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총 가득한 경배의 공간, 주님 구원의 손길 우리 마음 감싸네
대림시기 교회는 우리에게 오시는 아기 예수님을 맞이하고자 분주하다. 성당은 바로 그 예수님을 맞는 가장 상징적인 장소다. 모든 성당이 그런 곳이지만, 특별히 더 아기 예수님을 기다리는 듯한 모습의 성당이 있다. 바로 제1대리구 상현동성당이다.
■ 성탄 그리고 십자가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광교호수로 420. 상현동성당 입구에 들어서 성당을 바라보자 눈이 부셨다. 은유적인 의미가 아니라 실제로 눈이 부셨다. 바로 성당 정문 위 외벽에 자리한 거대한 모자이크화의 황금빛에 햇빛이 반사돼서다.
배경이 황금빛으로 장식된 이 모자이크화는 아기 예수를 안아 든 마리아와 요셉, 그리고 아기 예수님을 찾아와 경배하는 동방박사의 모습이 담겼다. 배경을 채운 황금빛은 주님을 경배하는 시간이 바로 황금과 같이 귀한 시간이라는 것을 상징한다. 마치 성당을 향하는 모든 이에게 아기 예수님을 맞이하는 황금의 시간을 알려주는 듯하다.
성당 마당에 빠질 수 없는 성상, 성모상도 아기 예수님과 깊은 관련이 있다. 상현동성당의 성모상은 성모님 홀로 있지 않다. 천사상과 마주보고 있는 모습의 성모상은 바로 성모영보(聖母領報)를 표현한 것이다.
루카복음 1장에 나오는 성모영보는 천사가 성모님께 장차 태어나실 예수님을 알리는 모습이다. 마치 천사의 모습에서는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기뻐하소서”라는 성모송의 인사가, 성모님에게서는 “주님의 종이오니, 그대로 제게 이루어지소서”라는 삼종기도의 응답이 들리는 듯하다. 이미 태중에 오셨지만, 아직 태어나지 않은 예수님을 기다리는 성모님의 모습이다.
성당 입구에서 성탄을 느낄 수 있다면 성당 건물 내·외부는 십자가의 형상을 강하게 느낄 수 있다.
일단 성당 전체의 형상이 십자가다. 그러나 전통적인 십자가 형태의 성당 건축이 십자가의 머리 부분에 제대가 자리한다면, 상현동성당은 그 반대 모습이다. 제대에서부터 십자가가 뻗어나가는 형상으로 설계됐다. 또 십자가가 교차하는 부분을 향해 계단식으로 올라가는 형상을 통해 십자가가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속죄의 상징이라는 점을 부각시켰다.
성당 안의 십자가상에도 이야기가 담겨 있다. 십자가상에 매달린 예수님은 자애로운 표정으로 아래를 바라보며 못 박혔던 오른손을 내리고 있었다. 스페인 루고교구 멜리데 후렐로스의 성요한성당에 소장된 십자가상을 본 따 만든 작품이다. 언제나 우리의 고달픈 삶을 아시고 먼저 구원의 손길을 뻗으시는 예수님의 사랑을 깨달아 예수님께 더 가까이 나가고자 하는 희망이 담겼다. 거기에 제대 위로 높게 솟은 둥근 천장을 둘러싼 가시관 형태의 나무조각을 바라보면, 십자가의 수난으로 우리를 향한 사랑을 보여주신 예수님의 마음이 더 크게 느낄 수 있다.
■ 하비에르와 하비에르
상현동성당에는 여러 성인들의 성상들도 많이 세워져 있었다. 성당 내부에 있는 성모상과 성 요셉상 외에도, 성당 입구에는 리지외의 성 데레사 수녀, 성 정하상(바오로), 성 김대건(안드레아) 신부,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신부의 성상이 자리하고 있었다.
정하상과 김대건 신부는 한국을 대표하는 성인이고, 우측에 자리한 프란치스코 하비에르는 상현동성당의 주보성인이다. 그리고 ‘소화 데레사’, 혹은 ‘아기 예수의 데레사’라고도 불리는 리지외의 데레사는 1927년 비오 11세 교황이 프란치스코 하비에르와 함께 ‘선교의 수호자’로 선포한 성인이다.
하비에르 신부는 로욜라의 성 이냐시오를 만나 감화돼 예수회 창립에 동참한 신부다. 인도를 비롯해 동남아시아의 여러 섬들, 그리고 일본에서 열정적인 선교를 펼쳤고, 중국에도 복음을 전하고자 시도하던 중 1552년 12월 3일 선종했다. 입구의 성상 외에도 입구 안쪽에도 프란치스코 하비에르의 이콘이 설치돼 있었다. 이를 통해 성당을 드나드는 신자들이 성인의 선교 정신을 기억할 수 있도록 돕고 있었다.
상현동성당이 프란치스코 하비에르를 주보성인으로 모신 것은 성인의 선교정신을 본받고자 한 것도 있지만, 이 프란치스코 하비에르를 따랐던 우리 신앙선조 하느님의 종 권일신(프란치스코 하비에르)를 기리고자 하는 뜻도 있다. 비록 시복시성이 되지 않았기에 성당의 주보로 삼을 수는 없었지만 상현동성당은 건축 당시부터 ‘권일신 기념 성당’으로 계획된 성당이다.
권일신은 복자 권상문(세바스티아노)·권천례(데레사)의 아버지로, 하느님의 종 이벽(요한 세례자)과 함께 우리나라에 교회를 창립하는데 기여한 한국교회의 초기 지도자다. 우리나라의 첫 세례자 하느님의 종 이승훈(베드로)을 통해 세례를 받고 교회를 이끌어 가는데 앞장서던 권일신은 1791년 신해박해 중 붙잡혀 순교했다.
상현동성당은 한국교회 초기 지도자이자 순교자인 권일신의 신앙과 선교정신을 기억하고자 성당 마당에 권일신을 기리는 공간을 조성했다. 성당 마당 휴게공간에서 ‘직암 권일신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순교기념비’와 권일신의 동상을 만날 수 있다. 한국교회를 창립하고 이끌어간 권일신은 형조에 붙잡혀 숱한 형벌을 받고 장독으로 순교하기까지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다. 그런 권일신의 생애를 보여주듯 동상은 포승줄에 묶여 무릎을 꿇은 모습임에도 평안한 얼굴로 하늘을 향해 기도하는 듯 했다.
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