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가을 일본 노인 주거 답사여행을 다녀왔다. 환갑과 진갑을 넘기고 나니 노인의 집 문제는 곧 닥칠 나의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 더 유심히 둘러보았다. 노후에 나는 어디에서 누구와 무엇을 하며 살다가 죽을 것인가, 이런 생각을 내내 했던 조금 특별한 여행이었다.
처음 방문한 곳은 치바현 ‘52칸의 툇마루’였다. 교외 지역에 위치한 노인 데이서비스 시설로 어르신과 어린이, 엄마와 자녀들, 동네 주민까지 다양한 사람이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정겨운 곳이었다.
도쿄도 시나가와구의 ‘하나고토바 플러스’는 소니그룹이 운영하는 노인홈으로 지난해 6월 오픈했다. 주택가 한가운데 새로 지은 시설이어서 깨끗하고, 강아지 로봇 말동무까지 모든 서비스가 완벽하게 제공되고 있지만 실내 공간 위주의 이런 형태가 최선일까 하는 생각이 내내 들었다.
요코하마시의 ‘와카다케 아오바’도 방문했다. 꽤 큰 부지 안에 노인복지시설과 재활시설, 그리고 서비스형 노인주택들이 함께 어우러진 마을이었다. 저층 단독주택에서 노인들은 다양한 서비스를 받으며 생활한다. 골목길과 2층의 브리지가 전체 주택들을 연결해 주어 좋아 보였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곳은 도쿄도 고토구의 ‘후카가와 엔미치’였다. 평범한 주택가에 자리한 2층 건물로 사연도 많다. 1970년대 유치원으로 지어져 한때는 장례식장으로 사용되었다가 오래 비어있던 건물을 리모델링해 작년 5월 문을 열었다. 1층은 노인 데이서비스 시설로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운영되고, 1층 중앙통로 벽면에는 지역주민 65명이 책장 한 칸에 자신의 책을 기증하여 운영하는 ‘엔미치문고’가 있다. 2층은 초등학생 방과 후 교실로 오후 2시부터 8시30분까지 운영되며, 영유아 놀이공간도 함께 있다.
오후 2시가 되면 학교에 다녀온 어린이들이 중앙통로에 줄줄이 들어오며 어르신들께 인사드리고 계단을 통해 2층으로 올라간다. 돌봄을 받던 노인이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고, 영유아 기저귀 채우는 것도 돕는다. 노인과 어린이들이 집으로 돌아간 저녁시간에는 문고 주인들이 맥주를 마시며 자신들의 프로그램을 즐긴다. 크지 않은 공간을 여러 사람이 다목적으로 종일 알차게 쓰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센터센터’라는 특이한 이름을 가진 가나가와현의 ‘가스카다이센터센터’까지 모두 다섯 곳을 답사했다. 오랫동안 지역 센터 역할을 해 오다 2016년 문을 닫은 슈퍼마켓을 2022년에 다시 살려 마을의 센터가 되어달라는 희망을 담아 이런 이름을 지었단다. 노인 데이서비스, 보육시설, 공유주방, 세탁연구소, 장애인 그룹홈까지 다채로운 기능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건축물 설계도 뛰어나 2023년 ‘52칸의 툇마루’와 함께 일본 굿디자인상을 받았다.
고령화시대 노인들은 어디에서 살아야 행복할까? 위에 소개한 다섯 곳 가운데 어디에서 살다 죽으면 좋을까? 일본의 노인 주거 답사를 하면서 6년 전에 다녀온 네덜란드의 ‘케어팜’이 생각났다. 소, 말, 돼지, 닭과 다채로운 식물이 있는 농장에 치매 어르신과 성인 발달장애인이 와서 주말을 지내는 케어팜은 아주 멋진 해법처럼 보였다. 노인과 장애인이 돌봄을 받기만 하는 게 아니라, 동물과 식물과 다른 누군가를 돌보며 존엄한 삶을 살게 하는 케어팜은 가장 좋은 형태의 노인주거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났다.
고령화시대다. 죽음을 앞둔 노인에게 가장 좋은 집은 어디일까? 어떻게 살다가 죽으면 그래도 괜찮을까? 누구와 무슨 일을 하다가 죽어야 할까? 고민해 보자. 어디에서 죽을 것인가?
글 _ 정석 예로니모(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