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프란치스코 교황 선종] 남다른 한국 사랑…한반도 평화 염원

이승훈
입력일 2025-04-22 16:49:37 수정일 2025-04-22 18:36:20 발행일 2025-04-27 제 3439호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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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아시아 첫 방문국으로 한국 택해…세월호 참사 유가족,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등 위로
유흥식 추기경,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 임명…보편교회 핵심부서에 한국교회 인사 최초 발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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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8월 16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시복 미사를 위해 입장하며 신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 한국교회를 향한 사랑

프란치스코 교황은 즉위 이듬해인 2014년 한국을 방문해, 한국교회를 향한 사랑을 전했다. 브라질, 중동 지역에 이은 세 번째 방문이었다. 브라질 방문은 전임 교황 때부터 예정된 세계청년대회 참석이었고, 중동 방문은 성지를 방문하며 그리스도교 일치를 촉구했던 점을 생각하면, 방한은 교황이 사실상 처음으로 지역 교회 공동체와 친교를 나누는 사목 방문이었다.

고위 성직자 임명에서도 한국교회를 향한 교황의 각별한 애정을 확인할 수 있다. 교황은 2014년 염수정(안드레아) 대주교를, 2022년에는 유흥식(라자로) 대주교를 추기경으로 서임했다. 역대 한국인 추기경은 모두 4명으로, 그중 절반을 프란치스코 교황이 임명했다.

특히 2021년 유흥식 추기경을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으로 불러들였다. 교황의 최측근이자, 보편교회의 핵심부서 책임자에 최초로 한국교회 인사를 발탁한 것이었다. 아시아인 교황청 장관으로는 5번째다. 이 인사로 보편교회 안에서 한국교회의 위상이 크게 높아진 것은 물론이고, 교황과 한국교회가 더욱 밀접해지는 계기도 됐다.

고위 성직자만이 아니었다. 교회 역사상 처음으로 평신도 여성 독서직을 수여할 때도 수여자 6명 중에 한국인을 포함시키는 등 한국 신자들에 대한 관심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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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8월 27일 유흥식(라자로) 추기경 서임식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유 추기경에게 비레타를 수여하고 있다.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 아파하는 이들 곁에

한국을 사랑한 프란치스코 교황, 그는 한국 사회에서도 더 아파하는 이들의 곁으로 다가갔다.

2014년 방한 당시 교황은 세월호 참사 유가족을 위로하고, 유가족에게 세례를 집전하며, 노란 배지를 단 채 방한 일정에 임하는 등 세월호 참사로 고통받는 유가족과 한국의 모든 이들을 따듯하게 감쌌다. 세월호 추모 행동이 미칠 정치적 영향에 관한 기자의 질문에 “세월호 유족의 고통 앞에서 중립을 지킬 수 없었다”고 말한 일화는 유명하다.

교황은 이듬해인 2015년 로마에서 열린 한국주교단의 사도좌 정기방문(앗 리미나) 중 한국주교들과 둘러앉아 첫 화두로 “세월호 사태는 어떻게 정리됐는지”를 묻는 등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고 마음으로 함께하는 모습을 보였다.

뿐만 아니라 교황은 방한 중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 제주 강정마을 주민, 밀양 송전탑 건설 예정지역 주민, 용산 참사 피해자, 탈북자와 납북자 가족,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와 소외된 이들을 만났다.

한국의 고통 받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은 이후로도 이어졌다. 교황은 이태원 참사, 무안 제주항공 참사, 경북 의성 산불 등 한국 사회에 큰 아픔이 있을 때마다 위로의 메시지를 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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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8월 16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세월호 유가족에게 편지를 받고 있다.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 한국 순교자 영성

“순교자들의 승리, 곧 하느님 사랑의 힘에 대한 그들의 증언은 오늘날 한국 땅에서, 교회 안에서 계속 열매를 맺습니다.”(2014년 8월 16일 서울 광화문광장,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시복 미사 강론)

교황은 한국에서, 그것도 순교의 현장을 바라보면서 124위 시복미사를 주례했다. 일반적으로 시복미사는 교황의 대리자가 거행한다는 관례를 뒤집은 파격적인 행보였다. 한국교회는 이미 1925년(79위)과 1968년(24위) 시복식을 통해 103위 성인이 나기는 했지만, 이 두 번의 시복식은 모두 로마에서 열렸다. 순교자의 땅에서, 교황이 직접 주례하는 시복 미사는 이례적이었다. 교황은 그만큼 한국 순교자 영성이 맺은 열매, 한국교회를 사랑했다.

