이 총무를 만나고, WCC 관계자들과 다양한 세미나를 통해 그리스도인 일치와 평화, 특별히 한반도 평화를 증진시키기 위한 교회의 노력에 관해 심도 있는 논의를 진행했다.
WCC는 세계의 각국의 그리스도교 교단들이 대화와 논의를 통해 상호 이해의 정신으로 봉사하고 협력하고자 1948년 설립된 국제협의체다. 교회일치운동을 비롯해 난민 등 가난한 이웃에 대한 봉사, 정의와 평화 증진 활동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순례단은 WCC 관계자들과 ▲교회 간 연대 ▲일치 사명과 에큐메니컬 형성 등에 관해 세미나를 하고, WCC가 운영하는 보셰이 에큐메니컬 신학연구소를 방문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진행했다.
순례단은 WCC와 여러 세미나를 진행하면서 WCC가 전개해 온 교회일치운동에 관해 배울 수 있었다. WCC는 5억8000만 신자들과 함께 일치운동을 전개하는 협의회다. 또한 가톨릭교회와도 긴밀하게 대화를 나누며 일치운동에 함께하고 있을 뿐 아니라 6억 명의 신자들이 소속된 세계복음주의연맹(World Evangelical Alliance)이나 오순절교회 등과도 대화를 이어나가고 있다.
이런 일치운동은 곧 정의와 평화를 위한 활동으로 이어진다. WCC 커뮤니케이션 책임자 마리안 에이더스텐 씨는 “이렇게 많은 숫자가 함께하기 때문에 WCC 본부와 인근에 있는 유엔(UN)과 대화할 때 전파력이 크고, 세상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서 “이것이 일치와 정의와 평화를 위해 WCC가 지닌 가장 큰 장점”이라고 밝혔다.
순례단은 WCC와의 활동이 ‘한반도 평화’를 증진하는데 구체적인 도움이 되도록 일치순례 중 다양한 활동을 전개했다. 순례단은 WCC에서 한반도 평화 관련 활동을 담당하는 피터 프로브 씨와 현재 진행 중인 WCC의 활동을 확인하고, 세계 여러 교회가 함께 한반도 평화를 위해 할 수 있는 방안들을 모색했다. 또 WCC의 총책임자인 필레이 총무를 만나 한반도 평화를 위한 지속적인 관심과 노력을 부탁했다.
신앙과직제 공동의장 김종생 목사는 필레이 총무에게 “일치순례가 교회 일치에서 끝나지 않고 주님이 원하신 화해와 통일을 위한 여정이 되길 바라고 있다”면서 “그동안도 노력해 주셨지만 더 적극적인 관심과 연대를 바란다”고 전했다.
필레이 총무는 “WCC는 특별히 한반도의 평화 문제에 협력하고 있다”며 “현재 북한의 모든 것이 단절된 상황이지만 WCC는 결코 멈추지 않고 북한과 대화가 이뤄지도록 계속해서 적극적인 노력을 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필레이 총무는 “분열된 세상 속에서는 먼저 그리스도인이 하나 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우리가 하나가 돼 일치하는 것이 세상에 메시지를 주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