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말씀 주일에 만난 ‘가톨릭글씨문화연구회’]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요한 1,14)
가톨릭글씨문화연구회 회원 정진욱(마리오) 작가는 요한복음서의 17글자를 쓰는데 5분이 넘게 걸렸다. 천천히 써 내려간 글자는 화려하거나 기교가 들어가지 않았음에도 그 의미가 명징하게 다가왔다. 하느님의 말씀 주일을 맞아 하느님 말씀을 마음에 새기며 발견한 은총이 무엇인지 가톨릭글씨문화연구회 작가들에게 들어봤다.
2022년 서울대교구 평신도사도직단체로 인준받은 ‘가톨릭글씨문화연구회’(회장 박철 베네딕토, 지도 이계철 라파엘 신부)는 글씨를 통해 신앙의 아름다움을 전하고 있다. 이들의 작업은 일반적으로 캘리그라피(calligraphy)로 불리지만 하느님 말씀의 의미를 강조한 캘리'로고스'그라피(callilogosgraphy)로 확장해 이해할 수 있다.
박은혜(로사) 작가는 “돌이나 종이에 말씀을 새기거나 쓰고 나면 그 말씀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며 “따라서 말씀을 재료에 새기는 과정 자체가 말씀을 깊이 묵상하고 영원을 담는 작업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가톨릭글씨문화연구회 작가들이 주로 사용하는 도구는 붓이나 붓펜이다. 화선지에 먹물이 닿는 순간 깊게 번지기에, 쓰기 전에 수없이 연습하고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유임봉(스테파노) 작가는 “펜으로 쓰는 일반적인 성경필사와 달리 캘리그라피 작업은 붓이나 붓펜으로 하기 때문에 힘 조절을 잘해야 하고, 천천히 해야 한다”며 “느린 속도로 쓰면 성경을 더욱 집중해서 보게 되고 때로는 소리내 읽으면서 어느새 말씀이 가슴 깊이 새겨지는 은총을 경험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책이나 인터넷을 통해 우리는 쉽게 성경에 접근할 수 있다. 단어만 검색해도 그와 관련된 수많은 말씀을 몇 초 만에 찾을 수 있다. 쉽게 다가온 말씀은 쉽게 잊히기 마련이다. 정진욱 작가는 누군가 정성스레 새긴 말씀 한 구절에서 희망과 위로를 얻고 캘리그라피 작가의 길에 들어섰다.
정 작가는 “몇 년 전 마음이 무너지고 세상에 나 혼자라는 상실감을 경험했을 때 ‘누군가 너를 위해 기도하네’라는 캘리그라피 문구를 보게 됐다”며 “한 문장에 표현된 서체와 여백이 아름다운 그림처럼 보였고, 하느님이 내 옆에서 그 말씀을 해주시는 것 같아 큰 위로를 받았다”고 말했다.
서사와 아름다움이 더해진 글씨는 이를 보는 이들에게 단순한 문자가 아니었다. 표정과 목소리가 있는 하나의 회화작품, 혹은 드라마처럼 다가온다는 게 회원들의 설명이다.
말씀 안에서 은총을 발견할 수 있는 방법을 묻자 유임봉 작가는 “성경을 정해진 시간에 모두 써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쓰기보다는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소리내서 읽고 쓰면서 마음속에 새기는 시간을 보냈으면 좋겠다”며 “천천히 흐르는 시간 속에서 말씀과 가까워지는 순간, 하느님의 은총을 체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진욱 작가는 “많은 말씀을 외우듯이 습득하려는 것 보다 캘리그라피를 통해 시각화된 말씀 한 문장을 곁에 두고 늘 보면서 지내는 것도 나의 신앙을 되돌아보며 깊이를 채울 수 있는 나만의 방법”이라고 말했다.
민경화 기자 mk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