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

[말씀묵상] 사순 제1주일

방준식
입력일 2025-03-05 09:06:01 수정일 2025-03-05 09:06:01 발행일 2025-03-09 제 3432호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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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 신명 26,4-10 / 제2독서 로마 10,8-13 / 복음 루카 4,1-13

예수님께서 성령에 이끌려 광야로 가시어 40일 동안 머무십니다. 거기서 긴 단식을 하신 후 가장 쇠약해졌을 때 예수님은 사탄의 유혹을 받으십니다. 본디 유혹은 약한 틈을 파고드는 법이죠.

먼저 사탄은 예수님께 돌을 빵으로 만듦으로써 하느님의 아들임을 증명하라고 합니다. 시장하셨다(루카 4,2)는 말은 배가 고파 죽을 지경에 이르는 것을 뜻하는 매우 강한 단어입니다. 그러니 사탄의 제안은 아사 위기에 있는 예수님께 쉽게 떨칠 수 없는 매우 솔깃한 유혹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돌을 빵으로 바꾸라는 유혹에는 단순히 예수님의 개인적인 굶주림을 해결하는 것보다 더 큰 의미가 있습니다. 이것은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하늘에서 내려온 만나를 먹은 일을 연상시킵니다.(탈출 16,31) 그리고 예수님 당시 사람들은 메시아가 오면 모세가 그들에게 만나를 내려준 것과 같은 기적을 베풀어 주리라 기대했습니다.(요한 6,30)

이렇게 볼 때, 이 유혹은 예수님이 메시아심을 증명하라고 촉구하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뜻이 아니라 자신의 의지로 메시아의 정체를 드러내라는 유혹입니다. 곧, 사탄의 유혹은 이렇습니다: “백성에게 빵을 주어라. 그러면 그들이 의심 없이 너를 메시아로 섬길 것이다.”

이에 예수님은 “사람이 빵만으로 살지 않는다”(신명 8,3)라는 말씀을 인용하여 사탄의 유혹을 물리치십니다. 그런데 신명기 8장 3절의 뒷부분은 이렇습니다: “그것은 사람이 빵만으로 살지 않고, 주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는 것을 너희가 알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 인용하신 신명기의 말씀 뒤에는 하느님의 말씀으로 산다는 말이 생략되어 있습니다. 이로써 예수님은 제 뜻대로 살지 않고, 오직 아버지의 말씀만을 의지하고 따르리라고 선언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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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는 모든 유혹을 끝내고 다음 기회를 노리며 그분에게서 물러갔다.”(루카 4,13) 사순 시기가 시작되었습니다. 교회는 사순 시기의 첫날 복음을 통해 사막에서 악마에게 유혹받는 주님의 모습을 전합니다. 그러나 오늘 복음은 단순히 주님의 유혹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각자의 삶을 비추는 이야기로 다가옵니다. 어느 날 갑자기 광야와도 같은 막막한 상황에 내던져진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그런 우리에게 주님은 어떻게 그 시간을 견디며 다시 일어설 수 있는지 그 답을 보여주십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너는 지금 어디를 바라보고 있는가? 이 상황에서 누구를 찾고 있는가? 나를 믿느냐?” 주님의 이 물음 앞에서 담대히 주님의 눈을 마주하며 큰 소리로 대답하고 싶습니다. “주님, 저는 주님을 믿습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라고. 이 고백으로 우리의 사순 시기를 시작했으면 합니다. 인스타그램 @baeyounggil

두 번째 유혹은 세상 권세에 대한 것인데, 이 또한 하느님 아버지를 배반하도록 꾀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예수님이 이 지상에서 행하길 바라시는 것, 즉 고난을 통한 메시아 사명의 수행과 정반대의 선택을 하도록 유혹할 뿐 아니라, 우상 숭배를 조건으로 걸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담의 원죄 이후 타락한 인류는 창조 때 하느님께서 주신 세상의 통치권을 상실했고, 세상 권세는 상당 부분 사탄의 영향력 아래 놓여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악한 권력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악한 자들이 얼마나 잘 삽니까? 심지어 사탄에게 영혼을 팔아야만 성공하는 것처럼 보이기조차 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의 궁극적인 지배권은 여전히 하느님께 있습니다. 그러니 사탄은 실상 제 것이 아닌 것을 주겠다고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간파하기 쉽지 않은 이 거짓을 단번에 알아차리고 신명기 6장 13절의 말씀을 인용하여 세상의 유일하고 진정한 주인이신 하느님 아버지만을 경배해야 한다고 선언하십니다.

세 번째 유혹은 예수님이 메시아심을 영광스러운 방식으로 드러내라는 것인데, 랍비 문헌에 메시아는 예루살렘 성전 위에 나타날 것이라는 언급이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유다 전승에 따르면 자처하는 거짓 메시아는 신성 모독죄를 물어 성전 벽에서 키드론 골짜기로 던져 죽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만일 예수님께서 성전 벽에서 뛰어내리시는데, 천사들이 그분의 발을 떠받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온 유다 백성은 성전 높은 곳에 나타났으며(메시아라는 증거), 그곳에서 떨어져도 무사한(가짜 메시아가 아니라는 증거) 예수님을 즉시 메시아로 떠받들 것입니다.

이 또한 예수님과 하느님 아버지 사이를 이간질하는 것인데, 예수님이 그분을 자기 뜻대로 움직일 수 있는지 시험하라고 유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주 너의 하느님을 시험하지 말라”는 성경 말씀으로 응답하십니다. 이 말씀은 광야 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이 마싸에서 마실 물이 없었을 때 하느님을 시험한 일(탈출17,1-7 참조)을 배경으로 하는 신명기 6장 16절을 인용한 것입니다. 이렇게 이스라엘의 역사는 하느님은 결코 시험의 대상이 될 수 없는 분임을 증언합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경우를 볼 때, 모든 유혹의 본질은 근본적으로 하느님과의 관계를 파괴하는 것입니다. 첫 인간에게 주어진 유혹 또한 그러했습니다.

세 번의 유혹에 실패한 사탄은 예수님을 떠나갑니다. 하지만 영원히 자취를 감춘 것이 아니라 다음 기회를 노리며 물러갑니다. 유혹자가 다음에 등장할 때는 예수님의 수난이 시작될 것입니다. 예수님 대신에 그분의 제자 가운데 하나를 유혹함으로써 말입니다.(요한 13,27)

사탄은 절대 지치지도 포기하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매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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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_ 함원식 이사야 신부(안동교구 갈전 마티아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