교황은 “한국의 천주교인 여러분이 모두 하느님께서 이 땅에 이룩하신 위대한 일들을 기억하며, 여러분의 선조들에게서 물려받은 신앙과 애덕의 유산을 보화로 잘 간직해 지켜나길” 부탁했다.

한국 순교자 영성에 대한 교황의 관심과 사랑은 2023년 더 큰 결실로 이어졌다. 첫 한국인 사제이자 순교자 성 김대건(안드레아) 신부의 성인상이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당에 설치된 것이다. 성 베드로 대성당의 외벽 벽감은 세계 주요 수도회 창설자들의 성인상이 안치되던 곳으로, 수도회가 아닌 한 지역 교회를 대표하는 성인상이 세워진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교황은 “김대건 신부님은 분쟁의 상황에서도 모든 이들을 만나고 또 모든 이들과 대화하시며 많은 이들을 위한 평화의 씨앗이 되셨다”며 “성인의 이런 모습은 한반도와 온 세상을 위한 예언”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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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8월 16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주례한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시복 미사 전경.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 한반도 평화를 염원하다

교황은 끊임없이 한반도의 상황에 관심을 기울이며 한반도 평화를 간절히 염원해 왔다.

2014년 방한 당시에도 교황은 서울대교구 주교좌명동대성당에서 ‘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를 주례하면서 한반도 평화를 기원했다.

특히 2018년 ‘판문점 선언’ 소식을 들은 교황은 “한반도를 위한 진정한 대화의 길에 나선 두 정상의 용기에 기도로 함께하겠다”면서 “사랑하는 한국 국민과 전 세계를 위해 선의라는 열매를 계속해서 맺을 수 있기를 주님께 기도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후 문재인(디모테오) 전 대통령과 두 차례에 걸친 개별 면담을 통해 한반도 평화에 관한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눴고, 한반도 평화를 위해 기꺼이 북한에 방문할 의사를 표명하기도 했다.

이 밖에도 2023년 한국 전쟁 정전 70년 한반도 평화 기원 미사에도 강복 메시지를 보내는 등 우리에게 한반도 평화를 위한 메시지와 기도를 자주 전해왔다.

특히 ‘형제애와 사회적 우애’에 관한 내용을 담은 회칙 「모든 형제들」에서는 한국 주교들이 한반도 평화에 대해 언급한 내용 인용하면서 “진정한 평화는 민족의 화해와 공동 발전을 추구하는 대화를 통해 정의를 실현하려는 노력으로 달성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교황 회칙은 교황이 전 세계를 향해 공식적으로 발표하는 매우 장엄한 형식의 문헌으로, 교황 회칙에서 한국을 언급한 것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처음이었다.

교황은 2024년 바티칸 정원에 ‘평화의 모후이신 한국 성모님 모자이크상’을 설치하도록 하기도 했다. 한반도의 평화가 평화의 모후이신 성모님의 전구로 이뤄지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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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0월 29일 교황청 교황 집무실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이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DMZ 철조망으로 만든 평화의 십자가를 선물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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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3월 11일 성 베드로 대성당 광장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국 신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 한국 젊은이들을 향한 사랑

세계 가톨릭 젊은이들의 대축제, 세계청년대회(WYD)의 다음 개최지가 서울로 결정된 것에서도 교황의 한국 사랑, 특별히 한국의 젊은이들을 향한 사랑을 엿볼 수 있다.

교황은 2027 서울 WYD를 준비하는 한국교회에 “젊은이들은 (기성 세대의 눈에는) 소란스럽고 분주하지만 그 자체가 젊은이들의 사명이기도 함을 인식하고 대화를 통해 기꺼이 동반해야 한다”면서 “젊은이들에게 신뢰를 주고 가까이에서 그들이 먼저 물을 수 있는 개방된 분위기의 교회를 만들어 나가자”고 전했다.

사실 2014년 교황 방한이 이뤄진 것도 한국의 젊은이를 만나고자 한 교황의 의지로 성사된 일이었다. 교황은 대전교구에서 열리는 아시아청년대회(AYD)에 초대를 받자 흔쾌히 응했다. 지역교회의 청년대회에 교황이 참석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비록 2027 서울 WYD를 참석하고자 했던 교황의 바람은 이뤄지지 못했지만, 교황의 사랑은 여전히 우리 안에 가득하다.

“저는 이제 떠나야 할 시간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함께할 수 있도록 강복해 주신 주님께 감사드리고, 아시아와 전 세계에 주님의 사랑을 기쁜 마음으로 충실히 증언할 힘을 주시도록 주님께 간청합니다. 그리고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잊지 말고 저를 위해서 기도해 주십시오.”(2014년 8월 15일 솔뫼성지, 아시아 청년들과 만남 중)

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

변경미 기자 bgm@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