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하느님만 따릅니다”…치열한 삶 속 밝게 빛난 사제의 본분
“어느 날 길을 가는데 죽은 노파가 있었고, 쥐가 그 노파의 발을 갉아 먹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마더 데레사 수녀님이 죽은 이를 위해 기도하려는데 그 할머니가 움찔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쥐가 와서 갉아먹어도 떨쳐낼 힘이 없었다는 것에 수녀님은 ‘사람이 죽을 때만이라도 인간다운 품위를 지킬 수 있는 곳’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만든 곳이 임종자의 집 ‘깔리갓’이었어요.” 인도 콜카타에서 봉사하던 마더 하우스를 떠올리는 김성만 안드레아 신부님의 눈에는 신학생 시절 내가 보았던 진심이 담겨있었다. 어제 일 혹은 어제와 같이….
인도에서 월세 포함 식비 30만 원 정도를 제외한 나머지 사제 생활비 전부를 사랑의 선교 수녀회에 매달 기부하셨다는 신부님이, 어떤 계기로 이 ‘불편’한 상황을 해결하셨는지 궁금했다. 그저 ‘사제’여서였을까. 아니면 ‘사랑’해서였을까.
“제가 벵골어나 힌디어도 못하고 한 두어 달 이렇게 허드렛일하다 보니, 일도 중요하지만 사람을 만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느꼈어요. 길에서 쓰러진 분들을 깔리갓으로 모셔가면 3~4일 만에 돌아가시는 분들도 많았습니다. 어떻게 하면 도움이 될는지 고민하던 중에 순간 딱 드는 생각이, ‘이 사람들을 위해 지상에서 마지막 친구가 되자! 힘들어할 때 손을 잡아주고 한 번 더 깨끗하게 갈아입히자. 먹여주고 그냥 이 지상에서 마지막 친구가 되어주면 어떨까’였어요. 이 마음으로 대하니까 모든 게 새로워졌습니다.”
우리는 본능으로 안다. 옳은 길과 그른 길을…. 잘못된 방향으로 들 때는 설득할 변명이 장황해진다는 사실 또한 안다. 빛은 언제나 말없이 세상을 살리니까.
인도·태국 등지에서 봉사하며 값진 경험한 김성만 신부
임종자의 집 ‘깔리갓’부터 에이즈 환자 수용시설까지
고통받는 이들 위해 진심 다해
# 때때로 내 안의 빛이 잦아들면 메마름 속에 검은 탓을 한다. 나는 그때 콜카타에서 봉사활동이 끝나갈 무렵 어둡고 지친 상태였다. 친구들과 따로 걷는 시간도 많아졌다. 그쯤 오후, 그날 외진 골목으로 들어가는 게 아니었다. 크리켓 경기를 끝내고 나오던 동네 녀석들을 마주친 그때였다. 무심코 가로질러 가는데, 상대의 팔꿈치가 내 옆구리를 세게 찔러왔다. 옆구리를 부여잡고 수그리는데 상대는 점수라도 올렸다는 듯 낄낄거리며 친구들에게 자랑질을 해댔다. 이미 탓을 넘어 뚜껑이 열린 상태였다. 어쩌면 메마른 영혼의 탓을 거기서 찾았는지 모른다. 몸을 떨며 한참 분을 참다가 ‘무시‘라는 단어가 하얗게 머릿속에서 흩어질 때쯤, 파라곤 호텔 철문 손잡이에 걸린 자전거 체인이 보였다. ‘이 자식들이! 감히 나를!’ 그러나 그뿐이었다. 그들도 분노도 이미 사라진 상태. 성찰이라는 자책이 치열하게 이어진다. 거기에는 하느님이 안 계셨다. 현재의 나와 그때 처절한 자신은 다르게 이어져 있는가.
김 신부님은 인도에서 여정을 마친 후, 잠시 태국을 들렀다고 하셨다. 나는 이야기를 기다렸다. 영혼 깊숙이 담겨진 이유는 남달랐다. “한 달 동안 태국에 있는 에이즈 환자 병원에 다녀왔어요. 콜카타에서 만난 외국인 친구가, 친형이 거기서 봉사를 했는데 너무 좋았다고 해서요. 롭부리, 기억에 방콕에서 버스로 3시간 되는 거리인데 원숭이가 많은 도시로 유명했습니다. 태국에 ‘왓프라밧남푸‘라는 절이 있어요. 태국에서 가장 큰 에이즈 환자 수용시설로 자체 화장장도 있었지요. 당시 150명 정도 환자가 있었고 독일 의사가 있고…. 처음에는 겁이 나더라고요. 전염되는 게 아닌가 하는 염려도 있었고. 하지만 예수님이 나병환자를 치유하시던 것이 생각나 결국 ‘다 사람 사는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겁낸다고 해결될 일은 아니니까요.”
# 인도에서 맞기나 하고 이미 구세주가 되길 바라던 봉사는 날카로움으로 가득했다. 내 영혼의 쉼은 어디에 있는가. 하느님이 계신 곳, 어디에나 평화가 있다던데 계시긴 한 걸까.
그러던 어느 토요일 오후, 창가 옆에 있던 침대로 한 줄기 빛이 새어 나왔다. 살며시 고요히 말이다. 배고픔도 절망도 하품처럼 사라진 오후. 그 빛은 잠을 깨우며 밖으로 난 창으로 나를 인도했다. 그때였다. 건너편 옥상에 놓인 가난한 빨래대가 눈에 들어오고, 인도 여인들이 널어둔 사리 천들이 갑자기 든 바람에 흩날렸다. 시간을 잊은 듯 하늘거리며 내게 손짓을 하고, 그 순간 평화가 불어왔다. 더 이상 자신을 괴롭히지 말라는 듯, 세상을 헤매지 않아도 ‘넌 좋은 사람’이라고 바람은 전하고 있었다. 평화는 찾는 게 아니라 닫힌 마음을 열어둘 때 오는 것이었다.
나는 마지막으로 알고 싶었다. 인도든 태국이든 어디나 계시는 신부님의 하느님은 어떤 분이신지….
“하느님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저를 받아 주시는 분이십니다. 어떤 마음 상태건 어떠한 위치에 있건 다 받아 주시는 분이에요. 한 번도 거부하지 않으시고 내가 다가가기만 하면 받아 주시는 분. 제 경험으로 보면, 우리에게는 그분께 다가갈 용기와 노력이 필요한 것 같아요. 물론 끌어 주시기도 하지만요. 그분은 그래서 ‘믿고 맡길 수 있는 분’입니다.
그랬다. 한 사제가 독특한 여정만을 골라 인생에서 특이한 깨달음을 얻고자 간 인도가 아니었다. 메마른 사제 생활에서 치열한 체험을 마다하지 않고 본질을 지키려 했던 분이 바로 인도의 파더 킴. 안드레아 신부님이셨다.
글 _ 박홍철 다니엘 신부(서울대교구 삼각지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