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교구 성당 순례

[수원교구 성당 순례] 왕림성당

박지순
입력일 2025-03-25 17:41:10 수정일 2025-03-26 10:05:23 발행일 2025-03-30 제 3435호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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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8년 설립, 한국교회 네 번째 본당…수원교구 서부지역 선교에 중추적 역할
옛 사제관 등 곳곳에 신앙 역사 물씬…2025년 정기희년 교구 순례지로 선정

경기도 화성시 봉담읍 왕림1길 71에 위치한 ‘왕림성당’은 한국교회의 역사와 함께해 온 유서 깊은 곳이다. 1866년 병인박해를 피해 많은 신앙 선조들이 은신하며 신앙의 뿌리를 내린 이곳에 1888년 7월 14일 본당이 설립됐다. 한국교회 네 번째 본당이자 한강 이남 경기도 첫 본당으로서 명실공히 수원교구를 대표하는 신앙의 못자리이다.
교구장 이용훈(마티아) 주교는 2020년 11월 29일 왕림성당을 ‘제1호 천주교 수원교구 순례 사적지’로 선포하는 교령을 발표했다. 왕림성당이 교구 서부지역 선교 요람으로서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한 것은 물론 교육을 통해 문맹 퇴치와 지역사회 발전에 커다란 공헌을 했던 역사를 기리기 위한 것이었다. 137년의 긴 역사를 품고 있는 왕림성당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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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왕림성당은 본당 역사에서 네 번째 성전으로 1988년 본당 설립 100주년에 맞춰 축복미사를 봉헌했다. 박지순 기자

■ ‘갓등이왕림성당’

왕림성당 입구에는 예스러운 느낌이 드는 나무 간판이 걸려 있다. 나무 간판에는 ‘천주교 갓등이왕림성당’이라고 적혀 있다. 왕림본당(주임 황용규 스테파노 신부)에 비치된 주보에도 ‘갓등이 왕림성당’이라고 쓰여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갓등이는 ‘갓을 쓴 등불’이라는 뜻으로 박해시대에 사제를 뜻하는 말이었다. 사제라는 신분이 알려지면 안 되는 시대 상황에서 신자들끼리만 쓰던 은어였다. 1888년 왕림본당이 설립되기 전 공소 명칭도 갓등이공소였고, 박해 시기 이 지역에 형성된 교우촌도 지역 명칭을 따라 왕림촌이라고도 했지만 갓등이교우촌이라고도 불렀다. 성당 입구 나무 간판만 보아도 왕림본당이 박해 시기부터 걸어왔던 오랜 역사를 짐작할 수 있다.

수원교회사연구소가 2011년에 펴낸 「앵베르 주교 서한」 등 교회사 문헌을 통해 조선대목구 제2대 교구장 앵베르 주교가 갓등이공소에 1839년 1월 방문한 사실을 추정할 수 있다. 지금의 왕림성당 주변에 교우촌이 형성된 시점은 1800년 전후라는 것이 연구자들의 견해다. 왕림본당의 역사가 교우촌 시기를 포함하면 한국천주교 박해 초창기까지 품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왕림본당이 오랜 역사를 이어오면서 성당 인근에는 ‘갓등이 피정의집’, 천주 섭리 수녀회 등이 자리하게 됐고, 수원가톨릭대학교도 성당과 인접해 있어 가톨릭 공동체가 왕림성당을 둘러싸고 형성된 것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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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림성당 안에는 1~29대 주임신부의 사진이 나란히 걸려 있어 본당의 오랜 역사를 보여 준다. 박지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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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림성당에는 남녀 신자들과 어린 양이 성모상 앞에서 기도를 바치고 있는 독특한 조각상이 눈길을 끈다. 박지순 기자

■ 곳곳에 배어 있는 137년의 역사

왕림성당 경내로 들어서면 1888년에 설립된 역사가 한눈에 바로 들어오지는 않는다. 지금의 성전은 1986년에 완공됐기 때문에 외형만 보아서는 역사성이 전달되기는 힘들다. 왕림본당 첫 성전은 1889년 12칸으로 지은 초가 성당으로 200명이 미사에 참례할 수 있는 크기였다. 이후 1902년에 두 번째 성전으로 33칸 한옥성당을 지었고, 1971년 세 번째 성당은 벽돌조로 건축한 첫 건물이었다. 현재의 성당은 대성전을 중심으로 오른쪽에 사제관, 왼쪽에 수녀원이 일체를 이루고 있는 독특한 구조를 하고 있다. 1986년 11월 25일 새 성전에서 첫 미사를 봉헌한 뒤 1988년 11월 1일 본당 설립 100주년 기념식과 새 성당 봉헌식을 열어 본당의 역사성을 살린 것이 특징이다.

