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립준비청년 합창단 ‘꿈나무마을 남성중창단’
“보다 많은 실패와 고난의 시간이, 비켜 갈 수 없다는 걸 우린 깨달았네. 이제 그 해답이 사랑이라면 나는 이 세상 모든 것들을 사랑하겠네.”(조용필 <바람의 노래> 중)
흐린 하늘 틈으로 해가 살짝 비친 1월 11일 서울 응암동. 예수회 기쁨나눔재단(이사장 전주희 바오로 수사)이 운영하는 아동양육시설 꿈나무마을의 초록꿈터 대강당은 이 곡으로 중창 연습 삼매경인 남자 자립준비청년 9명의 화음이 너울대고 있었다.
애티를 벗은 굵직한 목소리들의 주인공은 바로 ‘꿈나무마을 남성중창단’(지휘자 최윤성 프란치스코). 노랫말대로 “지난 어둠을 포용하고 다가올 삶을 사랑하길” 한목소리로 다짐하며, 싸늘함뿐이던 한겨울 휑한 터를 ‘꿈’으로 채워놓고 있었다.
이렇듯 재단은 자립준비청년들이 꿈꾸게 하기 위해 2024년 3월 중창단을 창단했다. 구체적 자립 지원사업도 중요하지만, 꿈꿀 기회도 없는 청년들의 내면을 치유하는 예술교육의 힘을 믿었다. 중창단에서 청년들은 서로 호흡을 맞추며 공동체 의식을 키우고, 늘 스스로 ‘보호받기만 하는 무력한 존재’로 여기던 낮은 자아 존중감을 깨고 “나도 할 수 있구나” 하는 성취감을 맛본다.
습관적 무력감으로 뭐든 쉽게 포기하던 청년들은 “이젠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고 답해온다. 연습을 펑크내거나 중도 하차하는 일도 없어진다. 실제 자립준비청년은 자신을 붙잡아줄 끈끈한 인연도, 또 자신이 애착할 사람도 없어 삶조차 포기하기 쉽다. 2023년 보건복지부 실태조사에서는 자립준비청년 응답자 중 46.5%가 자살 생각을 해봤다고 답했다. 전체 청년의 4배를 넘는 수치다.
중창단은 청년들이 다 같이 어우러지면서도 한 명 한 명이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해준다. 7월 창단공연에 이어 열린 12월 공연에는 140여 명의 관객이 대강당을 꽉 채웠다. 단체 생활만 해오며 무언가의 일원으로만 살아왔던 청년들은 주인공으로 우뚝 서며 비로소 자신을 깨고 나온다.
“이렇게 진지하고 멋있을 거면서 왜 감추고 있었어.”
방에서 게임만 하던 한 청년은 마침내 방 밖으로 나와 말끔한 셔츠와 넥타이 차림으로 미성(美聲)을 선보였다. 지원 프로그램에조차 참여하기 싫어하던 청년도 단원들과 어우러져 13곡의 단체곡 악보를 통째로 외워 멋지게 노래했다. 무대 뒤에서 교사와 신부들은 “꿈꾸는 그 모습만으로도 감동이었어”라며 눈물을 찍었다.
“늘 주눅 들어 사람들과 벽을 세우게 하던 선입견으로부터 자유로워졌어요.”
단원들은 이렇듯 “우리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들이 더는 발목을 잡지 않는다고, 그래서 마음껏 꿈꾸게 된다”고 말한다. 중창단을 시작하며 대학교 성악과에 입학한 단원 이지효(스테파노·26) 씨는 “학교에서도 사회에서도, 내가 작은 실수만 해도 ‘부모가 없어서 그래’라는 낙인이 늘 따라다녔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이제는 낙인에 대한 두려움도 툭툭 털어버리는 강건함이 싹텄다”고 말했다.
“그 편견들도 어쩌면 제가 스스로 만들어낸 두려움일지도 몰라요. 또 아직도 그 편견을 지닌 사람들이 나타나도 상관없어요. ‘꿈이 있는 한 나는 무너지지 않는다’는 ‘깡’이 생겼으니까요.”
◆ 인터뷰 - 중창단 청년들과 동행하는 최윤성 성악가·좋은문화연구소 김한욱 대표
“단원들에게 ‘깡’을 걸 심어주는 게 저희 목표죠.”
이런 마음으로 중창단 창단 이래 매주 토요일 2시간씩 단원들에게 레슨을 주고 각각 지휘자, 반주자이자 실무진으로 동행하는 두 ‘삼촌’이 있다. 바리톤 최윤성(프란치스코) 성악가, 사회적 문화예술 기획 및 교육 연구를 하는 좋은문화연구소의 김한욱(다윗) 대표다. 가톨릭대 음악과에서 함께 연구 활동을 하는 두 사람이 의기투합했다.
최 성악가는 오래전부터 공연비 10%씩 저금해 꿈나무마을에 기부해 왔다. 금전적 지원을 넘어 청년들에게 직접 헌신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살을 맞대는 것만으로도 꿈을 심어줄 수 있으리라는 믿음 때문이었다”고 밝혔다.
“친구들이 남자 목소리를 들을 일이 매우 드물다고 들었어요. 남자 어른의 빈자리도 채워주면서, 전문가로서 친구들을 자연스럽게 예술 쪽으로 계발해 줘야겠다는 사명감이 생겼죠.”
화음을 좋아하는 청년들과 사랑 많은 삼촌들의 만남이라 죽이 잘 맞았지만, 청년들 삶에 드리운 그늘 때문에 신경도 많이 써야 했다. 청년들은 가끔 사회적 상식이 부족할 때가 있었다. 때문에 가벼운 설득, 부탁조차 각자 다르게 수용하고 마음의 상처로까지 받아들이는 일도 있었다.
김 대표는 “점점 변화하는 청년들을 지켜보는 보람은 모든 노고를 상쇄한다”고 말했다. “스스로 지원사업을 알아보는 등 노력하고, 아픔을 젖히고 나오는 모습이 큰 감동”이라고.
“이렇게까지 따뜻하게 대해줬던 사람이 없었다고, 약도 확 줄일 만큼 우울증이 나아졌다고 카톡을 보낸 친구도 있어요. 세상에 원망뿐이어도 할 말 없을 친구들인데 너무 대견하잖아요. 그래서 요즘 입버릇이 됐어요. ‘너희 하나도 안 불쌍해’라고요.”
끝으로 최 성악가와 김 대표는 “외국에 가볼 일이 없는 청년들이 소중한 추억을 남길 수 있게 해외 공연을 계획 중”이라고 전했다.
※ 후원 문의: 010-8728-8859 최윤성
박주현 기자 ogoya@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