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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익 신부의 생명칼럼 (41) 인간생명의 시작

이동익 신부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윤리신학 교수)
입력일 2002-08-25 수정일 2002-08-25 발행일 2002-08-25 제 2312호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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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의 생식세포와 인간의 생식세포를 수정시키고 동물의 자궁에 인간 배아를 착상시키려는… 
실험실에서 행해지는 일들은 이처럼 우리의 상상을 초월…
사실 우리 사회에서 생명의 시작 문제가 논쟁이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다. 생명공학이 오늘날처럼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기 전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출생 전 생명도 엄연히 생명인 만큼 당연히 보호해야 한다고 여겨왔고, 좀더 세밀하게는 별다른 의심없이 가톨릭 교회가 가르치는 것처럼 임신의 순간부터 인간 생명이 시작된다고 인식해왔던 것이다.

그런데 생명이 실험실에서 만들어지는 시대가 오면서 온갖 형태의 생명조작 연구가 실험실에서 이루어지게 되었고, 그러면서 자연히 인간 생명의 시작 문제가 새로운 논쟁거리로 등장하게 된 것이다. 일부 생명공학자들이 실험실에서 실험하고 연구하고 또 조작하는 인간 배아는 아직 인간 생명이 아니라는 주장이 매우 거세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이 실험하고 조작하는 인간 배아가 인간 생명이라면 그들은 인간 생명을 제멋대로 조작하고 폐기하는 등 매우 끔찍한 일을 저지르고 있다는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쩌면 인간 생명의 시작 논쟁은 그 엄청난 윤리적 비난을 피하기 위한 한 방편이 되어버린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인간 배아를 가지고 실험실에서 행해지는 일들은 대부분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동물의 자궁에 인간 배아를 착상시키려는 시도, 동물의 생식세포와 인간의 생식세포를 수정시키는 일, 인간 배아를 냉동보관 하다가 폐기시키는 일, 유전자 개입을 통하여 형질이 변형된 배아를 생산하는 일, 배아를 재료로 하여 줄기세포를 만드는 일 등등이 실험실에서 실제로 이루어지는 일들이라고 한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연구자들은 이러한 연구나 실험들이 의학 기술의 진보를 이루어 수많은 만성질환의 치료법을 발전시킬 수 있을 뿐 아니라 생명공학 산업에 있어서의 국가 경쟁력을 높이게 될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그들은 인간 배아를 파괴하고 인간 생명을 생물학적 재료의 수준으로 격하시키며 결국에는 인간 존엄성을 훼손하고 있다는 등의 주위로부터의 거센 윤리적 비난에는 아예 귀를 막고 있는 듯하다. 아니 그보다는 오히려 자신들이 연구실에서 실험, 조작하는 인간배아가 아직은 생명이 아닌 세포덩어리에 불과하다고 항변하면서 자신들의 행위에 대한 윤리적 정당성을 주장하는 것이다.

필자가 주위로부터 가끔 접하는 질문 하나가 있는데, 곧 과거 가톨릭 교회가 둥근 지구를 주장한 갈릴레오가 틀렸다고 단죄한 그 큰 실수를 오늘날 다시 반복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질문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교회는 과학적인 사실에 대해서는 전문가가 아닐지라도 인간 문제에 관해서는 전문가이기 때문에 이 문제에 관한 한 과거의 오류를 반복하지는 않을 것이다. 인간 생명의 문제는 단순히 생물학적 사실의 문제라기보다는 오히려 인간 영혼의 문제이고 인간 인격의 문제이기 때문에 이 문제에 관한 한 교회는 그 어느 분야보다도 전문가라고 자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톨릭 교회가 가르치듯이 수정란도 이미 생명인 것처럼 냉동배아, 복제배아도 당연히 인간 생명으로 존중되어야 할 것이다. 배아의 파괴를 통해 이루어지는 모든 형태의 실험이나 연구도 당연히 중지되어야 할 것이다. 인간 생명이 실험실에서 한번 쓰고 버리는 생물학적 재료의 수준으로 격하된다는 것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이동익 신부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윤리신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