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노드

서울 신대방동본당의 시노드 여정

박지순 기자
입력일 2024-03-05 수정일 2024-03-06 발행일 2024-03-10 제 3383호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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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좋은 제도라도 한국 본당·신자 현실 반영하는 것이 중요”
교구단계 직후부터 여정 준비
신자들 의견 묻고 협의 거쳐
본당에 맞는 사목과제 수립

시노달리타스를 주제로 하는 세계주교시노드 제16차 정기총회 본회의 제2회기가 올해 10월 교황청에서 열린다. 지난해 10월에는 본회의 제1회기가 끝났다. 세계주교시노드 제16차 정기총회가 시작된 것은 2021년 10월로, 본당 단위 시노드 모임을 포함하는 교구단계는 2022년 6월 말에 마무리됐다. 이에 앞서 전국 각 교구는 본당들로부터 시노드 모임 결과 보고서를 제출받아 2022년 6월 중순을 전후해 교구 보고서를 주교회의에 제출했다. 교구에 시노드 모임 결과 보고서를 제출한 이후로 대부분 본당들은 세계주교시노드 제16차 정기총회에 별다른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올해 본당 사목표어를 ‘시노드 교회를 위하여 계속 걸어갑시다!’로 정한 본당이 있어 눈길을 모은다. 서울 신대방동본당(주임 박근태 베네딕토 신부)이다. ‘계속 걸어갑시다!’라는 표현은 시노드 교회를 위해 지금까지 걸어왔고 앞으로도 걸어가겠다는 의미다. 신대방동본당이 걷고 있는 시노드 여정을 살펴본다.

서울 신대방동본당 사목회가 2022년 12월 3~4일 강화도 그레이스힐 연수원에서 마련한 ‘제13대 사목회 출발 워크숍’. 서울 신대방동본당 제공

■ ‘2024년 신대방동성당 미션’

신대방동본당 신자들은 올해를 맞이하며 명함 크기로 만들어진 ‘2024년 신대방동성당 미션’이란 인쇄물을 하나씩 받았다. 뒷면에는 본당 신자들이 시노달리타스를 신앙과 삶 안에서 살아가기 위해 실천해야 하는 10가지 항목이 적혀 있다. ▲하느님 이름 부르기 ▲아침·저녁 기도하기 ▲거룩한 미사 봉헌과 주일 지내기 ▲성경을 읽고 묵상하기 ▲교회 가르침(사회교리) 공부하기 ▲구역 및 단체 활동 참여하기 ▲이웃에게 봉사하기 ▲보속의 삶(단식과 극기) 살기 ▲가족과 함께하는 삶 살기 ▲환경보호와 분리수거 하기 등이다.

실천사항들을 보면 신자들이 당연히 실천해야 할 일들뿐, 시노달리타스 실현이나 시노드 교회와 직접적 연관성은 없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신대방동본당은 ‘시노드’의 본래 의미부터 찾았다. ‘함께 걸어간다’는 것이다. 성직자와 수도자, 평신도 모두가 함께 걸어가기 위해서는 신자들이 처해 있는 구체적 현실을 파악하고 신앙의 본래 의미를 되찾는 일이 우선돼야 한다는 인식의 결과가 ‘2024년 신대방동성당 미션’이다.

아직까지도 시노드나 시노달리타스의 의미가 한국교회 신자들에게 익숙하게 자리 잡혀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언론에 상징적으로 보도된, 프란치스코 교황과 추기경들, 주교와 사제들, 수도자, 여성을 포함한 평신도들이 둥근 테이블에 앉아 격의 없이 대화를 나누는 장면을 시노달리타스라고 생각하기 쉽다.

이에 대해 신대방동본당 주임 박근태 신부는 “교황님이 일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일관되게 시노달리타스를 가톨릭교회 안에서 말하고 있는 것은 매우 존경스런 모습”이라며 “시노달리타스가 가톨릭교회의 나아갈 길임은 분명하지만, 현실적으로 지역교회 주교들과 본당 사목자들 그리고 신자들이 시노달리타스를 어느 정도까지 수용할 수 있는지를 정확히 알고 그에 적합하게 시노달리타스를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신부는 “독일교회가 자체적으로 급진적인 시노드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독일교회와 교황청 사이에 갈등이 생기고, 독일교회 내부에서도 찬반 대립이 생겨 분열이 생기고 있다”면서 “사제와 신자들의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채 막연히 ‘시노달리타스는 교회에 필요하고 좋은 것이니 해보자’는 방식으로는 오히려 교회와 본당 안에 혼란과 반발을 일으킬 수 있다”고 밝혔다.

