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계획 안에 있는 인간사랑

[하느님 계획 안에 있는 인간사랑-몸 신학 교리] 역사적인 몸, 초월적인 몸

이승훈
입력일 2025-02-19 06:37:33 수정일 2025-02-19 06:37:33 발행일 2025-02-23 제 3430호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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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생각에 변화를 줄 몇 단어를, 사람이 깊은 잠에서 깨어나 자신 앞에 있는 다른 사람을 보고 경탄하기에 이르는 문장에서 발견할 수 있다(창세 2,21-23). 

첫 번째는 깊은 잠이다. ‘잠’이라는 단어는 성경에 여러 번 언급되지만, 창세기 2장 야훼계 신학에서 사용된 ‘잠 (tardemah)’은 그 의미가 다른 단어이다. 일반적인 잠이 아니라 여자의 창조 활동에 하느님 행위의 독자성을 강조한 유비(analogia)적 표현이다. 즉 잠은 창조 이전 상태로 돌아갔다는 것이고, 특별한 신적 행위가 일어나는 상태를 뜻하는 것이다.(교리서 3, 8과 참조)

두 번째는 ‘갈빗대’다. 70인역 번역본에서 ‘갈빗대’로 번역된 이 단어는 고대 수메르 설형문자에서 ‘생명’을 가리킬 때 사용하는 단어다. 하느님께서는 갈빗대가 있던 자리를 살로 덮으시지 않고 메우셨다는 의미에 좀 더 깊이 다가가야 한다.

세 번째는 ‘살과 뼈’다. 히브리인에게 몸은 인격성의 외적 표현이고, 뼈는 인간 존재를 의미했다. 그러므로 ‘내 뼈에서 나온 뼈’는 ‘존재로부터 존재’를 가리키는 관계적 의미로 이해되어야 하고, ‘내 살에서 나온 살’은 신체적 특징은 다르지만 서로의 인격은 같다는 것을 뜻한다. 결국 첫 사람의 뼈로 여자를 지었고, 그 자리를 살로 메웠다는 성경언어는 같은 혈통, 동일한 계보에 속함을 가리키면서 남자와 여자의 본성이 ‘동질함’을 말한다.

네 번째는 창세기 2장 18절의 ‘그에게 알맞은 협력자’다. 이 히브리어 단어의 의미를 정확하게 번역하기는 매우 어렵다. 그래서 여러 언어로 번역된 성경을 살펴보면, 이 단어가 조금씩 다르게 번역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알맞은’은 ‘닮은’과 연결되지만 하느님을 닮았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에게 알맞은 협력자’이므로 성경적 의미에서 땅에 있는 너를 받아들임, 한 인격 ‘곁에’ 있는 한 인격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에서 비롯되는 그 ‘도움(aiuto)’을 가리킨다(교리서 9과 참조).

본뜻을 숨기고 상징과 은유로 표현한 갈빗대, 즉 남자의 여자, 두 사람의 동질성이 확보되지 않는다면 ‘알맞은 협력자’의 의미는 완전히 이해될 수 없고, 자칫 파트너 개념으로 이해될 수 있다. 분명 나와 다름에도 “내 뼈에서 나온 뼈요 내 살에서 나온 살이로구나!”하는 이 외침은, 다른 존재로 인한 기쁨, 내 앞에 있는 또 다른 ‘나’로 인한 기쁨으로 하나됨의 의미가 무엇인지 밝히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둘 다 알몸이면서 부끄러워하지 않았다”(창세 2,25)라고 한다. 앞에 수식어를 보면 그냥 한 남성성과 한 여성성의 관계가 아닌 ‘사람과 그 아내’의 관계, 즉 혼인의 관계이다. 사람은 자신과 다른 그 사람의 몸을 보면서 자기 몸의 의미를 알게 됐고, 주저함 없이 주면서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나와 다른 너는 내가 소유할 누구가 아니라 나에게 ‘주어진’ 누구이고, 나를 선물로 내어주고 또한 선물로 받아들임을 알몸으로, 그래서 온전히 하나가 됐다는 의미이다.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자기 배우자가 ‘또 다른 나(altro is)’이다. 소문자 ‘a’를 대문자 ‘A’로 쓰면 하느님을 뜻한다. ‘너’ 깊숙이 들어가면 ‘너’를 만드신 하느님을 만날 수 있다. 결국 하나됨은 서로를 바라보고 그 사람에게 집중할 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과 그 사람 안에 있는 근원적인 사랑을 바라볼 때 자신을 초월하는 일치에 이른다.

인간에 대한 존재적 질문, 즉 ‘나는 몸이다’에서 한 걸음 나아가 인간은 관계성의 존재임을 말하는 것이다. 몸이 너를 받아들이는 ‘집’(관계성의 존재)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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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_ 김혜숙 막시마(그리스도 왕직 재속 선교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