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출신 파브리지오, 의사·여행가·신앙인으로 독특하고 낯선 인생 살아가 돈·성공 쫓는 세속적 삶 대신 신앙적 사명감으로 봉사 실천…"복음 전하는 것이 진정한 행복"
고향을 떠나 자전거에만 의지하며 세상을 다닌 파브리지오가 처음엔 외계인처럼 신기했다. 세계 여행도 그렇지만 내심 의사면서 주일학교 교사를 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본 적이 없다?’, 그건 좋은 일이라도 낯선 두려움이다.
이탈리아 유학 시절, 나는 피자를 자주 먹어야 했다. 그럴 때면 함께 한 이탈리아인들에게 말했다. “한국에는 이탈리아에 없는 피자가 있어요. 새콤한 파인애플을 곁들여 먹는 메뉴가 있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이 말까지 하고 나면 그들은 경악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런 걸 상상하지 못해서일까, 아니면 원래 맛만 고집하는 데서 오는 결과일까. 아마도 된장찌개 백반에, 파인애플을 넣는다면 한국인들도 비슷한 반응을 보일 것이다. 보통 뛰어나거나 색다른 점이 없을 때 우리는 ‘평범’이라는 단어를 쓴다. 그것을 통해 비슷한 유대감과 부드러운 안정감을 바란다.
일상 속의 소품들을 단순하게 확대하고 우리가 아는 평범함에서 벗어나 새로운 색을 칠한 작가가 있다. 그는 ‘영국 현대미술의 스승’이라고 불리는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Michael Craig-Martin)이다. 그가 그린 작품을 보고 있으면, 이미 알던 일상적인 물건들이 독특하고 낯설게 다가온다. 잊고 지냈던 일상의 기억을 오히려 회복시키는 감동이 거기에 있다. 특별한 것이 없는 일상에서 말이다.
파브리지오와 함께 한 아침, 국립중앙박물관 3층 불교 조각실에서 파브리지오는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에 맺힌 오묘한 표정을 응시했다. 은은하게 다가오는 미소를 닮고 싶었던 것일까.
“유럽인들은 안타깝게도 동양 문화에 대해 잘 몰라요. 아시아 역사에 대해서 배우지도 않고요. 알지 못하는 역사 안에서 비롯된 놀라운 작품들이 여기에는 참 많네요.”
그에게는 이 시간, 이 일상은 각별했다. 아쉽게도 남겨진 시간이 얼마 없었다. 며칠 전까지 서로 모르고도 행복을 찾던 인생들이 겹치면서 인연이 되어, 다음 날 떠날 시간을 세고 있으니… ‘낯섦’이 ‘평범’으로 향하려면 시간은 얼마나 필요할까.
정해진 시간으로부터 달아나려는 듯, 박물관을 나서며 우리는 한국에만 있는 풍경을 찾아다녔다. 마지막 점심을 먹기 위해 콩국수가 유명하다는 회관을 찾아갔고, 휴일이라 쉬는 덕수궁 옆 돌담길을 걸었다. 언어는 이제 도구에 불과했다. 광화문을 배경으로 흑백사진을 찍어주면서 물었다.
"앞길이 막막하고 힘든 사람들이 참 많아요. 누구보다 절망하고 있는 청소년, 청년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주면 좋을까요?” 외국 의사인 그에게 나는 묻는 거였다.
“저는 ‘자기 자신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자주 이야기합니다. 착한 목자 예수님은 누구도 홀로 남겨두지 않으시니까요. 교회는 외로운 이들을 기쁘게 맞이할 겁니다. 그러니 주어진 삶을 기쁘게 살아가고, 주님께 오라고 초대하고 싶습니다.” 사제보다 더 사제 같은 대답에 부끄러웠다. 순간 손자병법에서 나오는 전략 같은 위로를 찾고 있었는지도.
