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공감하는 하느님’의 숨결

박주현
입력일 2025-01-22 09:29:40 수정일 2025-01-21 12:58:36 발행일 2025-01-26 제 3427호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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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원조 주일 취재차 서울 중곡동 한국카리타스인터내셔널 사무실을 찾은 1월 8일, 한국카리타스인터내셔널 활동가들에게서 가슴 아픈 소식을 들었다. 2023년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발발 이래, 가자지구에서 난민들을 위해 구호품 배부 등 활동을 펼치던 예루살렘 카리타스 활동가들이 벌써 3명 넘게 사망했다는 이야기였다.

그들은 죽음이 도사리는 곳에 스스로 난민이 돼 들어가 똑같은 난민들을 섬겼다. 이처럼 세계 곳곳에서 죽음마저 무릅쓰고 헌신하는 활동가들에게서 하느님의 숨결을 느꼈다. 인간과 똑같이 아파하는 신만이 보여줄 수 있는 지극한 사랑이었다.

그 사랑은 우리 주변에도 있었다. 과거 서울 동자동 쪽방촌을 취재했을 때 주민 활동가들에게서도 똑 닮은 사랑을 목격했다. 온갖 장애와 병을 앓는 그들은 다른 아픈 주민을 부축해 산책 다녀주고 상냥한 말벗이 돼줬다.

이런 ‘공감하는 사랑’들만이 인류에게 신이 있다는 믿음을 붙들게 한다는 묵상에 닿았다. 많은 이가 무신론에 빠지는 것도, 무결한 천상에 앉아 지상에서 고통받는 피조물들을 굽어보는 존재로 신을 생각해서가 아닐까. 이미 하느님은 희생하는 사람들의 모습으로 나타나 “나 여기 있어”라는 신호를 보내고 있는데 말이다.

저마다 상처 입은 우리는 고통의 이유라도 알고자 하느님을 찾지만, 그분의 대답 없음에 지쳐 부재만 느끼기도 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먼저 하느님의 숨결이 된다면, 낫지 않는 상처조차 이웃과 아픔을 나누고 일치하는 창구로 승화시킨다면 어떨까. 권정생의 동화 「강아지똥」에서, 주인공 강아지똥이 ‘나는 쓸모없는 똥’이라는 아픔을 빗물에 녹여 민들레에게 양분이 돼줬듯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