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 사태’와 ‘탄핵 정국’에 교회 각계각층 성명·시국미사 잇달아
“최고 통수권자로서 올바른 결정이었는지 많은 국민이 대통령에게 묻고 있다.”
“민주주의와 인권도 멈췄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또다시 위협받는 상황 앞에서 결코 침묵하지 않을 것이다.”
비상계엄 선포와 해제, 탄핵소추안 불성립에 이어 헌정을 유린한 계엄 세력에 대한 수사가 전방위로 확대되며 정국 혼란이 이어지는 가운데, 주교회의는 “절차적 정당성에 문제가 많은 비상계엄에 대해 대통령이 진심으로 사과하고 책임을 져야 한다”고 밝혔다.
교회 내 기관·단체도 잇달아 성명과 선언문을 발표하고, 헌법 질서를 무시한 대통령의 즉각 퇴진을 촉구했다. 국회, 특히 대통령 탄핵안 표결에 불참하며 민심을 외면한 국민의힘 의원들에게는 추후 있을 탄핵안 표결에 참여할 것을 강력히 요구했다.
주교회의(의장 이용훈 마티아 주교)는 12월 4일 ‘비상계엄 선포와 해제를 바라보는 한국 천주교회의 입장’을 발표하고, “계엄령이 선포되는 것이 타당한 결정이었는지, 최고 통수권자로서 올바른 결정이었는지 많은 국민이 대통령에게 묻고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이어 “비상계엄 선포와 해제 과정에 대해 대통령이 직접 국민 앞에 나와서 일련의 사태를 설명하고 국민에게 진심으로 사과하며 그에 따른 책임을 져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와 관련 교황청 공식 매체인 바티칸 뉴스도 5일 보도를 통해 주교회의의 발표를 ‘강경한 성명’이라고 소개하고, “한국 주교단은 책임감 있는 태도와 대화를 촉구하며 대통령과 정부가 한국 천주교와 국민의 요청에 진심으로 응답할 것을 요구했다”고 전했다.
천주교 등 7대 종단 대표들의 협의체인 사단법인 한국종교지도자협의회도 5일 “대통령과 정치지도자들의 판단과 결정이 국민을 불안하게 한다면 그 역할 수행에 대한 점검과 책임이 반드시 함께 따라야 한다”고 했다.
대통령의 퇴진 또는 국회의 대통령 탄핵안 가결을 직접적으로 촉구하는 성명도 연이어 발표됐다.
전국 13개 교구 정의평화위원회와 남녀 수도회 장상연합회는 4일 “무계획과 즉흥성, 가족이 국가보다 우선하는 사람은 국가 최고 통수권자로서 자격이 없다”며 “대통령이 해야 할 일은 하야이고, 그렇지 않는다면 이제 국회가 국민의 명령에 응답해 빠른 시간 안에 탄핵안을 통과시켜야 한다”고 요구했다.
가톨릭농민회도 같은 날 “누구보다 앞장서 농민이 일궈 온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또다시 위협받는 상황 앞에서 결코 침묵하지 않을 것”이라며 “윤석열 정권 퇴진을 위한 투쟁은 한 정권을 퇴진시키는 것을 넘어 새 시대를 열기 위한 서막임을 선언한다”고 밝혔다.
천주교인권위원회는 5일 “비상계엄 선포는 명백한 민주주의 파괴 시도이고 국민 모두의 인권을 무참히 침해한 인권침해 사건”이라고 규정했다. 이어 “총과 군대로 자신의 권력을 지키고 원하는 바를 이루려는 이들은 법의 심판을 받는 일 말고는 나라와 국민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했다.
같은 날 정의평화민주 가톨릭행동도 신자 3875명 명의의 선언문을 발표하고 “반헌법적, 반민주적 비상계엄이라는 폭거를 자행한 윤석열의 즉각적인 하야 또는 국회의 탄핵뿐 아니라 내란죄 수괴로서 엄정한 수사를 촉구한다”고 밝혔다.
국제 가톨릭평화운동 단체 ‘팍스 크리스티 코리아’(Pax Christi Korea)는 6일 “우리는 한국의 모든 군인과 경찰, 공무원이 양심에 따라 불법적인 윤석열의 지시가 아니라 헌법과 민주주의 수호하는 의무를 충실히 수행할 것을 촉구한다”며 “특히 천주교 신자는 하느님이 부여한 양심과 가톨릭 사회교리 그리고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 식별하고 행동해 달라”고 청했다.
서울대교구 가톨릭대학생 연합회는 6일 68대 의장단과 연합회 산하 가톨릭학생회 이름으로 발표한 성명에서 “‘우리는 어찌하여 올바른 일을 스스로 판단하지 못하는지’(루카 12,57 참조) 대통령을 위시한 계엄 선포 주동자들에게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며 “정당한 사유 없이 평화와 일치를 침해하는 자들은 하느님의 바른길을 벗어나는 자들이라 믿는다”고 전했다.
전국 각 교구와 교회 단체의 탄핵 촉구 미사도 잇달아 열렸다.
가톨릭기후행동은 12월 9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정문 앞에서 사제와 수도자, 평신도 등 2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윤석열 탄핵 촉구 생명평화미사’를 봉헌했다.
서울대교구 박주륭(이사악대건안드레아) 신부는 강론에서 “혼란스러운 작금의 세태는 비단 뉴스에 이름이 오르내리는 사람들만이 아니라 우리 각자의 크고 작은 방관과 무관심, 무책임이 빚어낸 결과는 아닐까 함께 성찰한다”고 전했다. 이어 “새로 태어나고자 하는 희망으로 우리는 시국의 광야에, 광야의 시국에 모였다”며 “회개와 책임, 사랑과 정의를 살아내는 용서와 새로 태어남을 맺는 풍요로운 겨울을 우리와 함께 살아내기를 이 미사 중에 함께 기도하자”고 청했다. 미사 참석자들은 탄핵안 표결에 불참한 국민의힘 의원 105명의 이름을 호명하며 탄핵안 표결에 동참할 것을 촉구했다.
대전교구 정의평화위원회도 9일 대흥동주교좌성당에서 전국 각 교구 사제 100여 명과 신자 10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시국미사를 봉헌했다. 시국미사 후에는 성당에서 우리들공원까지 행진했다. 광주대교구는 12일 남동성당에서 교구장 옥현진(시몬) 대주교 주례로 시국미사를 봉헌했다.
앞서 국회는 지난 7일 본회의를 열어 윤석열 대통령 탄핵안 표결을 실시했다. 하지만 국민의힘 안철수·김예지·김상욱 의원을 제외한 여당 의원들이 김건희 여사 특검법 표결 뒤 전부 퇴장하고 탄핵안 표결에 참석하지 않으면서 의결 정족수를 채우지 못해 ‘투표 불성립’으로 폐기됐다.
국민일보가 한국갤럽에 의뢰해 지난 6일부터 이틀간 전국 18세 이상 101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윤 대통령 탄핵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에 네 명 중 세 명꼴인 74%가 찬성한다고 답했다.
다수 국민들은 대통령이 자신과 가족만을 위해 헌법을 위반한 계엄을 선포한 데 이어 여당마저 당리당략과 개개인의 안위를 위해 탄핵안 표결을 거부한 것에 실망과 분노를 넘어 민주주의의 퇴보라고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이승환 기자 ls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