우리는 남은 시간들을 알뜰하게 보냈다. 교보문고에 가서 영어로 된 ‘김치’에 대한 서적을 읽었고, 어린이들이 보는 한국 역사책을 하나 골랐다. 하루는 마음보다 빠르게 저물어 갔다. 걸어서 청계천을 지나 명동성당에 가서 성체조배를 한 후, 남대문시장의 유명한 야채 호떡집을 찾아갔다. 잡채가 든 야채 호떡이 2000원이었다. 서울 살면서 외국인 관광객처럼 이 호떡을 처음 먹다니. 일상에서도 이런 선물이 있었다.
익숙한 사물을 낯선 시선으로 그리던 작가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은 아일랜드계 가톨릭 신자였다. 그는 미사 중에 빵이 예수님의 몸으로 변하는 ‘실체 변화’를 예로 들면서, 겉모습은 변하지 않지만, ‘시적인 변형’으로 작품에서 새로운 시각을 얼마든지 가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사람들이 항상 인식하지는 못하지만, 원래 있는 것을 저는 보여주려고 합니다.’ 주일학교 교사 파브리지오에게 느끼는 마음이 이와 같았을까. 그는 한국 사회에서 보기 드문 색을 지녔다.
그러나 만나보면 어렴풋이 우리가 지녔던 익숙한 향기를 냈다. 같은 일상을 함께하면서 우리는 야채 호떡을 손에 쥔 채, 시장에서 기념 볼펜과 티셔츠 가격을 깎으며 기뻐했다. ‘주름 방지 크림을 사야 한다’는 파브리지오에게 ‘한국의 고쟁이 바지가 너희 어머니에게 더 필요할 것’이라며 부추겼다. 남자 둘이 여자 마음을 어찌 안다고 그랬는지.
다음 날 아침, 둘은 인천공항을 향하고 있었다. 꼭 묻고 싶은 질문이 있었다. “이탈리아나 한국 사회에서나 의사는, 돈도 많이 벌고, 사회적인 지위도 있는 직업이에요. 처음부터 궁금했어요. 젊은 의사이고, 성공과 야망에 대한 생각도 많을 텐데 어떻게 일주일에 3번 봉사하며 지낼 수 있는지 신기했어요.” 질문하면서도 헛웃음이 났다. ‘그리스도인’이면 당연한 삶이겠건만, 그의 행동이 이 시대에 ‘드물다’는 이유로 외계인처럼 여겨 물었던 건 아닌가 하고.
파브리지오는 깊이 회상하는 듯했다.
“그동안 교회를 집처럼 여기며 살았어요. 거기서 본 사람들에게 많은 것을 배우기도 했고요. 함께하는 동안 기쁨과 절망도 있었어요. 수월하게 모든 일이 잘 풀릴 때도 있었지만 모든 것이 헛되고, 잘못되어 보이는 순간도 분명히 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믿음’은 저를 바로 서게 했어요. 인생을 살면서 많은 일을 할 수 있었지만 무엇보다 나를 살게 한 이 믿음을, 어느 순간 타인에게도 전해야겠다는 사명감이 생겼지요. 바텐더든, 의사든, 우주비행사든 이 귀한 것을 저 혼자만 알 수는 없습니다. 기쁜 소식은 선포되어야 하고 사람들이 설사 교회를 모르더라도, 그들에게는 교회가 필요합니다. 돈과 성공을 좇는 것이 처음에는 재밌지요. 그러나 영적 생활로 힘을 받지 못하면 그 인생은 고단해집니다. 저는 알아요. 오직 하느님의 선물인 교회를 통해서만 인생의 행복을 가질 수 있다는걸.”
우리를 닮은 외계인이 아닌, 지구인 파브리지오는 신기했지만 평범했다. 평범한 것이 낯설고, 독특하게만 보이는 이 시대. 흔히 알던 덕목이 오래된 전설처럼 저 멀리 밀리는데, 그를 만나고 있으면 잊고 지냈던 인간 본연의 색과 간결한 인생의 선이 그리워진다. 처음 만났던 기차역에서처럼 그는 길을 통해 다시 떠났다. 우리도 그렇게 살 수 있다는 초대를 하면서.
글 _ 박홍철 다니엘 신부(서울대교구 삼각지본당 주임)