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 성당 스케치

[르네상스 성당 스케치] 산토 스피리토 성당

이형준
입력일 2025-03-05 09:07:15 수정일 2025-03-05 09:07:15 발행일 2025-03-09 제 3432호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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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의 통일성 강화해 ‘대칭의 미학’ 이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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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토 스피리토 성당 전경. 출처 위키미디어

브루넬레스키의 마지막 작품인 산토 스피리토 성당(Basilica di Santo Spirito, 성령 성당)은 그의 건축적 이상을 가장 잘 구현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최초의 성당은 성 아우구스띠노 수도회가 피렌체에 정착하면서 1269년에 성령께 봉헌되었습니다. 피렌체에 있는 탁발 수도회의 성당들인 프란치스코회(작은 형제회)의 산타 크로체 성당, 도미니코 수도회의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과 함께 아우구스띠노 수도회의 산토 스피리토 성당은 당대의 예술과 신학과 문학의 중심지 역할을 했습니다. 

따라서 수도원 안에는 대규모의 도서관이 있고, 페트라르카와 보카치오 등 문인들의 방문이 잦았습니다. 이후 14세기 말에 새로운 성당 건립이 추진되면서 1434년에 필리포 브루넬레스키가 설계를 맡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10년 후인 1444년에 성당 건축의 첫 삽을 뜨게 되었는데, 브루넬레스키는 완공을 보지 못하고 2년 후인 1446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하지만 공사는 그의 제자들에 의해서 스승의 설계대로 진행되어 1482년에 새 성당이 완공되었습니다.

산토 스피리토 성당의 설계는 산 로렌초 성당에서 시작되었다고 하는 것이 옳은 평가일 것입니다. 산 로렌초 성당은 정사각형 모듈을 기본으로 하여 평면과 입면이 모두 정형적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아일이 하나의 정사각형 베이로 구성되었다면 네이브는 정사각형 두 개를 나란히 놓은 크기의 베이로 구성되어, 성당 전체에 통일성을 준 것입니다. 

하지만 아케이드와 클리어스토리(천측창이 있는 2층)의 높이가 3대2로 완전한 정형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또한 하중을 고려하지 않고 기둥의 크기를 일률적으로 통일하여서, 하중을 많이 받는 기둥에 구조적으로 부담을 주기도 하였습니다. 네이브를 따라 형성된 아일과 경당도 트란셉트를 만나면서 끊기게 되어 평면이 완전한 통일을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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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로렌초 성당과 산토 스피리토 성당 평면도

산토 스피리토 성당은 산 로렌초 성당에 나타난 이러한 통일성의 문제점들을 대부분 해결하였습니다. 특히 아일과 경당이 네이브만이 아니라 트란셉트와 제대 뒤편의 앱스에 이르기까지 통일성을 유지하며 이어졌습니다. 네이브와 트란셉트가 만나는 코너 부분의 아일은 양쪽으로 모두 개방되어 있고, 네이브 쪽의 마지막 경당은 네이브 방향으로, 트란셉트가 시작되는 곳의 경당은 트란셉트 방향으로 열려있습니다. 그리고 두 경당이 만나는 곳의 벽은 45도로 설치되어 공유하고 있으며 벽기둥도 두 경당에 모두 작용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이런 평면 구성은 네이브와 트란셉트가 균일한 형태를 취하면서 통일성을 강화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아케이드와 클리어스토리의 비율도 산 로렌초 성당에서는 3대2였는데 산토 스피리토 성당에 와서는 1대1로 해결되었습니다. 네이브의 경당 수는 두 성당이 같지만, 산토 스피리토 성당은 트란셉트와 앱스를 네이브와 같은 형태로 구성함으로써 경당 수가 많아졌고, 경당을 원하는 후원자들의 요구를 만족시켰습니다.