박 신부는 “2021년에 세계주교시노드 제16차 정기총회가 개막한 뒤 본당별로 시노드를 진행한 결과를 2022년 교구에 보고한 후로는 대부분의 사제와 신자들이 본당으로서 시노드는 끝났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상황을 전했다. 아울러 “성직주의에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본당 사목자에게 일정 권위와 결정권은 있어야 하고, 한국교회 현실에서 교황님과 사제, 수도자, 평신도가 둥근 테이블에 함께 앉아 대화하듯이 본당 안에서 논의 자리를 마련해 주면 참여하는 평신도보다 불편해하고 기피하는 평신도가 더 많다”고도 덧붙였다.

신대방동본당은 ‘시노드 교회를 위하여 계속 걸어갑시다!’라는 올해 사목목표를 구현하기 위해 기존에 없던 행사를 열거나, 다른 형태의 회의 자리를 만든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신자들의 신앙 형태가 과거와 어떤 면에서 달라졌는지, 신자들이 교회에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부터 파악했다. 신자들이 처한 현실을 알아가는 노력이 함께 걸어가는 시노드 교회를 향한 첫걸음이었다.

서울 신대방동본당 주임 박근태 신부가 2월 28일 미사를 주례하고 있다. 왼쪽 벽에 걸린 시노드 여정을 위한 사목표어가 눈에 띈다. 서울 신대방동본당 제공

■ 시노드 여정은 계속된다

신대방동본당이 올해 사목목표를 ‘시노드 교회를 위하여 계속 걸어갑시다!’라고 정하기까지 거쳐 간 과정은 본당 사제와 사목회가 신자들 모두와 함께 걷겠다는 의지를 지속적으로 표현한 시간의 연속이었다.

본당은 2022년 본당 시노드 모임 결과 보고서를 교구에 제출한 직후부터 새로운 시노드 여정에 들어섰다. 2022년 12월 3~4일 강화도 그레이스힐 연수원에서 제13대 사목회(총회장 윤석붕 빈첸시오) 출발 워크숍을 열고 본당에 젊은 신자들이 줄어드는 이유, 신앙보다 사회적 기준과 이해관계가 우선되는 이유 등을 고민하고 본당 신자들의 신앙생활 전반을 파악할 필요성을 공유했다. 바로 이어진 조치가 지난해 3월에 실시한 ‘신대방동성당 신자들의 신앙생활 및 사목적 필요를 위한 설문’이다. 설문지는 인적사항 문항부터 세례받은 동기, 세례 이후 신앙적 보살핌을 받은 여부, 주일미사 참례 이유, 참례하지 못하는 이유, 기도 지향, 신앙생활 중 받는 유혹과 회의감, 냉담 이유와 기간, 본당 사목자에 대한 요청사항, 본당의 당면 과제에 이르기까지 36개 문항으로 구성됐다.

본당 사목회는 본당 교적상 신자 1941명 가운데 204명이 응답, 제출한 설문지를 회수해 지난해 6월부터 분석에 들어갔다. 그 결과 열심인 신자와 그렇지 못한 신자가 양분돼 있었으며, 본당의 사목과제로는 냉담교우와 노년층 증가에 대한 대응, 청년·청소년사목에 대한 배려, 예비신자 인도 등이 제시됐다.

이후 본당은 사목회장단 6명이 참석한 가운데 지난해 8월 19~20일 1박2일간 대전가톨릭대학교에서 냉담교우 찾기 워크숍을 열고 본당에 적용할 방안을 토의하고 고민했다. 9월 16일 예수회센터에서는 다시 사목위원, 남녀 구역장, 단체장 등 6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사목회 워크숍을 마련했다. 이 자리에서 본당 공동체의 새로운 출발을 위한 청소년사목 활성화, 고령화 현상 수용과 승화 방안을 찾았다.

본당 사목회는 박근태 신부와 거듭된 논의를 거쳐 설문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정한 82가지 사목과제를 점차 추려가며 최종 10가지를 정하기에 이르렀다. 박 신부는 올해 본당 사목표어 ‘시노드 교회를 위하여 계속 걸어갑시다!’ 실현을 목표로 매 주일미사 강론에서 10가지 실천사항의 의미와 구체적 내용을 신자들에게 전하고 있다. 여성구역에서는 냉담교우 가정을 꾸준히 방문하고, 오랜만에 미사에 참례한 교우를 미사 중에 소개하고 환영하는 시간도 갖고 있다.

박 신부는 “신대방동본당의 10가지 미션이 좁은 의미의 시노드와는 관계가 없는 듯이 보일 수도 있겠지만 ‘함께 걸어간다’는 본래 의미의 시노드와는 부합한다”며 “시노드는 구체적인 현실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지순 기자 beatles@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