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행을 즐기고 자주 하는 편이다. 내 삶에 있어 여행은 산소와 같은 것이어서, 시간이 주어질 때마다 국내외로 자주 여행을 떠난다.
꽤 많은 나라를 방문했고 국내 여행도 즐기는 편이다. 나는 여행하는 동안 즐거움을 느끼고 길 위에 있을 때 자유를 느낀다.
그러나 지난 코로나19 시기에 나의 이러한 즐거움은 의도치 않게 제약을 받았다. 코로나19 초기 국외 여행은 원천적으로 제한되었고, 국내 여행도 억제하는 분위기였다.
여행을 즐기는 사람의 처지에서는 최악의 상황이었다. 어떤 돌파구가 필요했고 나는 조용한 성지순례라는 방법을 생각했다. 신앙의 역사와 마주하는 소리 없는 여정이었다.
성지순례는 부족한 내 신심을 보충하고 여행 욕구도 채워줄 수 있는 유효한 방법이었다. 코로나19가 어느 정도 진정될 기미가 보일 즈음 계획했던 전국 성지순례를 실행에 옮겼다.
아내와 단둘만의 여정이었다. 그렇게 약 20개월에 걸쳐 15개 교구 167곳의 성지와 순교사적지를 순회했고, 주교회의 ‘순교자 현양과 성지순례사목위원회’로부터 축복장을 받기도 했다.
순례 당시 코로나19는 진정 기미가 있었으나 여전히 조심스러웠고, 따라서 일부 성지의 성소나 성당들은 여전히 폐문 상태에 있거나 미사가 중단되어 있었다. 숙소나 식사 등도 제공하지 못하는 곳이 대부분이었으므로 성지 근처 민간 식당이나 숙소들을 이용하여야 했다.
냄새 찌든 허름한 숙소에 머물러야 할 때는 왠지 깨끗하지 못한 몸으로 순례를 하는 듯하여 불경스럽고 죄스러움을 느끼는 때도 있었다.
전국 성지순례를 통해 얻은 것은 기대를 뛰어넘는 것이었다.
순교자들의 희생과 용기는 내가 하는 일과 영적 생활에 비추어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순교자들의 자취는 숨을 멎게 했고, 부끄럽게 했고, 반성하게 했다.
신앙도 아는 만큼 깊어질 수 있다. 순례를 통해 자생적 한국천주교의 발생과 전개, 박해와 순교, 성장과 성숙의 과정에 대한 학습 동기를 얻기도 했다.
전국의 성지를 순례하는 일은 직장에 다니는 교우나 몸이 불편한 환우, 자가용이 없는 교통약자 교우들에게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과제이다.
언양의 죽림골처럼 높은 산을 걸어 올라가야 하고, 추자도를 가기 위해 선박으로 이동하기도 해야 한다. 더욱이 순례지는 각 교구의 지정에 따라 늘어나는 추세이다.
본당이나 교구 차원에서 단체로 진행한다 해도 긴 기간으로 인해 중도 포기하기 쉽다. 할 수 있다면 기간을 정해 집중하기를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