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 성당 스케치

[르네상스 성당 스케치] 산 로렌초 성당

이형준
입력일 2025-02-19 06:38:24 수정일 2025-02-19 06:38:24 발행일 2025-02-23 제 3430호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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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네스크 양식 기반 ‘고전적 중세’ 연속성 선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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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로렌초 성당의 파사드. 출처 -위키미디어

브루넬레스키는 그가 태어나고 자란 시대가 요구하는 많은 것을 습득하고 그것을 실현하였습니다. 피렌체 사람들은 새로운 시대를 열면서 그 시대에 맞는 건축물을 희망하였고 브루넬레스키는 그들 앞에 그들의 상상을 뛰어넘는 것을 내놓았습니다. 

그래서 건축사가들은 인간의 삶에 필수적인 ‘집’이라는 구성요소 안에 시민정신과 인문주의를 조화롭게 담아낸 첫 번째 건축가가 브루넬레스키라고 말합니다. 실제로 브루넬레스키의 건축은 그 시대에 피렌체에서 생겨난 건축적 특징들을 종합하고 통일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었는데, 그 중심에는 항상 고전이 있었습니다. 고대 로마의 고전주의에서 예술성뿐만 아니라 실용성을 찾아내어 그의 작품에 반영하였습니다.

그는 후에 르네상스 시대라고 명명된, 그의 시대를 중세와 단절된 시대로 보지 않고, 중세부터 발전해 오던 문명이 조금 가파른 기울기를 보이며 발전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에게는 토스카나의 로마네스크 역시 르네상스에 영향을 준 건축 양식이었습니다. 

그는 로마네스크 양식 안에 로마의 고전이 담겨 있는 것을 보았고, 그래서 중세는 로마 고전의 연속이고 르네상스는 그런 중세의 연속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따라서 그에게 르네상스는 ‘고전적 중세’의 발전이었습니다. 고대 로마의 고전과 중세 안에 담긴 고전이 공통으로 작용하여 고전과 중세가 르네상스 안에서 종합된 것입니다.

그 대표적인 성당으로 산 로렌초 성당(Basilica di San Lorenzo)을 들 수 있습니다. 꽃의 성모 마리아 대성당의 전신인 산타 레파라타 성당이 피렌체의 주교좌성당이 되기 전까지 300년 동안 피렌체의 주교좌성당이었던 이 성당은 15세기에 들어 확장 공사가 추진되었고, 1421년 조반니 데 메디치의 지원으로 기공식을 가졌습니다. 

조반니는 오늘날 구 성구보관실(Sagrestia Vecchia)이라고 불리는 경당을 브루넬레스키에게 의뢰하여 공사 중이었기에 산 로렌초 성당의 설계와 공사도 자연스럽게 브루넬레스키에게 맡겨졌습니다. 조반니 사후 공사는 코시모 데 메디치에 의해 진행되었고, 이후로 메디치가의 사람들은 산 로렌초 성당과 깊은 인연을 맺고 그곳에 묻혔습니다.

산 로렌초 성당은 중세 성당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산타 트리니타 성당이 그중 하나인데, 이 성당은 바실리카형 라틴 크로스 평면에 볼트형 천장의 아일, 그리고 아일 바깥에 많은 경당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산 로렌초 성당 역시 바실리카형의 라틴 크로스 평면에 정사각형의 크로싱과 돔이 있고 아일 주변에는 많은 기도실이 배치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현상이 바로 ‘고전적 중세’의 형태로 브루넬레스키는 산 로렌초 성당에서 중세의 구성을 발전시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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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렌체 고아원 파사드의 아케이드. 출처 위키미디어

브루넬레스키는 일정한 길이 단위를 기본으로 정사각형 모듈을 만들어, 평면과 입면을 비롯한 성당 전체에 적용하였습니다. 아일을 하나의 정사각형 모듈로 구성하였다면, 이것을 기준으로 네이브의 한 베이는 정사각형 모듈 두 개로 구성됩니다. 이는 성당 전체에 통일성을 주기 위함인데, 이런 통일성은 실내 조도에도 적용되어 바닥에 가까울수록 창을 넓게 하고 위로 올라갈수록 창을 좁게 하여 조도를 균일하게 통일한 것입니다.

