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교구 성당 순례

[수원교구 성당 순례(1)] 제2대리구 옛 구산성당

이승훈
입력일 2024-08-05 수정일 2024-08-06 발행일 2024-08-11 제 3404호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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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 건립 고딕 양식 벽돌조 건물…철거 위기 넘기고 2016년 이축공사
각종 영화·드라마 촬영지로 유명세…지난해 경기도 등록문화재 지정

하느님을 경배하기 위해 마련된 거룩한 곳 성당. 우리가 기도하는 성당에는 많은 이야기가 담겨있다. 아름다운 성미술과 건축에 담긴 이야기, 교회와 사회의 큰 사건에 함께했던 역사, 신앙선조들과 또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 신앙공동체와 얽힌 흔적들…. 우리 교구 안에 있는 성당을 찾아 그 성당에 스민 우리 다양한 이야기와 함께 하느님께 기도할 수 있다면 좋은 순례의 여정이 되지 않을까. 성당에 담긴 이야기를 찾아 순례의 길을 떠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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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교구 구산본당 옛 성당. 이승훈 기자

■ 통째로 옮긴 성당

경기도 하남시 미사강변한강로 131. 하얀 외벽에 검은 지붕을 얹은 구산본당의 옛 성당(이하 옛 구산성당)은 단아하면서도 70여 년이라는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고풍스러움도 간직하고 있다.

70여 년이라 하면 건물에 새겨진 역사에 감탄이 나오지만, 옛 구산성당의 특별함은 그저 오래된 건물이라는 점이 있지 않다. 건립한 지 70년이 넘은 성당이라면 교구 내에도 여럿 있다. 옛 구산성당이 특별한 것은 불과 7년 전까지만 해도 성당이 이 자리에 없었다는 점이다.

70년이나 된 건물이 7년 전에는 없었다니 무슨 소리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원래 옛 구산성당은 지금의 자리에서 220m떨어진 자리에 있었다. 원형보존 이전, 바로 성당 건물을 통째로 이 자리에 옮긴 것이다.

1956년 건축된 이래 구산 자락의 한 자리를 지켜온 옛 구산성당이었지만, 2009년 5월 하남시 미사지구 개발이 추진되면서 성당은 철거 위기를 맞게 됐다. 본당은 성당을 보존하고자 고민한 끝에 성당을 원형 그대로 옮기기로 뜻을 모으고 2016년 원형보존 이축공사를 추진했다.

60년이 넘은 낡은 건물을 옮기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우선 성당이 이동하면서 파손되지 않도록 내·외부 벽면과 바닥을 H빔으로 지탱하고, 건물 전체를 롤러 바퀴에 올렸다. 건물이 받는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와이어와 도르래, 모터 등을 활용해 하루 최대 12m씩 이동하는 방식으로 성당을 옮겼다. 목조가 아닌 벽돌조 건물을 해체하지 않고 이동한 것은 국내에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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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교구 구산본당 옛 성당 내부. 이승훈 기자

■ 구산 신앙공동체의 역사가 녹아든 곳

경제적인 측면을 생각하면 새로 성당을 짓는 것이 더 저렴하고 효율적이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옛 구산성당이 건축학적으로 빼어나거나 미술적인 가치가 대단히 큰 건물이라고 말하기도 어려웠다. 그럼에도 옛 성당을 이례적인 방법으로 보존한 것은 옛 구산성당에 그런 경제적인 가치 이상의 무엇이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옛 구산성당은 구산 교우촌 신앙공동체의 역사가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는 상징적인 건물이다.

옛 구산성당을 찾으면 입구 옆에서 김성우(안토니오) 성인의 동상을, 그리고 성당 제대 안에 모셔진 김성우 성인의 유해를 만날 수 있다. 덕분에 이곳이 김성우 성인이 신앙의 씨앗을 뿌려 일군 구산 교우촌임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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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교구 구산본당 옛 성당 감실. 이승훈 기자

구산 신앙공동체는 성인의 순교 이후에도 박해를 견디며 구산에 묻힌 성인의 묘소와 성인이 전한 신앙을 지켜왔다. 1956년 구산의 신자들은 6·25전쟁을 딛고 일어나 하느님을 찬양할 집을 세우고자 공소 경당을 짓기 시작했다. 논을 빌려 신자들이 공동으로 경작을 하며 쌀 100가마니를 수확해 자금을 모았고, 남녀노소 할 것 없이 한강변에서 자갈과 모래를 채취해 건물을 세워나갔다. 그렇게 신자들의 땀방울로 완성해 낸 것이 131㎡ 규모의 벽돌조 건물인 옛 구산성당이었다. 옛 구산성당을 보존한다는 것은 그 신앙의 역사를 보존하고 물려준 신앙공동체의 뜻을 앞으로도 이어 나간다는 의미기도 한 것이었다.

건축적인 의미도 있다. 옛 구산성당의 외관은 벽돌로 쌓아 올린 고딕 건축 양식이며, 내부는 강당형으로 제대를 바라보는 2열의 긴 의자가 배치된 형태다. 6·25전쟁 이후 유행했던 성당 건축 양식을 그대로 보여준다. 유명한 건축가나 작가의 손으로 탄생한 형태는 아니었지만, 신자들이 신앙을 담아 쌓아 올린 성당의 아름다움은 많은 이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덕분에 여러 영화와 드라마의 촬영지가 되기도 했다.

이런 옛 구산성당의 가치는 교회 밖에서도 인정받았다. 경기도는 2023년 3월 28일 옛 구산성당을 경기도 등록문화재로 지정했다. 옛 구산성당은 하남시 문화재 중 경기도 등록문화재 1호다. 건축물 자체의 가치뿐 아니라 건물을 보존하기 위해 벽돌 건물을 원형이축한 방법이 건축기술사적 측면에서 중요하게 받아들여진 것이다.

경기도문화재위원회는 “구산성당은 시대상을 잘 반영한 건물로 공소건축물의 토착화 과정을 보여주는 사례며, 원형 이축이라는 근대문화유산의 보존방법론을 새롭게 제시한 사례로 등록문화재로 가치가 있다고 판단된다”고 평가한 바 있다.

옛 구산성당은 현재 평소에는 미사가 봉헌되지 않고, 본당에서 장례가 났을 때 장례미사만 거행하고 있어 성당에서 미사 참례는 어렵다. 그러나 화·목·토 오후 1~6시, 수·금 오전 9시~오후3시, 주일 오전 9시~오후 6시에 개방하고 있어 누구나 성당을 찾아 성체조배 하며 기도할 수 있다.

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