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이나 행사하는 사람들은 5월이 그야말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보내는 달이다. 1일 근로자의 날, 5일 어린이날, 8일 어버이날, 15일 스승의 날, 19일 성년의 날, 21일 부부의 날, 부처님 오신 날 등 기념일이 많기 때문이다. 행사 사회자로 초청받는 나로서는 늘 기다려지기도 하면서 가정의 달인 만큼 나도 내 가정을 풍요롭게(?) 하는 달이기도 하다.
행사가 많은 시즌이다 보니 재능기부를 요청받는 경우도 많다. 가톨릭신자로서 당연히 성당 행사도 가게 된다.
20여 년 전에 일이다. 모 본당에서 어버이날을 즈음한 어르신 위안 행사에 사회자로 초대해 주셨다. 가기 전부터 많이 떨렸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보통 본당 지하에 있는 회합실이나 식당에서 하는 행사는 많이 진행해 봤지만, 성전에서 하는 행사는 처음이었다.
문제는 미사 때나 다른 예식이 있을 때 성사(聖事)가 거행되는 곳이고, 미사 중에 성체와 성혈이 축성되는 곳인데, 아무리 행사라 해도 과연 내가 올라가서 웃기고 가볍게 해도 되는 건가? 복사를 서 본 경험조차 없는 나로서는 제대 앞에 선다는 것이 무척 신경쓰였다. 늘 신부님만 서 계시던 자리에 선다고 하니 긴장도 됐다.
환호와 박수로 행사가 시작됐다.
멋지게 여는 말을 한다고 했는데, 멘트가 꼬였다. 늘 하던 말인데 발음도 새고, 긴장감이 돼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어! 이게 뭐지? 횟수로 보나, 각종 다양한 무대 경험으로 보나 이럴 수는 없는데?’ 순간 입술이 말랐다. 무조건 반사로 고개를 뒤로 돌렸다. 십자고상이 눈에 들어왔다. 그 당시에는 워낙 당황스러워 몰랐지만, 그 짧은 순간에 나는 예수님께서 ‘도와주세요’라는 내 목소리를 들으신 게 분명했다. 다시 객석으로 고개를 돌렸다. 등이 포근해지면서 긴장했던 어깨가 풀리고 앞에 앉아 계신 어르신들이 한 분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오호~ 어머님, 오늘 머리 잘 나왔네요~” “자매님은, 결혼하셨어요? 너무 젊어 보여서 얼핏 봐서는 모르겠네요.” 객석에 웃음이 터지면서 무대가 풀리기 시작했다. 누군가 내 등을 토닥토닥 해주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90분 정도로 예정했던 행사는 두 시간을 훌쩍 넘기고 끝이 났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본당 측에서도 주로 생활 성가 가수분들을 초대했었는데, 개그맨을 초대하는 행사는 처음이라 사목회에서도 의견이 분분했었다고 했다. 그러나 결과는 아주 대만족. 나도 참 좋았다. 더더욱 기분이 좋았던 것은, 함께 무대를 꾸며준 가수들의 개런티만 말씀드렸는데 생각지도 않게 신부님께서 제 수고비까지 챙겨 주시는 것이다.
지하 식당으로 내려가 어르신들의 따뜻한 악수와 칭찬을 받으며 맛있는 점심을 먹었다.
“봐요, 사목회장님 내가 끝내줄 거라고 했잖아요. 오늘 행사 너무 즐거웠죠?”
신부님의 격앙된 목소리에 중년 신사 한 분이 계면쩍게 웃고 계셨다. 아마도 사목회장님이 다소 우려했던 장본인인 듯했다.
지하에서 올라오며 사무실에 들렀다. 내가 받은 봉투의 내용물을 꺼내 본당 헌금 봉투로 바꿔 고대로 넣고 나왔다. 말 그대로 최고로 기분 좋은 감사헌금이었다.
다시 성전으로 올라갔다. 성호를 긋고 예수님을 바라보았다. ‘감사합니다’ 우리 둘만 아는 인사를 나눴다.
글 _ 장용 스테파노(방송인·한국가위바위보협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