브루넬레스키는 산 로렌초 성당의 네이브와 아일에 그가 조금 앞서 지은 피렌체 고아원(Ospedale degli Innocenti)과 동일한 독립 원형 기둥이 받치는 아케이드(기둥 상부에 아치가 연속적으로 있는 형태)를 넣었습니다. 하지만 아일과 경당은 콜로네이드(기둥이 일렬로 서 있고 상부에 수평구조물이 있는 형태)로 구획되고, 주두 대신에 엔태블러처 조각이 들어가 실제 높이가 높아졌습니다.

경당의 콜로네이드 벽기둥과 크로싱을 받치는 벽기둥이 같은 크기로 통일성을 이루었는데, 실제로 크로싱의 하중이 더 크기 때문에 이러한 통일성은 구조적 부담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크로싱의 하중을 줄이고자 드럼 없이 돔을 팬던티브(원형 돔을 사각형 구조물 위에 올릴 때 사용하는 삼각형의 곡면 구조물)에 바로 얹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돔의 높이가 낮아져서 외관상으로 묻혀있는 것처럼 보이고 빛도 잘 들어오지 않아서 돔의 조도가 어두워졌습니다. 지금은 돔 위에 지붕이 있어서 외부에서 돔은 보이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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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산 로렌초 성당 네이브 제단 방향. 출처  위키미디어
(오른쪽) 산 로렌초 성당의 평면도. 출처 pinterest

또한 아일과 경당이 네이브 부분에서는 이어지다가 트란셉트를 만나면서 끊기는 평면 구성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평면이 트란셉트보다 네이브 중심적으로 구성되었다는 것을 말해주기 때문에 이점에서도 평면의 균형과 통일성이 감소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트란셉트 부분에서 아일과 경당이 모두 없어진 것이 아니라, 아일만 사라지고 여러 경당이 트란셉트를 둘러싸는 형태를 취하고 있습니다. 이때 같은 크기의 경당을 배치하면서 구석 부분에 비례에 맞지 않는 공간이 남게 되었습니다. 

브루넬레스키는 이 공간에 구 성구보관실(Sagrestia, 제의·성합·성작 등을 보관하는 장소로 한국에서는 보통 ‘제의실’이라고 부른다)과 신 성구보관실을 배치했습니다. 구 성구보관실은 본 성당보다 먼저 완공되어 사용되었고, 신 성구보관실은 설계에는 있었으나 실제로 100년 후에 미켈란젤로가 완성하였습니다. 산 로렌초 성당은 브루넬레스키에 의해 설계되고 시공되었지만, 공사가 완전히 마무리된 것은 브루넬레스키 사후 메디치가의 건축가인 미켈로초에 의해서였습니다. 하지만 파사드는 여전히 미완성으로 보입니다.

브루넬레스키는 산 로렌초 성당보다 1~2년 앞서서 그가 속한 길드의 결정으로 세계 최초의 고아 보육 시설인 피렌체 고아원을 설계하였습니다. 이는 그가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이 많았고, 그것은 그의 시민정신과 인문주의에서 나온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건물은 회랑을 갖춘 클로이스터(안뜰) 형태로 평면이 구성되었고, 입면은 건물 파사드의 로지아와 클로이스터의 로지아에서 모두 아케이드를 원형 기둥이 받치고 있는 형태로, 이 역시 로마네스크 양식을 기반으로 한 ‘고전적 중세’의 연속성을 보여줍니다.

브루넬레스키는 건축물의 정형화와 통일성을 설계에 적용하여 시공의 효율성과 실용성을 증대시켰습니다. 그럼으로써 자재가 절약되고 공사인력의 수급이 쉬워졌으며 건설 기계가 발명되어, 대성당 돔에 대한 오랜 기도가 이루어질 날이 머지않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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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조 바사리가 팔라초 베키오에 그린 ‘브루넬레스키가 코시모 데 메디치에게 산 로렌초 성당의 모형을 보여주는 모습’. 출처 위키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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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_ 강한수 가롤로 신부(의정부교구 건축신학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