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

[말씀묵상] 주님 세례 축일

방준식
입력일 2025-01-02 14:32:08 수정일 2025-01-07 11:22:23 발행일 2025-01-12 제 3425호 18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제1독서 이사 42,1-4.6-7 / 제2독서 사도 10,34-38 / 복음 루카 3,15-16.21-22
Second alt text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루카 3,22)
평화를 전하는 사람, 그렇게 초대되어 모인 이들. 바로 우리입니다. 우리는 세례를 통해 하늘의 아들, 딸로 선언되고, 주님의 평화의 도구로 파견 받은 이들입니다. 님께서 가슴 깊이 심어주신 그 평화 잘 간직하고, 널리 전하는 귀한 하늘의 아들, 딸이 되시길 기도합니다. 글·그림 배영길(베드로) 신부. 인스타그램 @baeyounggil

세례는 유다교의 ‘미크바’라고 하는 물로써 부정함을 씻어내는 예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이는데, 제사의 가치가 상대화된 예수님 시대에 와서는 씻는 예식의 중요성이 더욱 커졌습니다. 특히 성전의 권위를 부정하고 광야로 들어간 꿈란 공동체 종교 생활의 중심이 되었으며, 여러 세례 운동가가 출현했습니다. 그런데 이들의 씻는 예식이 반복적이었다면, 세례자 요한의 세례는 일회적이었다는 중요한 차이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공생활을 시작하시기 전에 사해 근처의 요르단강 하류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십니다. 요한의 세례는 죄를 회개하게 하는 세례입니다.(루카 3,3) 그런데 회개해야 할 죄가 없는 흠 없는 어린양이신 예수께서 왜 세례를 받으실까요?

그 이유에 대해서는 예로부터 해석이 분분합니다. 예를 들면, 세례자 요한의 사명이 하느님의 뜻에 따른 것임을 보여주기 위해서라고도 하고,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상징적으로 미리 보여주기 위함이라고도 합니다. 심지어 예수님이 요한의 제자였기에 세례를 받았다고도 합니다.

그런데 저는 예수님의 세례에서 모든 죄인과의 연대를 봅니다. 예수께서 요르단강 변에 길게 줄지어 서서 자기 차례의 세례를 초조하게 기다리는 죄인들 사이에 계신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죄 없으신 분이 가련한 죄인들과 함께하심으로써 우리 모든 죄인 가운데 하나가 되십니다. 요르단에는 ‘내려간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신 예수께서는 이제 자신을 스스로 더 낮춰 죄인의 자리까지 내려오십니다.

죄 없으신 분이 스스로를 낮춰
모든 인간의 죄를 짊어지시고
죄인의 자리에서 받으신 세례
구원의 문 활짝 열어주신 의미

예수님은 모든 인간의 죄를 짊어지고 물속으로 걸어 들어가십니다. 뱃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스스로 물속에 던져지기를 청했던 요나가 떠오릅니다. 루카는 마태오나 마르코에 비해 예수님의 세례 장면을 매우 간략하게 기록하고 있는데, 그럼에도 특별히 강조하는 단어가 있습니다. ‘온 백성’.(루카 3,21) 단 한 사람도 예수님의 구원 은총에서 제외되지 않습니다.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자, 하늘이 열립니다. 옛 아담의 원죄 이후 닫혔던 하늘과 땅이 새 아담이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다시 소통하기 시작하는 경이로운 순간입니다.

또한, 성령께서 비둘기 같은 모양으로 내려오십니다. 성령을 받는다는 것은 기름 부음을 받는다는 것, 즉 예수께서 메시아(기름 부음 받은 이)이심을 말합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주시니 주 하느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이사 61,6)

그리고 하늘에서 성부의 소리가 들려옵니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루카 3,22) 이 짧은 문장은 여러 가지를 이야기하는데, 먼저 메시아를 가리키는 시편 2장 7절의 말씀을 상기시킵니다.

하느님과 예수님의 관계가 우리와의 관계와는 다름도 알려줍니다. 사실 이스라엘도 하느님의 맏아들이라 불렸습니다.(탈출 4,23 참조) 하지만 그 어떤 인간도 예수님처럼 하느님과 관계를 맺지는 못합니다. 그리스어로 ‘사랑하는’이라는 단어가 아들이나 딸과 함께 사용될 때는 외아들이나 외동딸을 가리키기 때문입니다. 성부와 성자의 관계는 유일무이합니다.

그리고 ‘마음에 드는’이라는 표현은 영원한 현재를 가리킵니다. 즉, 예수님은 처음부터 끝까지 성부의 마음을 흡족게 하는 아들, 성부의 뜻을 잘 헤아려 받드는 순종적인 아들이라는 말입니다.

이렇게 삼위일체 구조 안에 있는 예수님의 세례 장면은 성자께서 인간을 구원하고자 하는 성부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시기 위해 성령을 받은 메시아로서 우리 가운데 오셨음을 말합니다.

또한, 유다 전승에 따르면, 하늘의 열림, 성령의 강림, 하느님의 목소리는 종말의 때가 도래했음을 알리는 세 가지 표지입니다. 종말은 믿는 이에게는 두려운 멸망이 아니라 바라마지않는 궁극적인 구원의 때이죠. 예수님의 세례로 구원의 문이 활짝 열렸습니다.

Second alt text

글 _ 함원식 이사야 신부 (안동교구 갈전 마티아본당 주임)
안동교구 함원식 신부는 1999년 사제품을 받고 2017년 프랑스 파리가톨릭대학교에서 논문 「욥기 안에서의 조화 혹은 불협화음」으로 성서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안동교구 목성동주교좌·영덕·안계본당을 거쳐 현재 갈전 마티아본당 주임 겸 안동교구 성서 사도직 위원장으로 사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