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독서 예레 17,5-8 / 제2독서 1코린 15,12.16-20 / 루카 6,17.20-26
“행복하여라!” ‘행복한 삶’은 누구나 바라는 삶의 모습입니다. 강의나 강론 때, ‘불행하고 싶은 분’이 계신 지 여쭤보면 대답하는 분이 한 분도 안 계십니다. 그렇지만 ‘행복하고 싶은 분’을 여쭤보면 모두가 ‘그러고 싶다’고 대답하십니다. 이처럼 사람은 누구나 행복한 삶을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그렇다면 행복한 사람은 누구일까요? 어떤 삶을 살아가면 행복할 수 있을까요?
예레미야 예언자는 ‘마음이 주님에게서 떠나지 않고, 주님께 머무는 사람’이 행복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을 신뢰하고, 그의 신뢰를 주님께 두는 이는 복되다”(예레 17,7)고 말씀하십니다. 주님께 신뢰를 두는 이의 복된 모습을 물가에 심어졌기에 뿌리와 가지가 튼튼하고, 잎도 푸르고 무성해 무더위에도 가뭄에도 걱정이 없이 열매를 풍부히 맺는 나무에 비유해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처럼 주님께 머무는 행복한 사람은 “하는 일마다 잘되리라”(시편 1,3)고 시편 저자는 노래합니다.
행복하게 살기를 희망하는 우리에게 예수님께서는 ‘누가 행복한 사람인지?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한지?’에 대한 가르침을 주고 계십니다. 산에서 밤을 새우며 기도하시고, 제자들 가운데에서 열둘을 사도로 부르신 예수님께서는 그들과 함께 평지로 내려가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말씀도 듣고 질병도 고치려고 온 유다와 예루살렘, 그리고 티로와 시돈에서 온 백성들에게 ‘참 행복’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행복 선언’과 ‘불행 선언’의 대조되는 가르침을 통해 일깨워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참 행복’에 대해 우선 말씀하십니다.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하느님의 나라가 너희 것이다. 행복하여라, 지금 굶주리는 사람들! 너희는 배부르게 될 것이다. 행복하여라, 지금 우는 사람들! 너희는 웃게 될 것이다.”(루카 6,20-21) ‘행복하여라, 지금 사람의 아들 때문에 미움과 쫓겨남과 모욕과 중상을 받는 사람들!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루카 6,22 참조) 한편 ‘부유한 사람들, 지금 배부른 사람들, 지금 웃는 사람들, 거짓된 평가와 칭찬을 받는 거짓 예언자가 된다면 불행하다!’고 말씀하십니다.(루카 6,24-26 참조)
예수님의 행복 선언에 대한 말씀은 세상을 멀리하자는, 또는 세상살이를 부정하자는 말씀이 아닙니다. 또한 세상의 가난, 굶주림, 슬픔을 당연시하거나 미화하자는 말씀이 아니라, 그것들을 극복하기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 삶의 기준, 행복의 기준이 무엇인지를 깨달아 살아가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있어서 삶의 기준, 행복의 기준은 무엇일까요?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행복의 출발점을 만족스러운 ‘성취’라고 일러주십니다. 곧 우리가 간절히 바라는 무엇을 이루게 되면 행복해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족스럽게 성취한 무엇이 악한 것이어서는 참다운 행복을 줄 수 없기에, 만족하게 성취한 무엇은 ‘선한 것’이어야 한다고 알려주십니다. 그리고 만족하게 성취한 선한 것이 일시적인 것이라면 그 또한 참 행복을 가져다줄 수 없기에, 그 만족하게 성취한 선한 것은 ‘영원한 것’이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따라서 ‘만족스럽게 성취한 선하며 영원한 존재’는 ‘참 행복이신 하느님뿐’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느님 때문에, 하느님의 뜻 때문에, 하느님과 일치하기에 세상적 가치를 포기할 수 있을 때 행복하다는 말씀입니다. 또한 자신이나 자기 집단만을 위한 재물이나 권력이나 명예를 추구하는 현세에서 기준이 아니라, 그것을 넘어서는 믿음과 희망에 가치를 두고 사랑을 실천하며 함께 살아갈 때 행복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행복은 가까이에서 그리고 일상의 소소한 것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행복의 파랑새’는 멀리 낯선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자신이 살고 있는 그곳에 있습니다. 우리 마음의 단 1%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우리 삶이 행복하게도 또 불행하게도 될 수 있습니다. 그 1%를 저울의 행복 쪽에 올려놓으면, 51%와 49%의 차이로 행복을 향해 우리 마음의 저울이 기울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설혹 나를 둘러싸고 있는 상황이 나로 하여금 불행 51%를 느끼게 만든다고 하더라도, 49%의 행복이 나에게 있음을 마음속에 떠올려 보면 행복을 향한 길을 놓치지 않을 수 있을 것입니다. 참 행복이신 하느님께서 일상의 아주 작은 것에서도 행복을 발견할 수 있도록 도와주실 것입니다. 일상 안에서 하느님께서 선물로 주시는 행복을 발견하고, 그 행복을 전하는 삶을 살아갑시다!
글 _ 조성풍 아우구스티노 신부(서울대교구 주교좌명동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