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모상’인 인간은 그 존재 본성상 고독(혼자 있음), 일치(함께, 하나 되고자 하는), 순수(깨끗함)라는 세 가지 특징을 지니고 있다. 이는 신앙이 있는 사람이든 없는 사람이든 그 사람 몸에 쓰여 있고 또 깊이 체험한다. 그래서 단어 앞에 ‘원’자를 더해 원고독, 원일치, 원순수라 한다. 두 권으로 출판된 우리나라 번역본 제I권 5과 ‘원고독’의 의미부터 살펴 보자.
창세기는 2장이 1장보다 먼저 쓰였다. 야훼계 문헌인 2장에선 하느님과 인간의 대화를 볼 수 있고, 인간의 본성적 특징도 잘 드러나 있다. “그때에 주 하느님께서 흙의 먼지로 사람을 빚으시고, 그 코에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체가 되었다. … 주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이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으니, 그에게 알맞은 협력자를 만들어 주겠다.’”(창세 2,7.18)
흙과 생명의 숨으로 창조된 이 ‘사람’은 남성성-여성성, 성(性)이 주어진 상태가 아니다. 혼자 있는 것을 좋지 않게 보셨던 하느님이 그를 잠들게 했고, 잠에서 깨어난 사람은 자신과 다른 그 사람을 여자로, 자신을 ‘남자’로 정의한다. 여기에서 인간의 첫 번째 특징인 고독의 이중성을 읽어낼 수 있다. 우선 사람의 본성 그 자체에 있는 고독으로 인간만의 독창성, 즉 하느님의 모상으로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오는 고독이고, 그 다음은 남자-여자, 즉 사람과의 관계에서 오는 고독이다.
인간은 고독을 통해 자신이 누구인지 알게 되고, 혼자이면서도 혼자 살 수 없는 관계성의 존재라는 것이다. 즉 닫힌 존재가 아니라 너로 나아가는 개방성의 존재요,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구에게 자신을 열어야 하는 본성이 몸에 쓰여져 있음을 말한다. 이는 누군가를 향해 자신을 열 때 행복해질 수 있다는 인간의 조건이기도 하다. 고독의 이중성이란 한편으론 자기 안에 무한에 대한 갈망을, 영원에 대한 동경을, 아름다움에 대한 추구를, 사랑에 대한 갈망을, 절대자를 향하도록 하는 빛과 진리에 대한 욕구가 있다는 것이요, 다른 한편으론 세상 안에서 너를 만나 자신들만의 울타리를 만들고 밥을 먹고 자신들이 지닌 추억으로 역사를 빚게 한다는 것이다.
고독을 다르게 표현하면, 하나 되고 싶은 그리움이요 보고 싶고 만지고 싶은 목마름이다. 자신을 만들어 떠나보낸 그 하느님을 만나 당신처럼 거룩할 수 있도록 인간 자신이 얼마나 거룩하고 숭고한지를 알게 하고, 방향을 잡아 항로를 잃어버리지 않게 해주는 장치와 같다. 결국 고독은 인간이 지닌 특별한 존엄성을, 자신을 만든 하느님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인간의 품격을 드러낸다.
사람과의 관계, 특히 남자와 여자에게서 오는 고독은 이 땅에서 더 충만한 삶을 살게 한다. 단순히 누군가 옆에 있기를, 이야기 나누기를, 이해받고 사랑받기를 바라는 것보다 더 깊은 곳에서 온다. 어떤 필요나 부족함이 아니라 너에게 가고 싶은 나도 선물로서 너에게 다가가고 싶은, 그래서 나를 건강하게 살도록 한다.
이러한 고독은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줄기차게 따라온다.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따라왔던 그 고독 덕분에 그분의 얼굴을 뵙게 될 것이고, 사람과의 관계 특히 부부간의 관계에서 오는 고독은 오래 살아 서로가 서로를 다 안다고 할 때에도 긴장을 낳는다. 이는 끊임없이 자신의 완성을 향한 초대이다.
글 _ 김혜숙 막시마(그리스도 왕직 재속 선교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