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독서 창세 15,5-12.17-18 / 제2독서 필리 3,17-4,1 / 복음 루카 9,28ㄴ-36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사람아,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여라”는 말씀과 더불어 머리에 재를 얹으며 시작한 사순 시기가 벌써 열흘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께 온전한 믿음을 두는 아브람(아브라함)을 의로운 이로 인정하시며 말씀하십니다. ‘하늘을 쳐다보아라. 셀 수 없는 하늘의 별들만큼 너의 후손이 저렇게 많아질 것이다.’(창세 15,5 참조), “나는 주님이다. 이 땅을 너에게 주어 차지하게 하려고, 너를 칼데아의 우르에서 이끌어 낸 이다”(창세 15,7)라고 아브람에게 ‘후손과 땅’을 약속하십니다.
“주 하느님, 제가 그것을 차지하리라는 것을 무엇으로 알 수 있겠습니까?”(창세 15,8)라고 여쭈어보는 아브람에게 하느님께서는 삼 년 된 암송아지와 암염소와 숫양 각 한 마리를 반으로 잘라 마주 보게 하고,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각 한 마리는 자르지 않고 바치도록 하십니다. 그리고 그 사이로 연기 뿜는 화덕과 타오르는 횃불이 지나가게 하시는 신비로운 표징으로 아브람의 제물을 받아들이십니다.
아브람이 믿음으로 하느님께 ‘후손과 땅’의 축복을 약속받았듯이 우리도 주님께 대한 온전한 믿음으로 하느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당신의 축복,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 수난의 길을 마다하지 않으신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으로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기도하시러 산에 오르신 예수님, 기도 중에 얼굴 모습이 달라지고 의복이 하얗게 변한 예수님께서는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예루살렘에서 이루실 일, 곧 세상을 떠나실 일”(루카 9,31)에 대해 말씀을 나누십니다. 이 신비로운 광경에 할말을 잃은 제자들에게 하느님께서 구름 속에서 말씀하십니다. “이는 내가 선택한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루카 9,35)
사도 바오로는 필리피 신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확고한 믿음을 지닌 자신을 본받으라고 말씀하십니다. “다함께 나를 본받는 사람이 되십시오.”(필리 3,17) 그러면서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로 살아가는 사람들, 이 세상 것만 생각하는 사람들은 멸망에 이를 것이라고 경고하십니다. 한편, 믿는 우리에게는 ‘하늘의 시민’(필리 3,20)으로서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이 다시 오실 것을 고대하라고 권유하십니다.
우리는 매년 성탄을 맞으며 아기 예수님의 오심을 기뻐하며 동방의 세 박사가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선물하였듯이 각자 자신의 선물을 준비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신앙의 근원이 되는 예수님의 부활을 기다리며 ‘부활하신 주님께 드릴 선물’을 충실히 준비하였으면 합니다. 자선과 기도와 단식의 삶이 부활을 맞이하는 충실한 신앙생활이 될 것입니다.
그렇지만 단순히 자신의 주머니를 비우는 자선이 아니라, 세상의 기준에 따라 애착하거나 집착하는 것을 비우는 자선이어야겠습니다. 또한 기도하며 하느님을 기억하고, 하느님께 의탁함으로써 삶 안에서의 근심, 걱정, 분심을 내려놓아야겠습니다. 그리고 일상의 음식만을 절제하는 단식이 아니라, 하느님에게서 멀어지게 만드는 인간적 본능을 비우는 단식이어야겠습니다.
이러한 준비의 삶을 스스로 확인하며, 노력할 수 있는 구체적인 실천이 이루어졌으면 합니다. 부끄럽지만 저의 사순 시기 동안의 부활 선물 준비 체험을 나누고 싶습니다. 저는 사순 시기가 시작되면 커피 단식을 십여 년째 실천하고 있는데, 커피 단식의 절약분으로 이웃 나눔을 하고 있습니다. 하루에 2~3잔의 커피를 마시는 저로서는 처음 시작한 해에는 커피 단식이 너무나 힘들었지만 해가 거듭될수록 한결 어려움을 덜 느끼는 것이 좋은 지향과 실천에 대한 주님의 손길이 아닌가도 생각해 봅니다.
또한 몇 년 전부터는 음주 단식도 실천하고 있습니다. 커피 단식 외에도 무엇인가를 더 실천하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저에게 평소 술을 즐기는 지인이 놀랍게도 사순 시기만 되면 술을 끊는 모습이 동기 부여가 되었습니다. 건강도 챙기고 이웃 나눔도 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라는 느낌입니다.
이렇게 사순 시기를 맞아 무엇을 안 한다는 것도 좋지만, 부활 선물을 준비하며 무엇을 한다는 것이 좋겠다는 마음이 들어 최소한 하루에 세 번 감사의 표현을 하는 것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에게서 온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하느님에게로 돌아갈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각자 자신의 인생 여정, 특히 올 사순 시기를 더욱 아름답게 가꾸면 좋겠습니다.
글 _ 조성풍 아우구스티노 신부(서울대교구 주교좌명동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