성전 안으로 올라가는 계단 옆에는 제1호 수원교구 순례 사적지 지정 현판과 교구 도보성지 순례길 현판이 붙어 있어 왕림본당의 오랜 역사를 비로소 실감할 수 있다. 성전 문을 열고 들어가면 제일 먼저 초대 주임 파리 외방 전교회 안학고(야고보) 신부(재임 1888년 7월~1890년 4월)로부터 제29대 주임 임재혁(스테파노) 신부(재임 2022년 1월~2023년 12월)까지 29명의 역대 주임신부 사진이 나란히 붙어 있다. 비록 왕림본당 초창기 성전의 실체는 사라졌지만 본당 설립 당시부터 사목을 이어온 사제들의 모습에서 130년이 넘는 본당 역사가 온전하게 전해진다.

성전 제대 아래에는 기해박해가 진행되던 1839년 9월 21일 새남터에서 순교한 앵베르 주교 모발이 안치돼 있다. 앵베르 주교는 1839년 1월경 갓등이공소를 방문하던 중 서울에서 들려온 박해 소식을 듣고 서울로 돌아갔다가 순교한 만큼 앵베르 주교의 순교 전 발자취를 제대 아래 모셔진 모발에서도 느낄 수 있다.

왕림성당은 2025년 정기희년 수원교구 순례지로도 선정돼 개인별, 본당별 신자들의 순례가 이어지고 있다. 기자가 성당을 찾은 3월 19일에도 제1대리구 비전동본당 신자들이 왕림성당을 찾아 제대 앞에 앉아 성체조배를 하고 성당을 둘러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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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2년에 지어졌다가 1982년 복원된 옛 사제관. 사제관 뜰에는 초대 주임 파리 외방 전교회 안학고 신부와 제5대 주임 곽원량 신부의 묘비가 서 있다. 박지순 기자

■ 고풍스런 옛 사제관의 정취

왕림성당에는 남녀 신자들과 어린 양이 성모상 앞에서 기도를 바치고 있는 독특한 조각상이 눈길을 끈다. 본당 신자들의 신심을 표현하고 있는 것 같았다. 성모상을 바라보며 조금 더 걸어가면 고색창연한 한옥 한 채가 눈에 들어온다. 이 한옥 기와지붕 밑에는 한자로 ‘사제관’(司祭館)이라고 씌어 있다. 1902년에 봉헌된 사제관이다. 1982년 9월에 본래 모습대로 복원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사제관 앞 넓은 정원에는 오래된 묘비 두 기가 서 있다. 하나는 1890년 4월 13일 선종한 초대 주임 안학고 신부의 묘비이고 다른 하나는 1914년 5월 26일에 선종한 제5대 주임 곽원량(가롤로) 신부의 묘비다. 이 묘비는 왕림공동묘지에서 옮겨온 것이며, 두 사제의 유해는 현재 교구 안성공원묘역 성직자 묘역에 안장돼 있다.

두 신부의 묘비에는 사제를 뜻하는 어휘로 지금은 잘 쓰이지 않는 ‘탁덕’(鐸德)이 한자로 새겨져 있고, 출생과 사제서품, 입국과 선종 날짜가 기록돼 있다. 모서리가 마모된 두 사제의 묘비를 보고 서 있으면 왕림본당 130여 년의 역사가 오롯하게 전해진다.

옛 사제관 뜰은 수원가톨릭대학교와 계단을 통해 연결돼 있다. 수원가톨릭대 신학생들이 운동하는 활기찬 소리가 구선명하게 들릴 정도로 가까운 거리다. 교구가 1983년 수원가톨릭대를 왕림성당에 인접해 설립한 것에서도 왕림본당이 수원교구를 대표하는 신앙의 못자리라는 사실을 엿볼 수 있다.

박지순 기자 beatles@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