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진감래(苦盡甘來).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뜻의 이 사자성어는 혼신의 노력을 다하면 반드시 그 결실이 갚음으로 돌아온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듣기만 해도 마음이 훈훈해지는 말이다.
고진감래의 경우를 우린 흔히 본다. 주경야독(晝耕夜讀)하며 뜻을 이룬 이들. 산전수전 다 겪고 자수성가한 이들에게도 이 말이 어울린다. 12년 동안 모진(?) 학업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원하는 대학에 들어간 수험생도 예외는 아니다. 과정의 고됨을 보상해주는 결실이 있음은 참으로 흐뭇하고 여간 다행스럽지 않다.
베이징올림픽이 17일간의 열전을 마치고 24일 폐막했다. 개폐막식의 화려함과 더불어 어느 올림픽보다 신기록과 얘깃거리가 풍성한 올림픽이었다. 경기에서 메달 경쟁이야 당연한 것이지만 올림픽이, 아니 스포츠가 주는 묘미는 단지 메달 경쟁에만 있지 않다.
각본없는 드라마, 역전의 짜릿함, 명승부가 주는 카타르시스…. 이런 스포츠적 요소와 함께 선수들이 흘린 땀과 눈물, 그들을 뒷바라지한 가족과 스탭들의 사연은 관객들에게 큰 감동을 준다. 올림픽에, 스포츠에 열광하는 것도 다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이번 올림픽에도 감동적인, 그래서 아름다운 사연들이 적지 않다.
한국에 첫 금메달을 안겨준 남자 유도 62kg급 이하의 최민호 선수는 금메달을 확정지은 순간, 주저앉아 펑펑 눈물을 쏟았다. 결승 상대였던 선수의 부축으로 일어선 그가 고개를 젖힌 채 가슴을 치며 감격해하는 모습은 보는 이들의 눈시울을 붉혔다.
그는 4년 전 아테네올림픽 4강 경기에서 무리한 체중감량으로 인한 근육 경련으로 힘 한번 제대로 못쓰고 패했다. 그 아쉬움을 한동안 술로 달래며 방황도 했다. 이후 절치부심하며 4년을 보낸 그는 이번 올림픽에서 다섯 경기 모두 한판승을 따내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판승의 달인’이란 별명도 얻었다.
아쉽게 7연패를 놓치긴 했지만 몸 속에 뱀을 넣거나 야간 공동묘지에서 담력을 키운다는 한국 여자 양궁선수들의 훈련내용은 이번 올림픽에서도 단연 화제거리였다.
마린보이 박태환 선수도 예외는 아니다. 박 선수의 수영 자유형 400m 금메달은 골프 세계재패보다 더 어렵고 값지다고 한다. 어린 나이에도 자신을 제어하고 절제하며 흘린 땀방울이 만들어낸 쾌거다.
거칠 것 없이 세계신기록을 경신하며 금메달을 안겨준 역도 여자 75kg급 이상의 장미란 선수의 성공 뒤에는 지난 4월 암으로 세상을 떠난 김동희 코치의 사연이 있다. 김코치는 아테네올림픽 때부터 카운슬러로, 자상한 언니로 장선수를 지도하며 역도 여자 선수들의 ‘대모’로 통했다.
그러나 그의 유골을 쌌던 종이만 베이징에서 딸이었고 동생이었던 선수들의 경기를 지켜봤다. 장 선수는 경기 당일 한차례도 실패하지 않고 바벨을 거뜬히 들어올렸다. 마치 하늘에서 누군가가 끌어당겨 주는 것처럼.
어디 감동과 사연이 메달리스트만의 것이랴. 올림픽 무대에 선 선수들 하나 하나가 감동의 주인공들이며 고진감래의 표본이다. 이들이 있기에 올림픽은 더욱 빛난다.
“나는 훌륭히 싸웠고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습니다. 이제는 의로움의 화관이 나를 위하여 마련되어 있습니다.”(2티모 4, 7~8)
바오로 사도의 말씀처럼 ‘고진감래’는 신앙인들에게도 커다란 위로를 준다. 약속된 생명을 향해 부단하게 정진하는 삶. 지금은 갖은 상처에 패이고 고통에 눌려도 달릴 길을 다 달린 뒤에 받을 천상 보상에 비기면 오히려 감사할 노릇이다. 사도들, 순교 성인들의 삶에서 우리는 그 전형을 본다.
폭염 속에서도 인간한계에 도전한 선수들에게 다시 한번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