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신학연구소 30주년 회고와 전망
1990년 2월, 당시 평신도 신학운동에 관심있던 가톨릭 청년들이 ‘가톨릭청년신학동지회’(신동)를 결성했다. 그해 말에는 천주교사회운동과 청년성서모임을 결합하려던 청년들이 ‘우리신학연구실’을 창립했고, 1992년 이 두 모임이 우리신학연구소 추진위원회를 발족했다. 여기에 1993년 여름 ‘가톨릭자료정보센터’가 합류했다. 이 세 그룹은 1993년 6월 우리신학연구소 추진위원회를 출범한데 이어 이듬해 1994년 1월 17일 우리신학연구소(이하 우신연) 창립총회를 개최하게 된다. 사명선언문을 통해서는 “우리는 스승 예수의 가르침에 따라 신바람 나는 공동체를 살아가고 지금 여기 우리의 하느님 체험을 쉬운 말로 풀어낸다”고 천명했다. 천주교 사회운동과 평신도 신학운동이 빚어낸 결실이었다. 우리신학연구소 30년 활동을 회고하고 향후를 전망해 본다.
공동체와 함께하는 평신도 신학운동
140여 명 평신도, 사제, 수도회와 단체 등이 협동조합 방식으로 출자해 닻을 올린 우리신학연구소(소장 박문수 프란치스코, 이하 우신연)의 창립 회원 대부분은 1970~1980년대 천주교 사회운동에 어떤 형태로든 몸담은 이력을 지니고 있었다. 때문에 교회 쇄신과 사회변화의 동시 추구에 관심이 많았다. 무엇보다 현장 운동을 지원하는 학술 운동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이런 배경에서 우신연이 내건 설립 취지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신학은 사제와 수도자만의 것이 아니라 신자를 포함한 모두의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평신도 모두가 ‘신학함’(doing theology)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여기서 중심 과제는 몇몇 평신도 신학자를 양성하는 것이 아니라 ‘평신도 신학운동’을 불러일으키는 것이었다. 두 번째는 ‘우리신학이 지금 여기 우리 운동에 대한 성찰이어야 한다’, 세 번째는 ‘개인 신학이 아니라 공동체로서 함께 이뤄가는 신학이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우신연의 가장 큰 특징을 ‘평신도 신학운동’으로 볼 때, 가장 구체적인 노력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은 ‘한국교회에 대한 조사 연구 노하우 축적’이다. 설립 초기부터 한국교회에 대한 객관적 분석 도구로 신학과 사회과학의 협동 연구 사례를 제시함으로써 사목사회학을 개척했고, 이런 방법론을 여러 교구 시노드 과정에 적용했다. 또 본당·수도회 및 교회기관 진단 과정에 도입하면서 한국교회를 이해하고 해석하는 데에 실질적 도움을 제공했다.
‘시대의 징표’ 읽으며 공론의 장 역할
아울러 신자들 삶에 영향을 주는 현대 사회 변화를 연구하며 ‘시대의 징표’를 읽어내려 했다. 이와 관련해 신앙의 응답을 찾아내려는 상황신학을 계속 시도했으며, 아울러 이를 월례세미나 및 기획 강좌, 소모임 등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했고 각종 출판물을 통해 나누려 했다.
종교와 신앙이 사사로운 사적 영역의 범주를 벗어나 공적 영역과 공론장에서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지를 계속 질문하는 한편, 종교의 공적 역할에 대한 요청을 꾸준히 해 온 것은 분명 우신연이 한국교회와 사회에 기여한 점으로 꼽힌다. 계간 「가톨릭평론」과 우신연이 인큐베이팅한 ‘가톨릭뉴스 지금여기’를 통해 교회개혁 공론장 역할에 부합하려 분투를 지속하는 점도 큰 성과다.
최근 막을 내린 제16차 세계주교시노드에서 논의한 ‘시노달리타스’ 정신은 우신연이 초창기부터 시도한 부분이다. 평신도들이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정신에 따라 양성되고 세상 안에서 평신도로서의 사명을 실천할 수 있도록 사회교리 교육에 앞장섰고, 교회 운영에 모든 구성원이 참여하는 방안으로서 ‘좋은 본당 일구기’ 프로그램을 제안한 모습 등이 대표적이다.
