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독서 1사무 26,2.7-9.12-13.22-23 / 제2독서 1코린 15,45-49 / 복음 루카 6,27-38
“원수를 사랑하여라”, “누가 네 오른뺨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돌려 대어라.” 독자께서는 예수님의 이 말씀들을 처음 들었던 때를 기억하십니까? 어른이 되어 신앙을 갖게 되신 분들도 아마 그보다 훨씬 전에 이 말씀들을 들으셨고, 한 번 들으셨다면 그것을 잊어버리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그 내용이 너무나도 도전적이고 역설적이기 때문입니다. 신앙인들에게도 이 말씀은, 실천은커녕 그 뜻을 깊이 묵상하고 받아들이는 것조차 쉽지 않습니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은 마태오 복음과 루카 복음에 나오는데, 참된 행복의 선언과 연결되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두 복음이 행복 선언과 원수 사랑을 연결하는 방식은 서로 다릅니다.
마태오 복음 5장에서는 산 위에서 참된 행복을 선언하신 후에, 제자들을 세상의 소금과 빛에 비유하시며 착한 행실로 세상 사람들을 비추라고 하십니다.(마태 5장 참조) 이어서 당신은 율법을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오셨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다음에는 “…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라는 형식으로 여섯 가지 실천 사항을 말씀하시는데, 그 마지막 두 가지가 악인에게 맞서지 말고 순종하라는 것과 원수를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원수 사랑의 계명은 “그러므로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마태 5,48)는 말로 마무리됩니다. 즉, 참된 행복의 선언은 참된 사랑의 실천으로 이어지고 마치 산을 오르듯이 가장 완전한 사랑으로 정점을 이룹니다.
루카 복음 속 예수님은 산 아래에서 참된 행복과 불행을 선언하십니다.(루카 6,20-49 참조) 두 선언은, 사람들이 너희에게 악을 행하면 너희는 행복하니 기뻐해야 하며, 반대로 친절하게 대하면 너희는 불행하다는 말로 끝납니다. 그들의 조상들이 예언자와 거짓 예언자를 그렇게 대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복음사가는 여기에 ‘그러나’라는 접속사로 원수를 사랑하라는 계명을 바로 연결합니다. “그러나 내 말을 듣고 있는 너희에게 내가 말한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루카 6,27) 루카 복음은 행복 선언의 마지막 부분을 예수님의 수난과 연결하여, 예수님이 하셨던 대로 원수의 미움과 저주와 학대를 선의와 축복과 그들을 위한 기도로 대응하라고 말합니다. 루카 복음은 마태오 복음과 반대로, 마치 산에서 내려가듯이 원수를 사랑하라는 계명에서 시작하여 남을 심판하지 말라는 말씀, 좋은 열매를 맺으라는 말씀,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을 실행하라는 말씀으로 마무리를 짓습니다.(루카 6,37-49 참조)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아버지를 배신하고 아들을 박해한 인간에 대한 완전한 사랑이고, 인간을 사랑하시어 아들을 내어주신 아버지 하느님에 대한 가장 완전한 사랑입니다. 그런데 이를 위해서는 십자가 죽음에까지 온전한 순종이 필요했습니다.(필리 2,8 참조) 예수님께서는 무력이나 논리나 그 어떤 힘도 아닌 순종으로 세상을 이기고 죽음을 이기셨습니다. 하느님의 자비는 힘 있는 자의 양보가 아니라 가장 낮고 약한 이의 수난이고, 부조리한 폭력과 악행까지도 참고 받아들이며 끝까지 믿고 희망하는 사랑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이는 바로 이런 사랑으로 그분의 사명을 완성해야 합니다. 교회는 이런 사랑으로 세상을 가르치고 돕고 성화해야 합니다. 제자인 교회의 길이 예수님보다 편한 길일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우리가 사랑해야 할 배우자나 부모 형제도 제대로 사랑하지 못하는데 원수를 어떻게 사랑하느냐고 묻습니다. 하지만 사실 내가 만나는 모든 이가 나의 형제이자 원수입니다. 그들이 바로 때로는 나를 미워하고, 욕하고, 괴롭히며, 나에게 과한 것을 요구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도 역시 그들에게 그렇게 합니다. “내가 왜?” 하면서 손해 보지 않으려고 시비를 따지고 논리나 힘으로 이기려고 해서는 사랑할 수 없습니다. 그런 것을 묵묵히 받아들여 주는 것이 사랑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부모가 자녀에게, 자녀가 부모에게, 그리고 이웃에게 이런 사랑을 베풀 때, 용서와 치유와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쉽지 않은 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 사랑으로 우리를 부르십니다. 사도 바오로는 첫 인간 아담과 마지막 아담인 그리스도에 대해 말하며, 다음과 같은 말로 우리에게 희망을 줍니다. “우리가 흙으로 된 그 사람의 모습을 지녔듯이, 하늘에 속한 그분의 모습도 지니게 될 것입니다.”(1코린 15,49)
글 _ 변승식 요한 보스코 신부(의정부교구 안식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