조도의 통일성은 산 로렌초 성당에서도 시도되었지만, 산토 스피리토 성당은 크로싱을 받치는 벽기둥을 두껍게 하고 돔에 창을 내어 빛을 더 들어오게 함으로써, 천장(하늘)과 바닥(땅) 사이의 조도 차이를 줄였습니다. 이는 성(聖, 하늘)과 속(俗, 땅)의 공간이 균형을 이루며 통일성을 갖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공간의 통일성은 선형 공간 안에 중앙집중형 공간을 배치함으로써 더 잘 드러납니다. 네이브의 8베이 중에서 6베이를 제외하고 2베이만 잘라서 보면 산토 스피리토 성당은 완전한 대칭의 중앙집중형 평면을 이루게 됩니다. 따라서 완전한 대칭의 라틴 크로스(장방형 십자가) 구성과 완전한 대칭의 중앙집중형 혹은 그릭 크로스(정방형 십자가) 구성이 한 평면에 결합한 형태입니다. 

이렇게 선형 공간에 중앙집중형 공간이 더해지는 배치는 브루넬레스키의 초기 작품에서 보이기 시작하여 후기에 와서 완전한 대칭으로 정리되었고, 이로써 중앙집중형 공간이 선형 공간을 능가하는 경향이 나타났습니다. 이런 변화는 르네상스 건축이 선형에서 중앙집중형으로 변화되어 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브루넬레스키의 이러한 설계 방향이 알베르티에게 이어지고 전성기 르네상스로 접어들면서 중앙집중형 평면이 대세를 이루게 됩니다.

브루넬레스키는 이전의 건축가들과는 확연히 구별되는 새로운 건축가였습니다. 그는 먼저 수학과 기하학에 기초한 공학 기술자이면서, 설계 및 시공을 직접 지휘하는 현장형 건축가였습니다. 그리고 고전 정신과 시민 정신을 교육받은 인문주의자이면서, 효율적인 시공을 위해서 다양한 기계들을 발명한 실용주의자였습니다. 이렇게 현장을 중시했던 실용주의 건축가인 브루넬레스키는 정밀한 시공을 추구하며 불필요한 자원의 낭비를 줄이려고 노력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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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스케치한 브루넬레스키의 3단 윈치(권양기). 1480년경, 밀라노 암브로시오 도서관 소장. 출처 위키미디어

따라서 그는 새로운 시공 기술을 끊임없이 연구하여 현장의 장인들에게 가르쳤고 그것을 통해서 작업 능률을 올렸습니다. 또한 그는 유럽에서 처음으로 도면이란 것을 만들었습니다. 전수된 경험에 의지하여 건축을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도면을 그리고 정확한 수치를 써넣음으로써 건축의 전 과정에서 작업의 표준화와 시공의 정밀화를 이루었습니다. 현대 건축에서는 당연한 방식이지만, 당시에는 모두에게 생소하였던 파격적이고 선도적인 시공 과정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런 브루넬레스키는 그가 죽고 6년이 지나 태어난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i, 1452-1519)와 자주 비교되곤 합니다. 자신의 발명품에 대해서 암호와 기호로 비밀 수첩을 만들어 보관했던 점도 두 거장의 비슷한 점입니다. 모두 본인 작품에 대한 독창성을 중요시한 것인데, 그만큼 그들이 발명한 작품들에는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유일무이한 것이 담겨 있습니다. 저작권이 법적으로 보호되지 못했던 시대에 발명가들이 겪는 고초일 것입니다. 

다빈치의 발명품이나 스케치 중에는 브루넬레스키의 톱니바퀴와 도르래, 크랭크축 등을 발전시킨 것으로 보이는 것이 있습니다. 만일 브루넬레스키가 그의 비밀 수첩을 없애지 않고 후대에 남겼더라면 그의 첨단 기술은 다빈치를 거쳐 최첨단 기술로 발전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물론 브루넬레스키는 설계 및 건축 분야에서 비밀 수첩의 내용들을 이미 남김없이 쏟아부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를 최고의 건축가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브루넬레스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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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_ 강한수 가롤로 신부(의정부교구 건축신학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