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 년간 방치됐던 지붕, 로마 판테온에서 얻은 영감으로 완성
브루넬레스키가 피렌체 대성당(꽃의 성모 마리아 대성당)의 산 조반니 세례당 청동문 공모에서 결국 낙선하여 로마로 향한 것이 1403년경의 일입니다. 그때 피렌체 대성당의 상황은 매우 안 좋았습니다. 아르놀포 디 캄비오가 대성당을 설계하고 공사를 시작한 1296년 당시는 피렌체가 은행업과 양모 산업의 발달로 어느 나라에 못지않게 경제적 성장을 이루고 있을 때였습니다. 따라서 피렌체는 자신의 위상을 과시하기 위해서 이웃 도시 국가들보다 더 높고 더 아름다운 성당을 갖고자 했습니다. 실제로 피렌체는 유능한 건축가의 기술력과 그것을 현실화시킬 자금력을 모두 갖추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공사가 오래 진행되는 가운데, 피렌체의 은행들이 도산하고 흑사병의 창궐로 1340년경 피렌체 대성당의 공사는 멈춰 섰습니다. 완성된 건물은 아름답지만, 공사가 중단되어 방치된 건물만큼 흉물스러운 것은 없습니다. 쌓다가 만 벽돌 사이에 잡초가 자라고, 지붕이 없어 눈비가 들이치니 사방에 이끼가 끼고, 쓰레기와 음식 찌꺼기에 들쥐가 우글거리는 대성당의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브루넬레스키가 피렌체를 떠나 로마로 향했을 때의 대성당이 이랬습니다.
피렌체와 로마를 오가며 고대 로마의 건축을 배우고 익힌 브루넬레스키는 1417년 불혹의 나이에 피렌체로 완전히 귀향했습니다. 로마에서의 고전 연구는 그의 예술적 능력을 향상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의 관심이 조각을 넘어서 건축 분야에 이르게 하였습니다. 수학과 기하학에 뛰어났던 브루넬레스키는 고향의 삶에 적응하면서, 기중기 등의 건설 기계들을 발명하고 단일 소실점을 갖는 원근법을 창안하였습니다.
그렇게 로마 수학의 결과물들을 조금씩 내고 있을 즈음인 1418년 어느 날 시뇨리아 광장에 피렌체 대성당의 돔을 세울 건축가를 모집한다는 공고가 붙었습니다. 평소에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다소 냉소적인 브루넬레스키였지만, 그 공고는 그의 가슴을 두드리며 요동치게 하였습니다. 사실 대성당의 공사가 시작된 지 120년이 넘었고 공사가 중단된 지도 80년이 흘렀습니다. 다행히 돔의 건축 공고가 났을 때는 돔을 제외한 다른 부분의 공사가 마무리 단계에 있었는데, 그래도 지름이 42미터나 되는 돔을 세운다는 것은 웬만한 사람은 엄두도 못 낼 난제 중의 난제였습니다.
하지만 브루넬레스키는 근거 있는 자신감으로 피렌체 설계 위원회를 찾아갔습니다. 그러고는 대뜸 주머니에서 달걀을 하나 꺼내어 그들에게 세워보라고 말하였습니다. 콜럼버스보다 80년 먼저. 도저히 속셈을 알 수 없는 사람이기에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는 위원들에게, 브루넬레스키는 달걀의 밑을 조심스레 깬 후 탁자 위에 세웠습니다. 달걀 세우기를 통해서 브루넬레스키는 자신의 설계를 설명하기에 앞서 그 설계가 어떤 가치를 지니는지 알리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만큼 그의 돔 건축 설계는 독창적인 것이었고, 그래서 그 누구에게도 도용됨 없이 온전히 본인의 것으로 인정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어서 브루넬레스키는 설계 위원들에게 설계 방안의 골자를 설명하였습니다. 먼저 대성당의 돔이 반구형이 아니라 방금 보여준 달걀처럼 위가 뾰족한 형태가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고딕 구조에서 반원형 아치보다 뾰족한 아치가 더 넓은 공간을 만들 수 있는 것처럼, 반구형 돔보다 뾰족한 돔이 더 큰 지름의 돔을 올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을 설득하기 위해서 브루넬레스키는 달걀형의 돔에 여덟 개의 석재 리브가 마치 우산살처럼 펼쳐 들어가서 돔을 받칠 구상도 밝혔습니다. 설명을 들은 설계 위원회는 약간의 의구심을 떨치지 못한 채 브루넬레스키에게 돔 공사를 맡겼습니다.
