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이준형의 클래식순례] 젤렌카의 <서원 미사> ZWV 18

이승환
입력일 2025-02-18 17:39:46 수정일 2025-02-18 17:39:46 발행일 2025-02-23 제 3430호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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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헤미아, 즉 체코는 서양음악사의 또 다른 ‘음악의 나라’입니다. 특히 30년 전쟁 이후 예수회가 주도한 훌륭한 음악 교육이 중요합니다. 지금은 체코 국립 도서관으로 쓰이는 프라하의 클레멘티눔 (Clementinum)이 좋은 예로, 투마, 젤렌카, 글루크, 슈타미츠, 벤다 등 수많은 음악가를 배출했습니다. 이런 보헤미아 출신 음악가들은 수 세기에 걸쳐 유럽 각지에서 활동하면서 명성을 떨쳤습니다. 

바로크 시대의 보헤미아 작곡가 중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얀 디스마스 젤렌카(Jan Dismas Zelenka)입니다. 그는 클레멘티눔에서 공부하고 프라하에서 잠시 활동한 다음, 1710년에는 드레스덴의 작센 궁정악단에 들어가서 세상을 떠날 때까지 봉직했습니다. 젤렌카가 작센의 궁정 음악가가 된 배경에는 당시의 정치적 상황이 있습니다. 

작센은 루터교를 믿었지만 선제후(選帝侯, 신성 로마 제국에서 1356년의 금인칙서에 의해 독일 황제의 선거권을 가졌던 제후들)가 폴란드 왕위를 겸임하면서 가톨릭 신앙을 받아들였고, 궁정에 가톨릭 성당이 설립되면서 이탈리아와 프랑스, 그리고 가까운 보헤미아에서 많은 음악가가 왔던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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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젤렌카가 봉직했던 드레스덴 궁정 성당. 출처 위키피디아

젤렌카의 교회 음악은 이런저런 이유로 오랫동안 알려지지 않았지만 20세기 중반 이후 차차 알려지기 시작했고, 이제 큰 찬사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그중 가장 중요한 장르는 스무 곡이 넘는 미사곡으로, 대담한 구조와 창의적인 화성, 엄격한 대위법, 그리고 깊은 신앙심이 감동을 줍니다. 오늘은 그중 만년의 걸작 중 하나인 <미사 보티바(Missa votiva)>를 소개합니다.

1739년부터 젤렌카는 건강이 매우 나빠졌습니다. 자필 악보 첫머리를 보면 라틴어 시편 115편에 있는 ‘Vota mea Domino reddam(주님께 나의 서원을 채워드리리라)’라는 구절을 써넣었고, 마지막에는 ‘젤렌카가 주님의 더욱 큰 영광에 바치며 서원에 따른 미사곡을 작곡했다. 이 서원 이후 주님의 도움을 얻어 건강을 회복했다’라고 썼습니다. 작품 제목은 여기에서 따왔으며, 우리말로는 ‘서원(誓願) 미사’라고 번역할 수 있겠습니다.

<미사 보티바>는 라틴어 미사 통상문을 여러 악장으로 나누었고, 내용에 따라 합창 푸가 같은 전통적인 형식부터 갈랑트 풍의 아리아까지 다양한 형식과 악기 편성을 적절하게 활용했습니다. 성탄과 수난, 부활 등 신앙의 핵심을 이루는 가사에서는 섬세한 수사적 표현으로 그 뜻을 강조했으며, 개별 악장의 조성과 주제를 통해서 다양한 음악과 일관된 구성을 모두 이루었습니다.

여러 곳에서 깊은 신앙심을 엿볼 수 있는데, ‘또한 성령으로 인하여’가 좋은 예입니다. 그는 성탄을 묘사하는 이 부분에서 목가풍의 밝은 음악 대신 거의 라멘트에 가까운 어두운 음악을 붙였는데, 성탄과 수난의 밀접한 관계를 신학적으로 표현한 듯합니다. 그런가 하면 ‘주님 영광 크시오니 감사하나이다’에서는 합창이 ‘당신께 감사하나이다’(Gratias agimus tibi)를 되풀이하는데, 건강을 회복한 작곡가의 심정을 마음 깊이 느끼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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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_ 이준형 프란치스코(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