평신도 신앙운동 확장에 한계
그 안에서 ‘신학의 대중화’와 그리스도인이 능동적으로 신학의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아가는 ‘신학함’을 지향하며 스스로 길을 만들어가는 실험을 계속했지만, ‘평신도 신학운동의 저변이 넓어지거나 교회 안으로 확장되지는 못했다’는 아쉬움이 있다.
우신연은 이에 대해 두 가지 측면에서 이유를 설명했다. 하나는 30년 전 청년 신학도로 시작한 구성원들이 그대로 있는 상태에서 후배들이 채워지지 않은 것이다. 이는 교회 안에서 청년 세대가 사라진 배경과도 무관하지 않다. 다른 하나는 신자들 신앙생활이 전례 중심이다 보니, 세상 안에서 사랑을 구체적인 사명과 관련시켜 나아가지 못한다는 점이다.
경동현(안드레아) 연구실장은 “성경을 읽고 신학을 공부하게 되면, 하느님 뜻에 따르고자 하는 복음적 삶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질 것”이라며 “현재 본당 공동체가 구성원들의 지속적 양성이 이뤄지거나 사회복음화 활동에 적극 참여하는 거점이 못 되는 면이 평신도 신학운동의 저변이 넓어지지 않는 이유”라고 생각을 밝혔다.
‘평신도 신학운동에 대한 편견과 무관심’은 30년 세월을 지나오면서 우신연이 연구소 운영과 평신도 신학운동에 가장 큰 걸림돌로 여기는 점이다. 경 실장은 “자발적인 평신도들의 움직임을 위험하다고 경계하고, 자꾸 기존 제도 안에서 관리할 수 있는 틀 안에 넣고자 하는 것이 한국교회 안에서 다양한 공동체나 자발적인 모임들이 생겨나는 것을 가로막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지속 가능한 평신도 신학운동 위해 노력
우신연이 앞으로 연구소와 평신도 신학운동의 가장 큰 과제로 삼는 것은 ‘후속 세대를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와 ‘우리신학 운동의 지속 가능성’이다. 후속 세대 준비는 계속적으로 부담이 되어 온 경제적 문제보다 더 크게 고민하는 문제다. 다행히 올해 들어 신학에 관심있는 약 20명의 청년들과 정기적인 모임을 가지고 있는데, 이를 잘 살려 나갈 연구소 차원의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는 의견이 모아진다.
연구소 관계자들은 “30년 동안 평신도 신학자로 활동해 온 선배 연구자들의 경험과 지혜를 후속 세대와 함께 나누면서, 이들이 동료인 또래 청년 신자들을 비롯한 교회 내 다양한 신자들과 함께 공부하고 나누면서 평신도 신학운동이 계속 이어지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우신연은 그간 ‘신학은 평신도의 영역이 아니다’라는 편견, 또 ‘사제나 수도자들만큼 교회 전통에 뿌리내리지 않고 지나치게 현세적인 시각과 방법론으로 접근한다’는 오해 등으로 환영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반면 평신도의 공부로 시작된 한국교회 전통을 이어가며 모든 교회 구성원이 함께 걷는 여정 속에서 다양한 은사를 나누는 모습으로 이해되기도 했다. 그런 격려는 연구자들이 자신의 소명을 따라 헌신하는 기반이었다.
경 실장은 “평신도 연구자들은 투신하는 분야에 집중할 수 있고, 현장에서의 실천적인 활동과 연계하며 더 구체화하고 전문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평신도 신학의 폭과 깊이를 더할 수 있다”며 “프란치스코 교황이 세상 속에서 이뤄지는 ‘상황신학’으로 패러다임의 전환을 강조했는데, 평신도 신학자들이 이미 상황신학을 많이 해오고 있다는 면에서 향후 한국교회 안에서도 신학의 전망을 열어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주연 기자 miki@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