돔 공사의 일반적인 방법은, 고딕 성당에서 리브 그로인 볼트(rib groin vault, 석조로 된 둥근 천장)를 시공할 때처럼, 먼저 반구의 형틀을 아래부터 설치하고 그 위에 벽돌을 얹어 나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피렌체 대성당의 돔은 지름이 42미터이고 거기에 들어가는 벽돌은 약 2만 5천 톤에 달합니다. 따라서 브루넬레스키는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해야 했습니다. 첫째는 지름이 42미터인 돔의 벽돌을 쌓을 목재 형틀을 만드는 것이고, 둘째는 거대한 돔의 하중을 최대한 분산시키는 것이었습니다.
브루넬레스키가 내놓은 방법은 ‘이중 돔 구조’입니다. 이것은 로마의 판테온과 피렌체 대성당 산 조반니 세례당의 지붕 구조에서 영감을 얻은 것으로, 돔을 두 겹으로 만들고 내부와 외부의 돔 사이의 공간에 두 돔을 연결하는 수평 부재를 여러 층으로 쌓아서 이중 돔 전체를 일체화하는 구조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벽돌을 쌓는 방법인데, 판테온의 예처럼 브루넬레스키는 돔을 받치는 벽체 두께가 4.3미터인 점을 이용해서, 내부 돔은 2.3미터 외부 돔은 1미터의 두께로 벽돌을 쌓기 시작하여 위로 갈수록 두께가 줄어들게 하였습니다. 또한 고대 로마의 축조 기술을 응용하여 벽돌을 수평 쌓기와 수직 쌓기로 혼합하여 진행하였습니다. 이렇게 쌓은 벽돌의 모양이 마치 물고기의 뼈와 비슷하다고 하여 헤링본(Herringbone) 스타일이라고도 부르는데, 이 방식은 하중이 수평과 수직으로 분산되어 벽체를 더욱 견고하게 만듭니다.
또한 돔에 여러 개의 리브(rib, 하중을 받아 내는 갈비뼈 모양의 구조적 요소)를 구성했는데, 먼저 팔각형 모서리에 8개의 대형 리브를 만들고, 그 사이에 두 개씩 16개의 소형 리브를 넣었습니다. 그리고 이 리브에 전달된 힘을 수평으로 분산시키는 수평 부재를 설치하여 돔의 골격을 완성하였습니다. 이 구조는 대형 8개와 소형 16개의 리브가 팔각지붕을 지지하는 산 조반니 세례당의 영향을 받은 것입니다. 이 밖에도 주로 내력벽의 역할을 하는 내부 돔에 강철과 사암으로 고리를 만들어 일정한 간격으로 벽돌을 고정함으로써 벽돌벽이 바깥으로 밀리지 않게 하였고, 내부 돔에 긴결되어 있는 외부 돔은 붉은 벽돌로 치장되어 아름다움을 한껏 드러냈습니다.
브루넬레스키는 16년간 현장에서 공사를 직접 감독하였고, 드디어 1436년 피렌체 대성당의 봉헌식에도 참석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돔 꼭대기의 6미터 원형 공간에 랜턴이 올려지는 화룡점정의 순간은 함께하지 못하고, 1446년 그가 온 힘을 기울여 올린 ‘브루넬레스키의 돔’을 지붕 삼아 ‘꽃의 성모 마리아 대성당’ 지하 묘지에 잠들었습니다.
글 _ 강한수 가롤로 신부(의정부교구 건축신학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