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센병(나병)의 아버지로 살았던 이경재 신부님(알렉산델, 1926~1998)님은 ‘성 라자로마을’을 만들었다. 구약시대 나병은 하느님이 주는 천벌로 여겨졌다. 나병환자를 문둥이라고 한 것은 우리나라 남쪽 지방의 욕설이었다. 이 신부님은 40여 년 동안 나환우에 대한 봉사로 자신의 모든 삶을 바쳤다.
신학생 때 다른 신학생들과 성 라자로마을을 방문한 적이 있다. 이 신부님이 미사 때 우리 신학생들에게 하신 강론 말씀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있다. “나환우들의 진짜 고통은 손이 문드러지고 발가락이 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로부터, 공동체와 격리되어있다는 것입니다. 천벌을 받은 사람처럼 자신의 모습을 숨기며 살아야 한다는 것이 가장 큰 고통입니다.”
어렸을 때 아버지가 경영하시던 토기공장이 일감이 없어 한가하던 겨울, 수십 명의 사람이 얼굴을 꽁꽁 가린 채 한동안 머물다 밤중에 몰래 어딘가로 가는 것을 여러 번 봤다. 나중에 그들이 나병환자들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들이 공장에 머무는 동안 근처에 사람들이 얼씬도 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참 슬픈 일이다.
나병환자들과 16년간 동고동락하면서 사목했고 결국은 나병환자가 된 성 다미안 신부님은 나병에 걸리고 나서 “하느님, 감사합니다. 저는 나병의 고통을 통해 하느님께 더 가까이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제가 나병이 아니었으면 하느님을 이처럼 절박하게 뵙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저에게 나병을 주신 것을 진심으로 감사합니다”라고 기도했다.
유다 사회에서 나병에 걸린 사람은 부정한 자로 공동체를 떠나 혼자 살아야 했다. 성경에서 나병은 하느님이 벌을 내린 큰 재앙으로 간주되었다.(레위기 13장 참조) 현재는 치료가 가능한 병이 되었고 나병환자도 많이 줄었지만, 예전에는 나병에 걸리면 사회적으로 철저히 고립됐다. 얼굴이 일그러지고 몸이 썩어 들어가 사람들에게 두려움과 거부감을 일으키게 했다. 그러나 나병환자가 치료되면 사제에게 나아가 일주일 동안 관찰을 받고, 사제로부터 치료가 되었다는 판정을 받고 정한 제물을 봉헌한 후 다시 공동체로 복귀할 수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복음을 선포하시며 많은 병자들을 치유하셨다. 나병환자가 예수님께 와서 도움을 청했다. 그는 “스승님께서 하고자만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라며 치유를 청했다.(마르 1,40-45 참조) 예수님은 나병환자를 고쳐주셨고 사제에게 가서 깨끗해진 것을 보이라고 하셨다.
성경의 치유 이야기들은 환자가 먼저 예수님께 다가오는 것이 특징이다. 반면에 부르시는 장면에서는 항상 주도권이 주님께 있다. 가족과의 접촉마저 금지되었던 나병환자에게 예수님께서 기적을 베푸셨고 그를 공동체로 다시 돌아가게 했다는 것은 구원의 기쁜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예수님은 치유를 행하시고 자주 “네 믿음이 너를 살렸다”고 말씀하셨다. 즉 믿음이 치유의 근원이 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기도할 때 믿음을 청하는 기도를 많이 해야 하는 까닭이다.
글 _ 허영엽 마티아 신부(서울대교구 영성심리상담교육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